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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가 올해 신규 벤처투자 목표를 5조1,000억원으로 설정했다. 전년 7.8조 대비 34% 감소한 수준이다. 모태펀드 예산 삭감 등 정부의 지원 규모도 줄어든 가운데, 올해 1분기 스타트업 투자유치 금액이 8,958억원으로 집계됨에 따라 투자 혹한기가 지속되는 분위기다.
정부,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 변수 반영해 목표치 낮춰
정부는 최근 자체 평가위원회를 열고 신규 벤처투자 목표액 설정 등의 내용을 담은 ‘2023년도 성과관리 시행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신규 벤처펀드 투자액은 중기부의 주요 성과지표다. 2018년 3조원으로 시작한 신규투자 목표액은 지난해 7.8조까지 불어났고, 지난해를 제외하면 실제 연말 투자실적도 목표치를 웃도는 실적을 냈다.
중기부는 올해 처음으로 전년 대비 신규 투자 목표치를 낮게 잡았다. 매년 신규 벤처투자 목표액을 예상치보다 2~7% 정도 높게 설정해왔으나, 벤처투자 시장의 혹한기가 장기화될 거란 전망을 반영해 보수적으로 산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중앙은행들의 굳건한 긴축 기조와 함께 지난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에 따른 금융 시스템 위기 가능성이 여전히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아울러 중기부는 모태펀드 출자를 통해 조성할 벤처펀드 목표 금액도 지난해보다 크게 줄였다. 올해 벤처펀드 결성 목표액은 1조5,000억원으로, 정부가 국정과제로 민간주도형 모태펀드 활성화를 외치고 있는 만큼 향후 추가 출자가 있을 가능성은 낮을 거란 것이 업계 분석이다.
1분기 스타트업 신규투자 성적도 ‘저조’
올해 스타트업들의 투자 실적도 심상치 않다. 지난 7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집계한 1분기 스타트업 투자유치 금액은 8,9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 토막이 났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한 수치로, 투자 건수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1% 줄어든 271건으로 기록됐다.
투자 규모별로 살펴보면 현재 시장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1분기 기준 300억원 이상 대형 투자는 총 4건으로 지난해 대비 84.6% 대폭 감소했고, 1,000억원 이상 초대형 투자 유치도 전년 10건 대비 올해 1건으로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정부가 당초 목표한 올해 신규 벤처투자 목표액 채우기 어려울 거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국내 한 VC 임원은 “벤처캐피탈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다음 연도 벤처투자 시장 전망이 발표되지 않고 있다”면서 “협회에서조차 현재 악화된 시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오래갈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올해 남은 기간 시장 부양책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민간모펀드’ 도입하는 정부, 벤처 업계 반응은 ‘싸늘’
한편 오늘 11일 국무회의에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벤처투자법) 개정안’이 의결됨에 따라 이르면 오는 9월부터 중기부가 추진해온 ‘민간재간접벤처투자조합'(이하 민간 모펀드)이 도입될 전망이다. 민간도 모태펀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민간 모펀드는 민간 자본을 모아 벤처기업 펀드에 다시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다. 펀드의 운용 주체는 창업투자회사·신기술금융회사·자산운용사·증권사 등이며, 펀드 출자금의 약 70%는 다른 자펀드 출자에 사용되어야 하는 특징이 있다.
벤처투자법 개정안과 관련해 이영 중기부 장관이 “민간 모펀드 도입을 통해 벤처투자 시장에 민간자금의 유입이 늘어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반면, 벤처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고금리 등 대내외 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과 더불어 민간 모펀드를 통해 제공되는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시장 침체기가 지속되는 상황에도 민관 중심의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 목표를 고수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존재한다. 국내 한 VC 심사관은 “민간 모펀드 도입 등의 새로운 제도로 새로운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수준의 인센티브론 대기업 등 업계 전반이 자금을 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현재 시장 상황에서 정부가 섣불리 발을 뺀다면 그간 수십조원을 투자해 만든 벤처투자 생태계가 다시 무너질지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리 인상 기조와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 공포가 만든 불확실성에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 주요국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당장의 침체보다 지금의 불황이 지속될 거란 전망이 장기화되고 있단 사실이 업계엔 더욱 치명적이다. 미래를 위한 정부의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