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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펑 중 부총리,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초대로 방미 "양국의 건설적 관계, 전 세계 국가에 이익될 것" 시진핑 APEC 정상회의 참석 여부 놓고 '대미 압박' 지적도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미국으로 초대하며 경색된 양국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간 회담이 추진 중인 가운데 양국의 분위기가 반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시 주석이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나서는 등 서방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시 주석의 APEC 정상회의 참석 여부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중국 지도부가 최근 미국과의 관계 회복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만큼 참석에 무게가 실린다.
"양국 잠재적 협력 분야 논의, 강화된 약속 기대"
6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다수의 외신은 옐런 장관이 오는 9일과 10일 허 부총리를 자국으로 초청했다고 보도했다. 미 재무부 관계자는 “이번 회담은 중국의 불공정 경제 행위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표출하는 동시에 저소득 국가에 대한 부채 탕감, 기후 변화 등 양국의 잠재적 협력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추진됐다”고 밝히며 “회담을 통해 양국의 경제 관계에 관한 보다 강화된 약속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옐런 장관 지난 7월 방중 일정 중 허 부총리와 한 차례 회담을 가지고 양국의 경제 및 금융 분야 고위급 대화 채널을 복원한 바 있다.
최근 양국의 관계는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대면하며 경쟁이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자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지난 2월 중국 정찰풍선 사태를 계기로 전보다 악화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해당 사건을 전후로 미국과 중국은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문제로 대립하며 세계 경제에 위기감을 고조시켜 왔다.
옐런 장관은 허 부총리와의 회담 사실을 알린 이날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과 중국은 함께 일하고 협력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안정적이고 건전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미 행정부의 외교 원칙임을 강조했다. 이어 “세계 경제의 40%를 지탱하는 미국과 중국의 건설적 관계는 양국은 물론 전 세계 국가들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며 “경제는 뺏고 뺏기는 싸움이 아니며, 양국의 이익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안보에 있어서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옐런 장관은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는 타협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강조하며 “이 때문에 (중국을 향한) 표적 규제 조처를 해 온 것이며, 이는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안보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상심리 내세운 중국, 악수 청한 미국
중국은 시 주석이 지난달 초 미국 상원 대표단을 만나 “양국의 관계를 개선해야 할 이유는 1천 가지나 있지만, 관계를 망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말하며 화해 무드 조성에 돌입했다. 이후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과 회담을 가졌으며, 이달 4일부터 7일까지는 셰전화 중국 기후변화특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특사와도 대화를 나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이같은 변화에 대해 “최근 빈번한 중국과 미국의 층위별, 분야별 접촉 및 교류는 양국 수교 이후 드문 사례”라고 평가하면서도 “현재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매체는 뤼샹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한쪽에선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쪽에선 봉쇄와 억압을 하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고 짚으며 “양국 정상 간의 만남이 성사된다면, 그것은 회담에 앞선 미국과 중국의 협상이 더 많은 결과를 도출했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APEC 정상회의에 앞서 물밑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함과 동시에 원하는 수준의 성과가 가시화된 후에야 시 주석의 참석을 발표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신중한 행보는 그동안의 악화한 관계에 대한 ‘앙금’으로 풀이되고 있다. 전 정부에서 시작된 무역 제재를 비롯해 각종 경제, 안보 이슈 압박이 자국의 경제에 큰 타격을 불러온 만큼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발동한 모습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APEC 참석이 거의 확실시된 상황에서도 중국이 공식 발표를 미루는 것 또한 이에 대한 방증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외교 당국자는 이같은 중국의 태도를 ‘일종의 대미 압박 카드’라고 정의하며 “중국은 관영 언론의 입을 빌려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 행정부를 애태우고 자국에 유리한 약속을 받아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며 관계 정상화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중국에 파견해 왕이 부장과 접촉하는 등 본격적인 대화에 나설 의지를 보였으며, 이후 블링컨 국무장관,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이 줄줄이 중국을 방문하며 꾸준히 양국 관계 정상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에 대해 미국 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과의 협력으로 다양한 국제 문제에 대처하는 동시에 내년 있을 중간선거에서 재선에 유리한 입지를 다지려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중 정상회담, 내년 WTO 회의에도 영향
아시아태평양 공동체의 경제성장과 번영을 목표로 1989년 창설된 APEC은 매년 11월 회원국을 순방하며 정상회의를 연다. 올해 의장국인 미국은 정상회의 주제를 ‘모두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 가능한 미래 창조(Creating a Resilient and Sustainable Future for All)’로 선정하고 3대 핵심 의제로 상호연계(Interconnected), 혁신(Innovative), 포용(Inclusive)을 내걸었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중국이 치밀한 물밑 작업에 들어간 만큼 이번 정상회의에서 어떤 성과를 챙겨 돌아갈지 주목하고 있다. 내년 2월 개최되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미·중 갈등 확대로 인한 자유주의 무역 체제 붕괴 위험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당초 전문가들은 해당 사안에 대한 대응책을 찾기까지 상당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최근 미국과 중국이 관계 회복에 의지를 보이며 식량 안보, 어업 보조금 관행, 지식재산권 및 이커머스 분야 등 여타 주제에 대한 논의에 보다 더 심혈을 기울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APEC 정상회의장에서 펼쳐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화가 전 세계의 경제 정상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