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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09년부터 2020년까지 약 9,000억원을 투자해 외국 명문대학 10개교 유치, 학생 1만 명이 공부할 수 있는 공동 캠퍼스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로 송도국제도시에 해외 대학들을 적극 유치했다.
14년이 지난 현재, 유치했던 7개 대학 중 2개교는 폐교 상태고, 남은 5개교도 정부 지원금을 빼면 적자 상태다. 심지어 뉴욕주립대의 경우 재정 악화를 타파하기 위해 불법 영어교육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관계자들은 정부 지원금이 끊기면 폐교하겠다는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현장의 상황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해외 대학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 - 한국인의 '꽌시 문화'
한 대학 교육계 관계자는 해외 대학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없는 이유로, 타국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하기 힘든 '꽌시 문화'를 들었다. 국내 기업들 및 예산배정 담당 공무원들과 산학연을 바탕으로 한 꽌시 문화가 탄탄하게 갖춰져 있는 탓에 해외 대학들이 한국에서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기업들과 발전적인 산학 연계를 진행하고, 정부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 산하 기관들에서 B2G 사업을 유치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당장 졸업생을 취직시켜 줄 수 있는 네트워크라는 측면에서 국내 대학들은 교육 수준에 상관없이 교수가 기업들에 요청을 하면 기업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산-학 연계 구조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국내 대학 경영학과 재무 담당 교수들의 경우 국내 금융기관들이 향후 금융위원회나 금감원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심사위원으로 위촉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교수에게 각종 프로젝트를 제공하는 등 그들의 요청을 쉽사리 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유치한 해외 대학교수들에게는 이같은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 만큼, 기업들이 해당 대학 졸업생들을 굳이 채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철저하게 인력의 수준만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학 교육은 졸업 후 취업을 통해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이른바 '경험재'인 만큼, 신생 대학들은 쉽사리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 지원이 없는 대학이라면 더더욱 우수한 학생들의 선택처가 될 수 없다는 설명도 따라 나온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내 K모 대학의 한 교수는 한국의 '학벌주의'가 해외 대학 분교의 실패를 낳는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한국인들 대다수가 해외 대학은 '하버드'를 제외하고는 잘 알지 못하는 데다 국내에서도 명문대로 알려진 '스카이', '서카포' 등의 이름만 알고 있는 탓에, 해외 대학 순위 100위권의 대학이 들어와도 학비를 지원하는 학부모들과 그 자녀들은 국내 유명 대학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스위스AI대학의 이경환 교수는 한국인 학생들과 면접을 진행하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해외 대학을 전혀 알지 못해 학부모들이 국내의 '안전한' 대학을 선택할 것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고급 교육에 대한 강력한 수요 때문에 해외 대학을 선택하는 것을 자주 봤다고 답했다. 또 "국내 대부분의 대학이 '학벌주의'에 젖어 어차피 대학 교육이 현장에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적당히 교육하고 학생들이 알아서 직장에서 배워서 일을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학 교육이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답변도 나왔다.
'학벌주의'에 대한 지적은 위의 K모 대학교수가 대학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교수 회의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으면 '그건 서울대도 못 하는 건데 우리가 왜 하냐?'는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정부가 지원금을 내놓으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며 예산 배정을 피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답변했다. 지금처럼 현상 유지만 하면 정원 미달 없이 학교도 정상 운영되고, 교수 월급 받는 데도 지장이 없으니 교육을 개혁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 개혁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 정부 지원금과 반값 등록금
K모 대학교수는 결국 정부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대학 재정상, 새로운 시도는 정부가 지원할 때만 가능한 구조가 고착됐다고 지적한다. 반값 등록금으로 시작된 대학 재정 옥죄기가 가계 부담은 덜어줬을지 몰라도 국내 대학들의 교육 수준을 크게 떨어뜨린 동시에 재정 자립도를 낮춰 정부가 모든 개혁의 짊을 다 짊어져야 하는 상황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송도국제도시의 한 해외 대학 관계자는 "의대 입시 이외에 경쟁률이 뚝 떨어졌다는 것은 사실상 국내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산 증거"라며 "라이선스 주는 의대, 약대, 치대, 로스쿨 정도만 살아남고, 나머지 대학 교육은 한국에서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수년 내에 보편화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스위스AI대학 이경환 교수도 한국에서 대학 교육을 개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 같다며 "군부독재 이후로 정부가 개혁해서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드문데, 대학 개혁은 정부 이외에 달리 개혁에 나설 주체가 없으니 더더욱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교육 인프라를 갖추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데, 더 늦기 전에 대학 자율화를 해 줘야 그나마 쌓아 놓은 인프라라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냐"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