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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압박에 식품 업계선 슈링크플레이션 확산, “눈 가리고 아웅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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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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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가격 유지한 채 '중량 또는 용량' 줄이는 사례 속출
정부의 제품 가격 인상 억제 정책이 ‘풍선효과’ 불러와
'펩시, 네슬레' 등 글로벌 식품기업들도 제품 용량 줄이기에 적극적
사진=홈플러스 인스타그램

국내 식품 업계에서 기업이 가격은 유지한 채 제품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사례가 늘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제품 가격 동결 압박 등 인위적인 물가 억제 정책에 따른 풍선효과가 기업들의 사업전략 변경을 유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슈링크플레이션은 공급망 불안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및 팬데믹 이후 임금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럽에선 한 대형 유통업체가 슈링크플레이션 기업 명단까지 공개하는 등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기업들의 태도, ‘슈링크플레이션’

6일 식품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이달 초부터 냉동 간편식품 ‘숯불향 바베큐바’ 중량을 280g에서 230g으로 줄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해당 제품의 판매가는 5,600원으로 동일하지만, g당 가격은 20원에서 24.3원으로 21% 가까이 올랐다.

g당 가격을 올린 건 CJ제일제당뿐만이 아니다. 동원F&B도 10월부터 ‘양반김’의 가격을 봉지당 700원으로 유지했지만, 중량은 기존 5g에서 4.5g으로 낮췄다. 같은 기간 ‘동원참치 라이트스탠다드’ 역시 캔당 3,300원의 가격은 동일하게 판매하고 있으나, 중량은 100g에서 90g으로 10% 줄였다. 이 밖에도 해태제과의 ‘고향만두’, 오비맥주의 ‘카스’ 번들 제품 등 국내 식품 업계 주요 상품들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중량이나 용량이 이전보다 줄었다. 또 KFC 등 일부 업체들은 기존 무료로 제공하던 상품들에 대해 추가금을 받기 시작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어든다는 뜻의 ‘슈링크’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기업이 판매제품의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을 통한 판매량 유지와 비용 절감에 따라 수익성을 높일 수 있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기업들이 가격 인상 대안으로 주로 사용한다.

정부 "슈링크플레이션 모니터링 강화할 것"

슈링크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자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에 팔을 걷어 올렸다. 먼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일 커피, 아이스크림, 우유, 설탕, 라면, 빵, 과자 등 7개 품목에 대한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 물가를 관리하는 ‘전담 관리제’를 도입했다. 정부는 그간 쌀, 축산물, 채소·과일 등 농축산물은 품목별로 담당자를 둬 관리했으나 가공식품은 제외했었다.

기획재정부는 물가안정현장대응팀을 신설해 물가 상승 관리에 나섰다. 기재부에 따르면 홍두선 차관보, 이지호 민생경제정책관 등 기재부 실·국장급 간부들이 현장 방문을 통해 주요 품목 수급 현황 점검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원가가 상승에 따른 식품 업계의 부담을 이해하지만, 원재료 인상폭보다 제품 용량을 더 줄이면서 g당 가격 인상을 꾀하는 건 일종의 눈속임”이라면서 “관련한 행위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향후 업계 간담회 등을 통해 이 같은 행위에 대한 자제를 당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빠르면 이번 주부터 농식품부를 비롯한 물가 관련 부처 합동으로 물가관계차관회의가 있을 예정이다. 권재한 농업혁신정책실장은 “식품업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소비자가 우려하고 있으니 업계가 이를 유념해달라고 계속 당부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10월 20일 조승환 해수부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국내 대표 천일염 가공업체인 대상의 양지물류센터(경기 용인시)를 방문해 소급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사진=해양수산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이미 세계적인 현상

슈링크플레이션은 국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으로 꼽히는 공급망 불안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팬데믹 이후 임금 상승 등의 문제는 현재 전 세계가 예외 없이 겪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슈링크플레이션에 허덕이는 대표적인 지역은 바로 유럽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뾰족한 삼각뿔로 알려진 스위스의 토블론 초콜릿이 있다. 토블론의 제조업체인 몬덜리즈는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영국에서 판매되는 초콜릿 용량을 줄이고 삼각뿔 디자인을 넓혔다. 얼핏 보기엔 디자인이 약간 수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중량은 기존 170g에서 150g까지 줄었다.

프랑스 전역에 있는 대형마트 카르푸에선 아예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문구가 붙은 진열대가 새롭게 생겼다. 해당 진열대에는 펩시, 네슬레, 유니레버 등 가격은 유지한 채 g당 중량을 줄인 글로벌 식품업체의 제품들이 놓여있다. 매장 측에서 소비자들에게 용량이 줄어든 제품들을 노골적으로 공개한 셈이다.

크기와 용량은 그대로 두고 값싼 원료로 대체해 원가 부담을 낮추는 스킴플레이션(skimflation)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영국 슈퍼마켓에선 계란 노른자 9% 함량의 마요네즈 대신 노른자 함량을 6%와 1.5%으로 낮춰 제조한 마요네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식품기업 베르톨리도 올리브유 함량을 기존 21%에서 10%로 낮춘 스프레이 제품을 출시했다. 소비자가 원료 성분이나 함량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린 꼼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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