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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인플레이션 악화 위험 내년 CPI 0.75% 추가 상승 전망 대상 국가들 보복관세도 영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폭탄이 되레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당선인의 멕시코·캐나다·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이 미국 식료품·에너지 가격을 자극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심해질 수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물가를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시장은 관세 부과로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관세 인상에 따른 인플레 위험 경고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일대 버짓 랩' 연구소 자료를 인용해, 만일 미국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각각 25%, 중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내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0.75% 더 상승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예컨대 미국 소비자들이 해당 3국 수입품 대신 자국산 혹은 관세가 더 낮은 다른 외국 제품으로 대체하면 내년 미국 소비자물가는 0.65% 더 상승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지난해 기준 달러 가치로 미국 가정당 1,000달러(약 140만원) 이상의 구매력 상실에 해당한다.
로이터통신도 같은 날 멕시코·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과 관련해 돼지고기와 소고기, 아보카도, 테킬라 등 식료품과 주류 가격이 상승하고 향후 상품 부족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거론된다고 전했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에 대한 핵심 농산물 공급국이다.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두 나라에서 수입된 농산물 규모는 860억 달러(약 120조원)에 이른다. 멕시코는 미국 채소류 수입의 3분의 2, 과일·견과류 수입의 절반 정도를 담당하며, 멕시코산 아보카도(약 90%)·오렌지주스(35%)·딸기(20%) 등에 대한 의존도 높은 상황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원유 업계에서도 휘발유 가격 상승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의 원유 수입 가운데 절반 이상은 캐나다에서 들어온다. 지난 7월에는 하루 430만 배럴로 사상 최고 수준을 찍은 바 있다. 미국에서 정제되는 원유의 약 40%가 수입되는데 이 가운데 60%는 캐나다, 11%는 멕시코에서 온다. 이에 미국의 석유화학업계 단체(AFPM)는 "수입 비용을 늘리고 석유 공급에 대한 접근성을 줄이는 무역정책 등은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미국의 우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美 자동차사도 직격탄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은 1992년 멕시코·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고, 이후 트럼프 1기 행정부인 2018년 NAFTA를 개정한 USMCA를 체결해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다. 이에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인건비 등 생산 비용이 미국보다 저렴한 멕시코와 캐나다 공장에서 완성차와 부품 등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해 왔다.
멕시코자동차협회(AMIA)에 따르면 1~7월 멕시코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소형차 대수는 제너럴모터스(GM)가 35만4,723대로 1위를 차지했고 2위 포드(19만5,595대), 4위 스텔란티스(17만4,476대) 등 미국 ‘자동차 빅3’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멕시코와 캐나다는 미국 자동차산업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관세가 인상될 경우 미국에서 조립되는 차량의 비용도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 폭탄' 예고에 유럽도 긴장 "모두가 패배할 것"
특히 관세 부과는 상대국의 보복 관세로 이어져 그 영향이 가중된다. 이미 멕시코는 트럼프 당선인에 맞서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미국) 관세가 부과되면 이에 대한 반응으로 다른 관세 조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중앙은행과 산업계 인사들도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폭탄과 관련해 우려를 표명했다. 루이스 데긴도스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는 "관세를 부과할 때는 상대의 보복으로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결국 세계 경제에 극도로 해로운 무역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성장은 약해지고, 물가상승률을 끌어올리고, 금융 안정성이 영향을 받는 등 모두가 패배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리 렌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도 "미국이 다른 나라에 10%든 20%든 관세를 부과하고, 이에 상대가 대응하면 모든 나라가 손해를 보게 된다"며 내년 유럽 경제활동이 가라앉고 경기 회복세도 미미할 것으로 내다봤다. 렌 총재는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이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라며 "상대국은 다른 수출 경로를 찾을 수 있지만 미국 기업은 어디에서나 같은 관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U 역내 경제 규모 1위인 독일에서도 우려가 감지됐다. DPA 통신에 따르면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는 베를린에서 산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대미 수출 비용이 늘어나면 모든 이가 피해를 보게 된다"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베크 부총리는 "EU가 2개, 3개 블록으로 분열되지 않고 유럽으로서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