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AI 모델 40%가 중국산, 미국이 통제할수록 탄력받는 ‘중국 AI 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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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AI 시장, 美-中 양강 구도 고착 오픈소스로 글로벌 시장 공략 中 AI 생태계, 논문·특허 등 뒷받침

중국 기업들이 저비용·고성능 AI 모델을 잇따라 내놓으며 글로벌 AI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지난 1월 ‘딥시크(DeepSeek) 쇼크’ 이후 주요 중국 테크 기업뿐 아니라 AI 스타트업들도 미국 빅테크에 필적하는 AI를 내놓는 양상이다. 특히 중국 AI 기업들은 무료로 개발자들에게 공개하는 오픈소스 방식을 통해 산업 곳곳에 중국산 AI를 퍼트리고 있다.
알리바바, 매개변수 1조 개 '세계 최대 대형 언어모델' 공개
9일 IT업계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지난 6일 매개변수 1조 개의 세계 최대 대형 언어 모델(LLM) 큐웬3 맥스 프리뷰(Qwen-3-Max-Preview를 공개했다. 큐웬은 오픈AI의 챗GPT와 유사한 챗봇으로, 2023년 4월 처음 공개됐다. 이때부터 알리바바는 큐웬을 자사의 다양한 서비스에 통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2024년 6월에 큐웬2를 출시했고, 같은 해 7월에는 큐웬2.5를 발표했다. 올해 4월에는 큐웬3를 공개했다. 큐웬3는 혼합 전문가 구조(MoE)를 채택했으며 2,350억 개의 매개변수를 갖추고 있다. 논리적 추론 능력이 대폭 높아졌으며, 수학과 코딩 분야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보여줬다.
알리바바의 큐웬이 시장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큐웬3가 출시된 이후다. 이번에 공개된 큐웬3 맥스 프리뷰는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알리클라우드를 통해 체험할 수 있다. 알리바바는 큐웬3 맥스의 경쟁력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며, 폐쇄형 언어 모델 시장에서 경쟁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알리바바는 내부 테스트에서 큐웬3 맥스 프리뷰가 이전 '최고' 모델을 능가했다고 밝혔다. 또한 앤스로픽(Anthropic)의 클로드 오푸스 4(Claude Opus 4), 딥시크 V3.1, 문샷 AI(MoonShot AI)의 키미 K2(Kimi K2) 등 경쟁사 모델을 5가지 벤치마크에서 능가했다고 주장했다.
가성비 좋은 중국산 AI 쏟아져
알리바바 외에 다른 중국 IT 기업들도 AI 모델 출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AI 스타트업 Z.ai(옛 Zhipu AI)는 지난 7월 말 새로운 AI 모델 ‘GLM-4.5’를 공개했다. 회사가 자체 실시한 AI 성능 평가에서 미국 AI 기업 앤스로픽의 클로드 4 소넷이나 구글의 제미나이 2.5 프로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Z.ai 측은 “저비용·고성능 AI로 유명한 딥시크보다 모델 운용 비용이 저렴하다”고 밝혔다. 실제 엔비디아의 구형 AI 칩인 ‘H20’ 8개만으로도 구동될 정도로 효율성도 높다. 딥시크의 R1 모델의 경우 H20보다 성능이 좋은 ‘A100’ 16개 정도가 필요하다.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도 중국 AI 신제품이 쏟아졌다. 텐센트의 AI 모델 ‘훈위안 3D 월드 모델 1.0’은 이미지나 글을 입력해 가상의 3D(입체) 장면을 만들 수 있다. 텐센트는 “가상현실(VR)이나 비디오 게임 제작 과정을 단순화할 수 있다”고 했다. 센스타임은 이미지나 음성, 영상 등을 처리할 수 있는 멀티모달 AI ‘센스노바 V6.5’를 공개했다. 추론 단계에서 데이터 처리량을 35% 이상 늘리는 등 전작보다 성능이 대폭 개선됐다. 센스타임은 “구글, 앤스로픽 등 미국 경쟁사 제품을 능가했다”고 했다.
성능과 함께 가성비도 갖췄다. 문샷AI는 이달 ‘키미 K2’를 공개하며 코딩 같은 특정 분야에서 오픈AI의 챗GPT와 앤스로픽의 클로드를 능가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키미 K2에 대해 “또 다른 딥시크 순간”이라고 했다. 강력한 AI 모델로 평가한 것이다. 사용 비용도 딥시크 수준으로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업체들이 AI 모델을 쏟아내며 시장을 장악해 갈 수 있는 건 이들이 택한 AI 공개 방식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AI 모델은 오픈소스 방식을 취한다. 딥시크, 텐센트, 문샷AI 모두 오픈소스 모델이다. 회사가 독점적으로 코드를 가지고 이를 기반으로 AI 제품, 서비스를 개발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AI 기업과는 다르다. 현재 오픈AI나 구글, 앤스로픽은 이런 폐쇄형 구조로 AI를 개발한다. 오픈소스는 무료기 때문에 많은 개발자가 이용하고, 이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 또 다른 AI 모델을 만드는 데 참고할 수 있고, AI 응용 제품이나 AI 서비스에도 활용할 수 있다. 알리바바의 AI 모델 큐웬 같은 경우 파생 모델이 10만 개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오픈소스 방식이 미국의 대중 제재 속에서 중국 정부가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인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상위 AI 모델 25% 중국서 개발
이 같은 중국의 AI 굴기는 미국과 중국의 양강 구도를 고착화하기에 이르렀다. AI 성능 벤치마크 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Artificial Analysis) 인텔리전스 인덱스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의 xAI가 개발한 그록4가 73점으로 1위를 차지했고, 오픈AI o3-pro(71점), 구글 제미나이 2.5 프로(70점), o3와 o4-mini high(각 70점)가 공동 3~5위권에 올랐다. 상위 5개 모델 모두 미국 기업이 개발한 것이다.
6위는 중국 딥시크의 R10528 모델(68점)로, 이외에도 알리바바의 큐웬3, 미니맥스(MiniMax), 문샷AI의 키미 K2, 딥시크 V3 등이 상위 20위권에 포함됐다. 미국은 그록, GPT, 클로드, 제미나이, 라마 등 총 14개 모델을 배출하며 기술 주도권을 지켰고, 중국은 총 5개 모델로 그 뒤를 이은 것이다. 프랑스 미스트랄(Mistral AI)의 마지스트랄 스몰(Magistral Small)만이 유일하게 미·중 이외 국가에서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의 상위권 진입은 AI 논문과 특허, 인재 기반에서 이미 확보한 양적 우위가 반영된 결과다. 논문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디멘션즈(Dimension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은 AI 관련 논문 2만3,695건, 특허 3만5,423건을 발표하며 각각 전 세계 논문의 절반 수준과 미국·영국·캐나다·일본·한국 5개국 총합의 약 13배를 기록했다.
이처럼 중국의 AI 굴기가 가속화하고 있지만 미국의 독주체제를 위협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기업들이 AI 개발에 뛰어든 이후에도 챗GPT 등 미국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중국이 만든 AI 모델은 아직 미국 제품의 성능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미국 기업들은 AI 칩 시장도 장악하고 있어 독주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막대한 정부 지원을 업은 중국의 성장 속도가 가팔라 미국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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