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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OTT 시대, 콘텐츠 홍수 속 원천 IP(지식재산권) 확보와 발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TV, 영화, OTT 등 영상 미디어 플랫폼의 확장에 따라 소재의 다양화가 핵심 키로 부각됐기 때문. 웹툰·웹소설의 영상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동시에 IP의 파워도 강해졌다. 오죽하면 플랫폼은 적자인데 IP를 보유한 제작사는 몸집을 불리는 형국이다.
웹툰의 영상화는 2006년 <다세포 소녀>부터 시작됐다. 이후 <다모>(2003), <풀하우스>(2004), <궁>(2006), <미생>(2014) 등을 거쳐 자리를 잡았다. 영화계에서도 주호민 원작의 <신과 함께>(2016)가 천만관객을 돌파하며 OSMU(one source multi-use)로서 가치를 입증했다. 최근 작품으로는 지난 9월 첫 방송한 육성재 주연의 MBC 금토극 <금수저>가 웹툰 원작이며, 11월 신작 기대작으로 손꼽히는 배우 송중기 출연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이 웹소설 원작 드라마로 관심을 모았다.
16년 동안 진행된 웹툰·웹소설 영상화 흐름은 지금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 그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가 영상화한 IP 수는 110편 이상이다. 네이버웹툰(40편 이상) 보다 3배가량 많은 수다, 카카오엔터는 지난 한해 동안 약 50여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했는데, 과거 14년간의 영상화 건보다 두 배 이상 많아졌다.
카카오엔터의 경우 웹소설을 웹툰으로 제작하는 ‘노블코믹스’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했고, 웹툰과 시나리오를 동시에 개발해 <승리호>를 내놨다. MBC <옷소매 붉은 끝동>과 JTBC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노블코믹스된 작품을 영상화한 케이스다. 또 카카오엔터 IP로는 최근 방송한 드라마 SBS <사내맞선> <어게인 마이 라이프>, KBS2 <징크스의 여인> 등이 있다.
OTT를 비롯한 영상 미디어 업계가 웹툰과 웹소설로 대변할 수 있는 IP 확보에 사활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웹툰과 웹소설은 애초에 실사화를 염두하고 만든 장르가 아니다. 그렇기에 구속되지 않은 상상력과 일반적이지 않은 소재, 설정, 캐릭터 등이 영상화됐을 때, 기존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새롭고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즉,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차별화를 꾀할 수 있고 익숙함에 질린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전 한국의 드라마의 절대적 키워드는 ‘사랑’이었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사랑하고, 법을 집행하던 검사도 사랑한다. 경찰관은 범인을 잡다가도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죄를 짓기도 한다. ‘기승전-사랑’으로 끝나던 한국 콘텐츠는 OTT 시대를 맞이하며 다양성으로 눈을 돌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기작만 살펴봐도 좀비 사극 <킹덤>(2019), 육군 군사경찰 <D.P.>, 한국 전통 놀이로 꾸민 데스 게임 <오징어게임>(2021), 좀비 학교물 <지금 우리 학교는>, ‘마약왕’ 조봉행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수리남>(2022) 등 소재, 배경, 구성이 다채롭다. 왓챠 <시맨틱에러>는 음지에 있던 BL(Boys love) 장르를 수면 위로 꺼내 놓으며 유행을 선도하기도 했다.
콘텐츠가 필요한 플랫폼들의 IP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작사가 우위를 점령했다. OTT 플랫폼은 적자인데 제작사는 몸집을 불리는 형국이 펼쳐졌다. 이에 플랫폼은 직접 IP를 발굴하기 위해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콘텐츠 수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플랫폼은 어떤 웹툰, 웹소설을 원할까? 카카오엔터 전대진 이사는 28일 열린 2022 콘텐츠 인사이트에서 ‘웹소설, 웹툰 그 대중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로 여러 궁금증에 답했다.
전 이사가 강조한 것은 장르 불문 치트키 ‘재미’다. 그는 “영상 업계가 웹소설, 웹툰계보다 낯선 것에 민감하다. 영상으로 보여지다 보니 훨씬 익숙하게 느껴진다”면서 ‘시각의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웹소설·웹툰의 재미가 대중의 욕망을 투영시켜서 그것들을 해소해나가는 대리만족에 있다면, 영상은 좀 다르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의 인기는 시청자의 욕망의 투영과 대리만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흥미, 액션의 쾌감,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등 복합적인 요소가 동반된다.
장르에 따른 차이가 있는 만큼 어디에서도 통용될 소재와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낯선 이야기’라고 강조하던 전 이사는 “결국 ‘재미’가 익숙함조차도 무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라면 플랫폼 불문 어디서라도 환영받을 수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
최근 웹소설과 웹툰은 창작자만의 세계관이 확고해지는 추세다. 그런 세계관은 어떤 플랫폼에 풀어놨을 때 가장 시너지 효과를 불러올지 아무도 모른다. 전 이사는 “OTT도 많이 열려있다. 영상화를 고려해 작품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도전할 근거가 될 것”이라며 웹소설, 웹툰의 영상화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시청률 15%를 돌파한 ENA 인기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드라마 히트 후 웹툰, 뮤지컬 제작 등 IP 확장을 시도했다. 보통 웹툰에서 영상화로 향하는 화살표가 반대로 작용한 것이다. 슈퍼 IP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앞으로도 콘텐츠 소재, 원작 등의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가 담긴 어떤 것도 영상이 될 수 있는 시대, 플랫폼과 제작사 모두 좋은 아이템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만큼 새로움을 추구하는 OTT 이용자들은 한층 더 다채롭고 특별한 콘텐츠를 누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