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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보조금 명령 폐기 내건 트럼프, "휘발유 많이 쓰기를 바란다"
미국선 이미 미국 브랜드 중심, "IRA 보조금 대상에 유럽·아시아 브랜드 없어"
부진 못 면하는 전기차 업계, 테슬라도 4년 만에 차량 인도량 감소세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주요 승부처인 미시간과 위스콘신주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지원 정책을 비판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특히 눈에 띄는 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공약으로 전기차 보조금 명령 폐기를 내걸었단 점이다. 이에 전기차 업계의 시선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에 몰리는 모양새다. 사실상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여부가 전기차 업계의 존망을 결정지을 것이란 게 업계 전반의 분위기다.
트럼프 "전기차 보조금 지원, 당선 첫날에 폐기할 것"
트럼프 전 대통령은 2일(현지 시각)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개최한 유세에서 "난 우리가 세계 그 어느 국가보다 휘발유가 많기 때문에 휘발유를 많이 쓰기를 바란다"면서 "임기 첫날 난 전기차 보조금 지원 명령 폐기에 서명할 것임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정부가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는 전기차에 엄청난 보조금을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우리는 이것을 즉시 끝낼 것이다. 임기 첫날 끝낼 것"이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에 대해선 "(민주당은) 자동차 노동자들을 대변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서 자동차를 전기차로 (대체)하려고 하는데 전기차는 다 중국에서 만들어질 것이고 이것은 매우 나쁘다"고 일갈했다. 이어 중국이 관세를 내지 않으려고 멕시코에 공장을 지은 뒤 자동차를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려고 한다면서 "미시간과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완전히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날 유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기차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는데, 이는 미시간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을 관통함으로써 견고한 지지세를 얻겠단 전략으로 풀이된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인 미시간과 위스콘신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2020년 대선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수복한 바 있다.
미시간과 자동차 산업이 연결고리로 묶인 건, 미시간이 애초 자동차 산업 덕에 성장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엔 미시간에 본사를 둔 미국 자동차 3사가 외국 업체와의 경쟁에 밀리면서 쇠락하기 시작해 주민들 사이 불안감이 늘었다. 내연기관 차량을 주로 만들어 온 미시간의 자동차 노동자들 사이에서 "부품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전기차의 대량 생산이 더 활발히 시작되면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거듭 나오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지점을 노려 자신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청사진을 미시간에서 본격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보조금도 '자국주의', IRA는 이미 미국 브랜드에 집중
이미 미국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미국산 자동차 브랜드에만 보조금이 지급되도록 조정을 마친 상태다. 앞서 지난 1월 미국 에너지부는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 차량이 지난해 43종에서 올해 19종으로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테슬라(모델 Y·3·X 등)와 리비안(R1S, R1T 등)이 각각 5종으로 가장 많고 포드 3종, 지프·쉐보레 2종, 크라이슬러와 링컨이 각 1종씩 포함됐지만, 유럽과 아시아 브랜드는 탈락했다. 지난해까지 폴크스바겐 ID4, 아우디 Q5, BMX X5, 닛산 리프 등이 보조금 지급 대상이었지만 올해는 포함되지 못한 것이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되고 배터리 부품·소재 요건을 충족하는 전기차를 사는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978만원)의 보조금을 주는 제도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가 발표한 IRA의 ‘외국 우려 기관(FEOC)’ 관련 세부 규정이 적용되면서 가시화했다. 외국 우려 기관이 만든 부품을 사용하면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데, 미 정부는 중국에 있는 대부분 배터리 부품 기업을 외국 우려 기관으로 지정했다.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경우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겠단 입장을 대대적으로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특히 중국 업체가 중국 밖에서 외국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한 경우에도 중국 정부 측 지분이 25% 이상이면 외국 우려 기관으로 판단한 점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IRA 보조금이 사실상 미국 자동차 브랜드에만 적용될 수 있도록 조정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자국 산업 보호를 내세워 만들어진 IRA의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기차 업계 쇠락 가시화, 업계 1위 테슬라도 '악화 일로'
문제는 정치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전기차 업계는 쇠락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올해 1분기 차량을 총 38만6,810대 인도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8.5% 감소한 수준으로,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시장 예상치인 45만7,000대에도 크게 밑도는 수치다. 테슬라의 차량 인도량이 감소한 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이 마비되기 시작한 지난 2020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이다. 생산량도 하락했다. 테슬라의 1분기 생산량을 43만3,371대였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7%, 전월 대비로는 12.5% 감소한 수치다. 지난 분기 생산됐지만 고객에게 인도되지 않은 차량도 4만6,561대에 달했다.
테슬라가 예상을 밑도는 인도 실적을 발표하면서 뉴욕증시에서 테슬라의 주가도 4.90%나 하락했다. 1분기 테슬라 주가는 총 29% 급락했는데, 이는 2022년 말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자 2010년 테슬라 상장 이후 세 번째로 가파른 분기별 하락세다. 이처럼 테슬라의 부진이 심화하면서 업계의 고심도 덩달아 깊어지고 있다. 업계 1위를 달리는 테슬라가 부진하다는 건 결국 여타 전기차 업계도 덩달아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시장 일각에선 현 상황이 이어질 경우 사실상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공급 기업이 전멸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나마 내수 시장이 탄탄한 중국 기업은 살아남을 여지도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 기조까지 겹치면 결과적으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전반이 절멸할 개연성이 높은 건 여전하다. 밝은 미래를 그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보는 업계의 표정이 미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