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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AI 투자 명분 내세운 미일 공동펀드 구상 민간 자금난의 공공 부담 전가 우려 관세 유예와 정치성과 맞바꾼 구조적 한계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손정의(일본 이름 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미국 내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며,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으로 미일 공동 국부펀드 설립을 제안했다. 고율 관세 정책과 맞물려 이 구상은 양국 간 경제 협의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손 회장은 지난 1월 5,000억 달러(약 6,95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공개한 데 이어, 5월에는 그 규모를 7,000억 달러(약 9,730조원)로 확대했다. 하지만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이어지자, 미국과 일본 정부가 공동 출자하는 국부펀드를 통해 초기 부담을 분담하자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손 회장이 구상한 국부펀드는 미국 재무부와 일본 재무성이 주요 지분을 보유한 채 공동으로 소유·운영하는 구조로 설계 중이다. 이후에는 제한된 파트너 투자자들에게 일부 참여 기회를 열고, 장기적으로는 양국 일반 국민에게도 투자 경로를 확대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문제는 이 제안이 국부펀드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국부펀드는 자원 수익이나 무역흑자 등으로 발생한 초과 재원을 기반으로 장기 자산을 운용하고 세대 간 이전을 도모한다. 반면 이번 구상은 특정 민간 기업의 사업 위험을 정부가 떠안는 형태에 가깝다.

공공 명분을 앞세운 민간 자금 확보 전략
손 회장의 제안은 정치권 입장에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일본 자본을 미국 전략 산업에 유치하면서, 미일 간 고율 관세 갈등 완화라는 상징 효과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 기반 인공지능’이라는 정치적 메시지 또한 주목받는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이는 민간의 자금난을 공공이 대신 부담하는 형태에 가깝다. 소프트뱅크는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며, 정부가 펀드 명의를 제공하면 초기 손실은 사회화되고, 수익은 민간이 독점하는 구조가 성립된다.
결과적으로 이 펀드는 일본 정부에겐 관세 회피 수단, 미국 정부에겐 대규모 투자 성과를 내세울 수 있는 정치적 카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자본시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민간 자본만으로도 충분히 추진할 수 있는 사업에 국가 자금이 개입하는 것은 자금 배분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형 국부펀드, 구조적 한계 뚜렷
국부펀드는 일반적으로 자원 수출이나 무역흑자에서 발생한 초과수익을 기반으로 한다. 노르웨이의 석유 펀드, 아부다비의 ADIA, 싱가포르의 GIC 등은 이를 세대 간 자산 이전이나 경기 조절 장치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정치적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자본시장이 제한적인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주로 채택된다.
반면 미국은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7%에 달하고, 대외 순 부채도 상당한 수준이다. 게다가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민간 자본시장이 이미 잘 발달해 있어, 국부펀드 설립 자체가 구조적으로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다. 공식 통화 및 금융 기관 포럼(Official Monetary and Financial Institutions Forum, OMFIF)는 미국형 국부펀드가 자산 매각, 신규 차입, 또는 관세 수입의 특정 재원화 같은 비정상적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는 국제적 운영 원칙인 ‘산티아고 원칙’에도 어긋난다. 이 원칙은 국부펀드가 정치 개입 없이 투명하고 책임 있게 운영돼야 한다는 지침이다.
전 세계 국부펀드 운용 자산은 약 13~14조 달러(약1경8,000조~1경9,400조원)에 달하지만, 그 절반 이상이 15개 미만 국가에 집중돼 있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안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 주기가 짧고, 로비가 활발한 국가일수록 국부펀드는 특정 산업을 위한 정치 예산으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현실 직면한 소프트뱅크
소프트뱅크는 현금 유동성 압박을 받고 있다. 비전펀드는 최근 몇 년간 대규모 손실과 일회성 이익을 반복했고, 9개월 사이 보유 현금은 456억 달러(약 63조4,000억원)에서 306억 달러(약 42조5,000억원)로 줄었다. 자산 일부를 매각했지만, 현금 흐름은 개선되지 않았다. 2025 회계연도에는 4년 만에 연간 흑자 1조1,500억 엔(약 10조6,000억원)을 기록했지만, 비전펀드 2호는 여전히 5,260억 엔(약 4조8,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프트뱅크는 오픈AI에 최대 400억 달러(약 55조7,000억원)를 추가 투자하고, 미국 내 AI 인프라에 700억 달러(약 97조3,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100억 달러(약 13조9,000억원)는 공동 투자로 조달하겠다고 했다. 이처럼 의욕적인 투자 계획과 실제 자금 상황 사이의 괴리는 뚜렷하다. 국부펀드는 그 간극을 외교적 신뢰로 메우려는 장치다. 일본 정부는 자금을 투입하면 관세 완화를 기대하고, 미국은 선거 전 성과를 원하며, 손 회장은 정부가 기업 가치를 간접적으로 인정해 주길 바라고 있다.

주: 연도(X축), 금액(Y축)/순 현금 보유액(진한 파랑), 비전펀드 순손익(연한 파랑)
정치와 자본이 뒤섞인 관세 협상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략도 이 구상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 일본산 수입품에 대한 25% 고율 관세를 유지하되 '건설적인 투자'가 있으면 완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국부펀드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일본 측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 참여에 나설 때 관세 유연성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다.
일본으로선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국부펀드 참여냐, 아니면 자동차 산업의 타격을 감수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자동차는 일본의 대미 수출 중 28%를 차지하는 핵심 품목이다. 관세 장기화는 일본 제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백악관은 양자 협정 없이 관세가 유지될 경우, 다른 국가들에도 15~20% 수준의 보복 관세가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주: 연도(X축), 금액(Y축)/대미 일본 자동차 수출액(진한 파랑), 예상 관세 수입(연한 파랑)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국부펀드 계획을 일단 보류했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관세 수입을 왜 고위험 투자에 쓰려고 하느냐는 질문이 의회에서 제기될 수 있다. 실제로 과거에도 관세 수입을 특정 목적에 할당하는 방식은 법적 분쟁과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를 초래한 전례가 있다.
동아시아식 정치 자본주의의 위험
국부펀드를 지지하는 이들은 일본의 연금 적립기금(GPIF)과 한국의 국부펀드(KIC) 같은 민주주의 국가 사례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정치 개입에서 자유롭지 않다. GPIF는 2024년 일본 정부의 압력으로 전략형 ETF 비중을 확대했고, 한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법안과 함께 KIC의 투자 방향을 국내 산업 구제 쪽으로 전환했다.
OMFIF는 명확한 법적 방화벽과 운영 원칙이 없다면, 미국형 국부펀드는 외교적 메시지 전달이나 정치 보상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관세에서 출발해 일본식 국부펀드 모델을 미국에 이식하려는 시도는, 정치 개입이 일상화된 동아시아식 자본주의를 미국 재정 시스템에 들여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실질적 협력을 위한 대안
공급망 회복력 확보와 동맹 통합이 진짜 목표라면, 국부펀드 외에도 제도적 대안은 충분하다. 수출금융 기관을 통한 맞춤형 지원, 다자간 투자 심사 체계 구축, 핵심 인프라 보안 기준 상호 인정 등이 있다. 이들은 공공재 공백을 메우고, 공동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더 효과적이다. 관세를 무기화하는 악순환도 제도적 해법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인허가 절차의 일관성, 보조금 정합성, 공동 R&D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 등은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한 실질적 접근이다. 핵심은 민간 자금 부족을 주권 외피로 감추지 않는 것이다.
국부펀드 거부는 동맹의 약화가 아니라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입법부는 관세 완화를 규제 협력 성과와 연계하고, 국부 재정 투입은 팬데믹이나 에너지 위기처럼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에 제한해야 한다.
허상을 걷어내야 실질 논의가 가능
미일 국부펀드는 민간과 공공의 융합이라는 외양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금난에 빠진 기업과 관세를 전략 도구로 쓰는 행정부가 선거용 성과를 위해 손잡은 구조에 가깝다. 미국은 자본이 부족하지 않고, 일본은 제도적 수단이 없는 나라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시장과 동맹을 구분하려는 정책적 절제다. 국부펀드 구상을 접는 것은 시장 원칙에 대한 분명한 신호다. 그래야 협상도 본질로 돌아갈 수 있다. 실질적 관세 갈등, 공급망 불확실성 같은 핵심 문제를 정면에서 다룰 수 있다. 국부펀드를 다시 논의하게 될 때는, 그 출발점이 흑자와 절제, 정치 독립이라는 기본 원칙임을 상기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ariffs, Tech Dreams, and the Mirage of a US–Japan Sovereign Wealth Fund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