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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5,000 기대 과했나 증권가에 쏟아진 '매도 리포트' 방산업종 투자의견 하향 몰려

코스피(유가증권시장) 랠리로 줄줄이 치솟았던 국내 종목들이 올해 2분기 실적 발표를 계기로 고평가 논란이 일며 시장의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2분기에 아쉬운 성적을 낸 종목들에 대해 증권사들이 투자의견을 대거 하향하면서 과열 종목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는 양상이다.
예년 50개 미만이던 하향리포트 올해 2배 껑충
1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분기가 끝난 지난달부터 이날까지 국내 상장사에 대한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하는 증권사 리포트가 총 112개 발표됐다. 1개를 제외한 투자의견 하향 리포트가 모두 '매수'에서 사실상의 매도 의견으로 여겨지는 '중립'으로 내려간 사례였다. 투자의견을 상향하는 리포트는 하향 리포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개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도 2분기 어닝 시즌이 한창인 7월에 코스피가 연고점인 2,896.43까지 치솟는 등 순항했으나 같은 기간 발표된 하향 리포트는 38개뿐이었고, 오히려 상향 리포트가 43개로 더 많았다. 이때 증권사의 리포트들은 각 종목의 2분기 실적을 바탕으로 ‘과열 진단’을 대거 내렸다.
통상 증권사의 리포트들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환경 탓에 90% 이상이 매수를 권한다. 실제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애널리스트의 낙관적 편향’ 보고서를 보면. 2000~2009년 매도 의견을 담은 보고서 비율은 1.6%였는데, 2010~2019년과 2020~2024년엔 각각 0.1%로 급락했다. 대신 매수 의견을 담은 보고서는 2000~2009년 67.3%에서 2010~2019년 89.6%로 상승했고, 2020~2024년엔 93.1%에 달했다. 보고서 100건 중 93건이 ‘사라’는 의견인 것이다.
증권사 투자 의견이 매수 일색인 것은 이해 상충 때문이다. 김 연구위원은 “애널리스트도 증권사 직원이기 때문에 증권사의 수익 창출 압력을 벗어날 수 없다”면서 “잠재적 고객인 상장 기업이나, 중개 업무의 고객인 기관투자자가 보유한 종목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일례로 한 증권사가 어떤 기업에 대한 매도 의견을 냈다고 가정할 때, 이 기업이 유상증자를 할 경우 그 증권사를 주관사로 선정하기는 쉽지 않다. 또, 한 증권사의 기관 영업 부서가 기관투자자에게 어떤 기업을 추천했는데, 이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그 기업에 대한 매도 보고서를 썼을 경우 기관투자자가 ‘왜 그런 기업을 추천했느냐’며 이 증권사와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 가팔랐던 한국 증시의 상승세로 최근 연이어 과열 종목이 발생한 만큼 이번 실적 발표를 근거 삼아 투자의견 하향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이종형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코스피가 3,200을 넘으면서 많은 종목의 밸류에이션이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올라갔다”며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실적을 못 낸 경우 투자의견을 하향 조정하는 사례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산주에 매도 의견 집중
실적 발표 직후 투자의견을 낮추는 리포트가 집중된 업종은 올해 주도 업종인 방산이었다. 방산 빅4 중 하나인 LIG넥스원이 지난 7일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내놓자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등 5개사가 투자의견을 하향했다.
LIG넥스원은 이달 초까지만 하더라도 연중 주가 상승률이 130%를 넘는 등 순항했으나 실적 발표 이후 17%가량 하락했다. LIG넥스원의 실적 자체는 일회성 비용을 감안하면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흔들릴 수준이 아니었지만 2분기 실적을 계기로 시장에서 고평가론이 떠오른 것이다.
풍산 역시 퇴직급여충당금 등 일회성 비용으로 2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전망치를 밑돌자 흐름이 꺾였다. 지난달 주가가 연초보다 3배 넘게 뛰었던 풍산은 이달 1일 실적을 발표한 뒤 상상인증권 등 4개사가 투자의견을 낮췄고 주가는 20% 이상의 하락률을 나타내고 있다.
K뷰티 대열에서 밀려난 LG생활건강의 투자의견도 대거 낮아졌다. 달바글로벌과 한국콜마 등 K뷰티 최전선의 기업들도 최근 시장 전망치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내놨지만, 증권사들은 아쉽다는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목표가를 하향하지 않았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은 지난달 말 화장품 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아쉬운 실적을 발표했고 이후 증권사 4곳이 투자의견을 내렸다.
미래에셋증권은 정부가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고 밝힌 가운데 수익성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에 주목받아왔으나, 단기에 주가가 급등하며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4월 1만원선에서 횡보했던 미래에셋증권 주가는 지난 6월 23일 장중 2만5,35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현재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87배로 청산가치인 1배에 근접한 상황이다.이에 증권가에서는 미래에셋증권 목표가는 상향하고 투자의견은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조정했다.

공매도 잔고 4개월 만에 3배↑
이에 최근 공매도 대기 자금이 100조원에 육박하는 등 주가 하락을 베팅하는 움직임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일 기준 대차 잔고는 97조1,770억원으로, 지난달 21일 역대 최고치인 98조6,934억원 이후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대차는 주식 보유자가 증권사나 다른 투자자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거래로, 대차 잔고는 통상 공매도의 선행 지표로 활용된다. 증시가 본격적으로 상승 국면에 접어든 지난 6월 80조원을 돌파한 뒤 지난 1개월간 90조원 안팎으로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중이다.
공매도 순보유 잔고금액이 가장 많은 코스피 종목은 셀트리온으로 6,796억2,806만원이었다. 뒤를 한미반도체(4,763억2,237만원), 포스코퓨처엠(3,155억4,769만원), 한화시스템(2,052억5,556만원), SKC(2,021억8,797만원), 카카오페이(1,950억3,258만원), 미래에셋증권(1,720억4,239만원), 아모레퍼시픽(1,270억8,272만원), LG생활건강(1,139억5,568만원)이 뒤를 이었다.
셀트리온은 최근 실적 전망치가 계속해서 하향조정된 탓에 공매도 잔고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 2,425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역대급 실적 행진을 이어갔음에도 높아진 증권가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하면 올해 연결기준 셀트리온 매출액 추정치는 6개월 전 대비 5% 줄어든 4조2,610억원, 영업이익 추정치는 25% 감소한 1조1,303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권가에서는 하반기부터 비용 증가로 수익성 개선 폭이 더욱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