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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러·이란·北 4개국 비영주권자 대상 애벗 주지사 서명으로 9월부터 발효 ‘정의를 위한 아시안 텍사스’ 등 단체 소송 예정

텍사스 주지사가 중국인의 텍사스 내 부동산 구입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미국 내 반중(反中) 정서가 부동산 시장까지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 법은 9월부터 시행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 단체들의 강력한 반발과 소송이 예상되면서 장기간 법적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텍사스, 중국인 부동산 구입 금지법 시행
23일(이하 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공화당 소속의 그레그 애벗 주지사가 유효한 비자 소지자의 부동산 구매는 허용하지만 주거용으로 사용되는 경우에만 허용되는 내용의 법안에 21일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애벗 주지사는 지난 2월 법안 추진 과정에서 소셜미디어(SNS)에 "이 법안은 적대적인 외국 기관이 텍사스에서 토지를 매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며 "이번 회기에 제출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법안은 중국 등 4개국 개인, 기업, 정부 기관은 텍사스주에서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을 제한한다. 중국 등 4개국 국민은 투자용 부동산은 구매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국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는 제외되며 오는 9월 1일부터 시행된다.
법안 지지자들은 중국과 같은 외국의 '적대국'의 영향으로부터 텍사스 주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계 미국인들은 단순히 그들의 외모나 사람들이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가정한다는 이유로 주거 기회에서 제외된다"고 지적한다. '정의를 위한 아시안 텍사스인'의 공동 창립자 앨리스 리는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 단체들이 이 법에 대한 소송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플로리다에서는 이미 유사한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다. 플로리다 연방항소법원은 중국, 쿠바, 이란, 북한, 러시아, 시리아, 베네수엘라 시민의 재산 소유를 제한하는 법에 항의하는 중국인 이민자 4명이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였다. 2023년 플로리다 지방법원에 보낸 서한에서 미국 법무부는 이 법이 연방 공정주택법과 미국 헌법 제14차 수정조항의 평등한 보호 조항을 위반한다고 밝혔다.

美 3분의 2 이상 주서 외국인 부동산 소유 제한
한편 중국인의 미국 내 부동산 구매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은 텍사스뿐 아니라 미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 3분의 2 이상의 주에서 외국인 토지 소유 제한 및 금지법을 제정했거나 검토 중이며, 여기에는 중국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주도 포함됐다.
앞서 지난 1월 아칸소 주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중국 공산당을 대리하는 중국인, 단체 또는 외국인이 미국 내 공공 또는 사유 부동산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1인치 또는 에이커 법안(Not One More Inch or Acre Act)’을 발의한 바 있다. 플로리다 주에서는 2023년부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쿠바, 베네수엘라, 시리아 국민이 군사 기지 인근의 농지나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 밖에 사우스다코타, 노스다코타, 인디애나, 네브래스카, 버지니아, 유타, 아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몬태나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주 의회의 승인을 얻었다. 오하이오, 미시간, 조지아 등 다른 주에서도 외국인의 토지 구매 권한에 관한 법률 또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인의 재산 소유를 제한하기 위한 연방 정부의 노력도 진행 중이다. 지난 6일 ‘중국 공산당 하원 특별위원회’ 위원장 존 무레나 의원(공화·미시간)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에서 “중국이 미국 땅을 간첩 활동 등으로 매입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브룩 롤린스 미 농무부 장관도 하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중국인의 미국 땅 접근을 막기 위한 연방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국가 안보·식량 안보 측면 심각한 위협
중국인의 미국 부동산 소유를 막기 위한 움직임은 백악관에서도 관측된다. 특히 상원의원 시절부터 미국 내 농지와 부동산을 중국인 및 중국 관련 기업의 손에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J.D. 밴스 부통령은 “중국인의 손에 단 한 포기의 풀도 넘겨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은 단순한 부동산 거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 나라의 국가 안보와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실제 폴리티코는 중국의 미국 내 토지 매입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그 중 일부는 군사 기지 근처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양국가 간의 무역 충돌과 국가 안보 우려 등 미중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 일이다. 미 농무부 데이터를 보면, 2023년까지 중국 투자자들은 뉴욕시 면적의 약 2배에 해당하는 미국 내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항·항구·군사기지 근처의 토지 매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인의 부동산 소유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 2021년 텍사스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장성 출신의 사업가가 미 공군기지 근처에 13만 에이커 규모의 땅을 매입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2023년에도 노스다코타주에서 중국 기업이 공군 기지 근처의 땅을 구매했고, 이는 군사적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스위스에서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스텔스 기술을 빼내기 위한 정황으로 의심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중국인 왕씨 가족이 구입한 스위스의 한 호텔이 F-35 전투기 기밀이 배치될 예정인 군사 기지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들의 의도는 첨단 전투기 기술을 빼내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중국의 부동산 소유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