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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사만 하던 사업비 결산서 검사, 세무사도 가능해져
회계사법 개정안서 ‘세무 전문가’ 문구 빠지기도
세무업계, 변호사·세무플랫폼에 이어 회계사와도 직역 갈등
오랜 기간 '직역(職域) 수호' 기싸움을 벌여온 회계업계와 세무업계 간 업무 영역 갈등이 최근 다시 심화하고 있다. 특히 회계사들의 불만이 들끓는 분위기다. 공인회계사를 세무 전문가로 규정하는 공인회계사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데다, 대법원이 회계사 고유 업무로 여겨져 온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서 검사' 업무마저 세무사에게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대법원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검사, 세무사도 가능"
3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회계사에게만 허용되던 민간위탁 기관의 사업비 결산서 검사를 세무사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5일 대법원(주심 서경환 대법관)이 앞서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를 대상으로 제기한 조례안 재의결 무효 확인 소송의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청구를 기각하면서다.
개정된 조례안은 회계사만 할 수 있던 민간위탁 수탁기관의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새롭게 정의해 세무사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9년 5월 제출돼 2021년 12월 의결됐으나 금융위원회의 재의요구 지시에 따라 서울시장이 재의요구를 했다. 금융위와 회계업계는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서 검사 업무’가 공인회계사법에서 회계사의 직무로 정한 ‘감사 및 증명 업무’에 해당해 세무사에게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공인회계사법 제50조에 따르면 공인회계사만 회계에 관한 감사·증명 업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민간위탁 사업비 결산서 검사권을 부여하는 서울시 조례의 효력이 즉시 발효됐다. 세무사가 서울시를 비롯해 추후 전국 지자체에서 민간위탁 보조금 사업비 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한 세무업계 관계자는 “원래 각 지자체 담당 부서에서 했던 업무인데 회계사가 회계감사라고 주장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회계업계에서는 이 같은 판례가 이어질 경우 다른 업무도 점차 세무사에게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세무사는 회계 기록 검증 업무를 하는 자격사가 아니기에 회계사법에서 정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전문직 인력은 자꾸 늘다 보니 먹거리를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세무사 업계가) 회계업계를 넘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변호사와도 '밥그릇 싸움'
세무업계과 갈등을 빚은 곳은 회계업계만이 아니다. 변호사업계도 세무사법(변호사의 세무사 자동자격 취득폐지) 개정안을 두고 지난한 분쟁을 벌인 바 있다. 두 업계의 해묵은 다툼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세무사법이 개정됨에 따라 2018년 1월 이후 변호사 자격 취득자부터는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을 부여받지 못하게 됐는데, 이미 세무사 자격증을 보유한 변호사까지 세무대리 업무를 하는 데 지장이 생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서울국세청이 2008년부터 세무대리업을 보던 변호사의 자격 갱신을 반려한 것이다.
결국 해당 사건은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을 받게 됐고, 2021년 7월 15일 헌재는 세무사법에 대해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해당 판결에서 헌재는 △변호사에 대한 특혜 시비 제거 및 세무사시험 응시자의 형평성 도모 △세무분야의 전문성 제고 △세무‧회계 등과 관련한 법률사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해 변호사에게 세무사의 자격이 부여돼야 하는 것은 아닌 점 등을 고려해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격을 부여할 것인지는 국가가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7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갈등에 다시 불이 붙었다. 서울변회는 해당 세무사법이 직업선택의 자유와 국민의 선택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변회는 "세무사 업무는 본래 변호사 직무임에도 2018년 이후 자격을 취득한 신규변호사의 세무사 업무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것은 헌법상 직업 수행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국민들에게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를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어 국민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세무사법이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한국세무사회는 같은 달 성명을 통해 서울변회가 법률가의 지위를 이용해 직업선택의 자유 등 철 지난 주장을 되풀이하며 헌법소원을 남용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세무사회는 "이미 2021년 동일한 내용으로 변호사들이 무더기로 헌법소원을 제기(2018헌마279, 2018헌마344, 2020헌마961)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동 자격을 폐지한 것은 정당하다고 결정했다"며 "그럼에도 서울변회는 직업선택의 자유 박탈이니 국민의 선택권 침해니 주장하면서 변호사는 따로 시험을 보지 않아도 세무사 자격을 받고 기장 등 세무사 업무도 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무사회 vs 삼쩜삼 갈등도 격화일로
세무사회는 세무회계 플랫폼 삼쩜삼과도 갈등을 겪고 있다. 앞서 세무사회는 지난 2021년 3월 삼쩜삼을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의 대표를 무자격 세무대리 혐의, 무자격자 불법광고 혐의 등으로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이 2022년 8월 ‘혐의없음’ 결정을 내리자 세무사회는 이의신청을 접수,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넘어갔으나 서울중앙지검 역시 지난해 11월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세무사회는 지난해 12월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이 또한 올해 기각됐다. 세무사회는 즉각 재항고로 대응했으나, 업계는 대검에서도 같은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치고 있다.
항고장에는 납세자가 아닌 삼쩜삼이 스크래핑 프로그램을 이용해 직접 홈택스 신고를 진행하고 있는 점과 삼쩜삼 광고내용은 직접 환급대행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점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세무사회는 "삼쩜삼은 세무사 자격도 없으면서 세무대리를 대리하고 환금금의 20%까지 세무대리 수수료를 챙기면서도 환급 신청한 납세자가 전혀 신고내용에 대하여 모르는 상황에서도 '삼쩜삼이 아니라 납세자가 직접 신고한 것'이라고 하거나 '삼쩜삼이 받는 수수료는 프로그램이용료'라고 주장하며 불법세무대리를 해오고 있다"고 성토했다.
세무사회는 올해 5월 자비스앤빌런즈를 불성실 신고·탈세 조장 등을 이유로 국세청에 신고하기도 했다. 세무사회는 "삼쩜삼이 홈택스 수입자료 없이 원천징수 자료만으로 환급 세액을 계산하고 홍보해 수수료를 챙겼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달 20일에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27일엔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삼쩜삼을 신고했다. 주민등록번호를 무단 수집하고 환급 금액을 과장하는 수법으로 허위과장 광고했다는 혐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