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55~79세 사이의 고령층 중 일하는 사람이 900만 명을 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0%를 넘어섰다. 30인 이상 기업 10곳 중 7곳이 고령자를 재고용 형태로 계속고용(정년 이후에도 계속 고용하는 것)하기를 원한다는 조사 결과도 도출됐다. 다만 고령층이 일자리의 파이를 가져가는 만큼 청년들의 취업률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여 관련 정책 수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층 취업률 증가, 기업들도 "'계속고용'할 것"
25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국내 고령층(55~79세) 인구는 1,548만1,000명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8만4,000명 늘었다. 2019년 1,384만3,000명이었던 고령층 인구는 계속 늘어나 지난해 처음으로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올 5월 기준으로 고령층 인구는 15세 이상 인구(4,537만9,000명)의 34.1%로 이미 3분의 1을 넘었다.
고령층 수가 늘어난 만큼 고령층 취업자 수도 늘었다. 2019년 773만9,000명으로 8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던 고령층 취업자는 올해 912만 명까지 늘었다. 처음으로 9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실업자까지 포함하는 고령층 경제활동인구도 1년 사이 34만9,000명 늘어나 올 5월엔 932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고령층 경제활동 참가율(60.2%)와 고용률(58.9%)도 모두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고령층 인구 중 1,060만2,000명(68.5%)은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는 1년 전보다 25만4,000명 늘어난 숫자다. 일하기를 원하는 이유로는 생활비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55.8%로 가장 많았고, 일하는 즐거움(35.6%)이 그 뒤를 이었다. 현재 일자리가 있는 고령층의 93%는 계속 일하기를 희망했다.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고령층이 증가한 데는 연금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올 5월 기준으로 고령층 인구 가운데 지난 1년간 연금을 받은 사람의 비율은 50.3%(778만3,000명)로 겨우 절반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도 고령자 고용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고령자 계속고용정책에 대한 기업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67.9%는 ‘재고용’ 방식으로 고령자 계속고용을 원하고 있었다. 근로자를 계속고용하는 기업 가운데 66.4%는 ‘고령 근로자의 전문성 활용’을 이유로 꼽았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새로운 인재를 배출하는 것보다 기존의 고령 근무자를 계속고용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파이 가져가는 고령층, 청년들은 "더 힘들어"
다만 고령층이 가져가는 일자리 파이가 많아질수록 청년층의 취업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전체 취업자 수는 2,883만5,000명으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35만1,000명 증가했지만 고령층을 제외한 연령대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다. 60세 이상 취업자는 37만9,000명 늘었지만 60세 미만 취업자는 2만8,000명 감소한 것이다. 특히 청년으로 분류되는 15~29세 취업자는 1년 전보다 9만9,000명 줄면서 7개월 연속 쪼그라들었다. 이에 대해 통계청은 "저출산으로 청년 인구 자체가 감소하면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드는 반면 고령화로 인해 고령층의 일자리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주도의 노인 공공일자리 창출이 활성화된 것도 고령층 일자리 수요 증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점차 증가하는 취업률이 결국 '착시'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사회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고령층 일자리보단 청년 일자리다. 미래 가능성이 높은 청년들의 취업률이 높아야 지속가능한 미래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경륜 있는 고령층의 일선 참여는 당장에는 높은 효율을 보여줄지 모른다. 그러나 청년 취업률이 낮아짐으로써 청년들의 경력이 부족해진다면 이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창출해 나가는 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다.
취업자 증가가 고령층에 쏠리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역대 최대 고용률에 주목하며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고 있어 일각에서 비판이 쏟아진다. 기획재정부는 "5월 고용률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고용 호조세가 지속됐다"면서 "앞으로도 대면 서비스업 등을 중심으로 고용 호조세가 지속되며 고용률·실업률은 양호한 흐름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년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러잖아도 취업률이 낮은 형국인데, 현 상황이 그대로 지속된다면 경험 없는 청년·중장년층이 늘어나 취업률은 더욱 곤두박질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업 못 이긴 청년들, '프리터' 길 걷는다
세간에 '우리나라의 미래는 일본의 역사를 따라가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일본은 정년을 완전히 없애는 기업이 늘고 있다. 고령화로 점점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활용해 일손 부족 문제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노력도 기업들의 고령자 채용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3년 노동자가 희망하면 65세까지 고용하도록 법을 개정한 데 이어 지난 2021년엔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기업들이 노동자의 취업 기회를 70세까지 보장하도록 노력할 것을 의무화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현재 70세 이상 고령자도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은 31.5%로 집계됐다. 이는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올해는 이 비율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최근 일본 청년들 사이에선 '프리터(フリーター, Freeter)’라는 고용 형태가 급부상했다. 프리터란 프리랜서(Freelancer)와 아르바이트(Arbeit)의 합성어로 프리아르바이터의 줄임말이다. 정규직 이외의 취업 형태, 즉 아르바이트나 파트 타이머 등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프리터에 해당한다.
하지만 프리터의 증가는 국가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프리터란 대부분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경험과 숙련을 통한 고급 인력 수급이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또 노동 시장적인 측면에서는 잠재 실업 군과 잉여 노동력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단기적으로는 인건비 감소 등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우수하고 숙련된, 기업 경쟁과 성장에 있어 도움이 되는 고급 인재들의 양성 기회를 줄이는 만큼 경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손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프리터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베노믹스 등을 제창하며 해결에 나선 바 있으나, 큰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우리나라 또한 2010년을 기점으로 프리터가 늘어났다. 청년들이 실업과 고학력 취업난에 시달리며 프리터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프리터의 증가는 국가적 손실을 불러일으키는 만큼, 일본의 사례를 통해 이에 대한 대책을 빠르게 세우는 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발자취를 그대로 뒤따르고 있다. 고령층 일자리 창출도 물론 중요한 사회적 이슈지만, 청년층 취업률 증가 또한 사회적,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 중 하나다. 일본 사례를 바탕으로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