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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사업 확장 일환”
미국 외 생산 가능성 높아
美 통신시장, 확장성·지속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가가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며 또 한 번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소셜미디어(SNS), 암호화폐 등 여러 신사업을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는 황금색 외관의 ‘트럼프 폰’으로 지지층의 소비를 정조준했다. 그러나 해당 제품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비판했던 해외 생산 구조에 의존할 공산이 커 ‘미국 제조업 부활’이란 그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재임 기간 사익 추구 논란 계속
16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차남 에릭 트럼프는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트럼프 모바일’ 출범을 선언했다. 에이티앤티(AT&T), 티(T)모바일, 버라이즌 등 기존 통신 대기업은 물론 애플, 삼성 등 스마트폰 제조사와도 경쟁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자리에서 에릭 트럼프는 “우리는 휴대전화 산업을 혁신하는 것은 물론 세계 최고의 기술 플랫폼 중 하나로 성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트럼프 모바일은 직접 통신망을 구축하는 대신 기존의 통신사 망을 빌려 사용하는 방식(MVNO)으로 운영된다. 한국의 알뜰폰과 유사한 개념이다. 현재 공개된 47.45달러(약 6만5,000원) 요금제는 미국 전역에 5G를 제공하며, 100여 개국 무료 통화, 24시간 긴급출동 서비스, 원격진료 서비스 등을 포함할 예정이다. 서비스는 오는 8월 시작할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제휴 통신망이나 파트너사 등에 대해선 밝혀진 바 없다.
함께 선보인 ‘T1’ 스마트폰은 금색 메탈 케이스에 미국 국기가 새겨진 디자인으로, 화면에는 트럼프의 대선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문구가 표시돼 있다. 해당 모델은 안드로이드 15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6.8인치 AMOLED 화면과 1,600만 화소 전면 카메라, 5,000만 화소 메인 카메라, 12GB 램, 256GB 저장공간을 탑재했다. 소비자 판매가는 499달러다.
한편, 이번 발표는 트럼프 일가가 글로벌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나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사익을 추구한다는 논란 또한 재점화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족들의 기업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기업이 본업인 부동산을 넘어 암호화폐, 미디어 산업 등으로 전례 없는 수준의 사업 확장을 펼치면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윤리청(OGE)에 의하면 트럼프 기업이 설립한 암호화폐 업체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은 지난해 10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약 5,740만 달러(약 78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자국 산업 육성’ 명분 어디에
소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태세 전환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지난 5월 애플과 삼성전자 등 해외에 생산 거점을 둔 스마트폰 제조사들에 연내 미국 내 생산을 시작하지 않으면 2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내놨다. 인도에 공장을 건설 중인 애플을 겨냥한 발언이었지만, 삼성전자도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런 행보는 자국 제조업 부활을 내세운 애국 경제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됐고, 많은 보수층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그러나 트럼프 모바일이 출시하는 스마트폰은 이 같은 원칙과 명백히 배치된다.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스마트폰과 그 부품 대부분이 해외에서 생산되는 점을 감안했을 때 미국 내 대량 생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익명의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공급망 구축엔 시간이 걸린다”며 “국내에서 (그런) 휴대폰을 생산하는 게 그렇게 쉬웠다면 다른 회사들이 이미 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게릿 슈네만 역시 “현재 미국 내 스마트폰 대량 생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트럼프 모바일이 공개한 기기의 외관이나 기술 사양을 볼 때 중국에서 생산되는 T모바일 ‘REVVL 7’ 모델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아직 T1 모델이 정식 출시되기 전인 만큼 해당 의혹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강도 높게 비판해 온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그의 “미국 중심 경제” 외침 또한 설득력을 잃는 모습이다.
지지층 겨냥한 안정적 수익모델 노렸나
시장에선 트럼프 그룹이 미국 통신 시장이 가진 수익 구조에 대한 기대감에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미국 내 만년 3·4위였던 T모바일과 스프린트의 통신시장 재편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두 기업은 합병 이후 단숨에 시장 점유율 2위 사업자로 도약했으며, T모바일의 주가는 지난 한 해에만 72%가량 뛰었다. 이 인수합병의 결정적 투자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었다. 스프린트 주식 88%를 보유한 그는 과감한 인프라 투자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이처럼 미국에서 통신 사업은 망 구축에만 성공하면 안정적인 구독 기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케이블과 인터넷, 모바일 데이터까지 하나로 묶어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으며, 한 번 가입자를 확보하면 장기간 유지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시장 진입장벽은 높지만, 일정 규모 이상 투자할 수 있다면 그만큼 안정적인 수익 또한 가능하다. 손 회장이 이 시장에 거대한 자금을 투입한 것도 그 확장성과 지속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그룹 또한 이 같은 구조를 염두에 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미국 시장에서 통신망과 결합된 단말기 판매는 구독 경제 기반의 현금 창출 모델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브랜드와 연결하면 고정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또 하나의 수익모델이 완성된다. 실질적인 기술력보다 충성도 높은 유권자 고객을 기반으로 사업이 가능한 만큼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경제 전략이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게 시장의 주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