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우크라 국방장관 “韓정부 지원 큰 도움”
러시아는 한→우 무기 지원 예의주시
전투 경험 쌓는 북한군, 한국에 위협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으로 인한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실효적인 대응 방안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살상 무기 지원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고수해 온 우리 정부는 ‘정보 공유’에 방점을 두고 우방국들과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무기 요청 및 이에 대한 답변 등 이번 국방장관회담에서 이뤄진 구체적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공조”
27일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파견한 특사단을 접견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 등 북·러 군사협력으로 인한 안보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 양국이 실효적인 대응 방안을 강구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루스템 우메로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우크라이나 특사단은 윤 대통령 예방 후 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을 차례로 만나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우메로프 특사는 “최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양국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어 감사히 생각한다”면서 “그간 한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각별한 사의를 표했다.
이어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과 북한 파병군 동향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우메로프 특사는 “우크라이나는 전례 없는 위기에 대응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국들과의 안보협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과의 제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힘줘 말했다.
대통령실은 “양국은 향후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러·북 간 무기 및 기술 이전에 대한 정보 공유를 지속하는 동시에 우방국들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특히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당선인 측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원팀(one team)으로 대응하고 있는 만큼 미국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공조해 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특사단이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했는지에 대한 기자들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7일 대국민 기자회견 당시 “북한군의 관여 정도에 따라서 단계별로 우리가 (우크라이나) 지원 방식을 좀 바꿔야 한다”며 “무기 지원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는 발끈하고 나섰다. 미국(에이태큼스)과 영국(스톰섀도), 프랑스(스칼프) 등이 우크라이나에 신형 미사일을 공급한 데 이어 한국까지 합세할 경우 수세에 몰릴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차관은 국영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공급하면 필요한 모든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살상 무기 공급은 서울과 모스크바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다”고 엄포를 놨다. 이어 “한국은 상황을 냉정히 평가하고 무모한 조치를 자제해야만 한다”고 거듭 말했다.
무기 지원 시 안보 공백 불가피
국내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졌다.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점은 우크라이나가 현재 교전 중이라는 사실이다. 국내에는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법규가 여럿 존재한다. 먼저 국제법은 전쟁에 참여해 전쟁을 수행하는 교전국과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 중립국을 구분하고 있다. 국제법상 중립국은 전쟁에 대한 참여를 삼가야 하며, 이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방위사업법도 무기 지원을 제한한다. 해당 법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는 국외로 무기를 수출하기 전 방위사업청장에게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방위사업법 시행령에서는 △국제 평화·안전 유지 및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거나 전쟁·테러 등의 긴급한 국제 정세 변화가 있을 경우 △방산물자 및 국방과학기술의 수출로 인해 외교적 마찰이 예상되는 경우 등에 무기 수출을 제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은 여기에 해당한다는 게 법조인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 무기 지원이 종국엔 파병으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우리 정부에 요구하는 무기의 성격과 관련된 문제로, 미사일뿐만 아니라 장비·부품·시설·소프트웨어 등이 필요한 복잡한 무기 체계의 특성상 운용에 필요한 병력 파견이 불가피한 탓이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가장 원하는 것은 첨단 방공 시스템”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안보 공백도 고려해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지원 요청을 검토한 우리 방공 무기 ‘신궁’, ‘천궁-2’ 등은 유사시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전력이다. 게다가 재고 또한 부족해 우크라이나에 이들 무기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한국군에 배치된 무기를 빼내는 방법뿐이다. 2022년 4월 올렉시 레즈니코우 당시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대공 유도무기 지원을 요청했으나, 서 전 장관은 우리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해 거절하기도 했다.
‘적반하장’ 러시아, 외교적 반격 필요성 대두
반대로 우리가 러시아를 압박하고 나설 수도 있다. 그에 대한 근거로는 먼저 국제연합(UN·유엔) 집단안전보장 제도를 꼽을 수 있다. 해당 제도에 따라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을 위해 회원국들에 비무력적인 조치 또는 무력적인 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요청받은 국가는 중립을 유지할 권리를 상실하고 침공에 참여해야 한다. 한국은 1991년 UN에 가입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있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이후 해당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러·북 군사협력도 문제가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향후 전 세계적인 군사 전략의 실험실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이번 전쟁에서 얻은 경험을 한국과의 충돌에 적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군사 전문가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더 많은 군사 기술을 확보하면, 자신의 군사 능력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에 따라 남한에 대한 제한적인 공격을 수행할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이러한 제한적인 공격은 대규모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 전쟁이 재개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기술 이전을 견제할 유일한 지렛대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치명적인 무기를 제공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선택에 달려 있겠지만, 결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러시아에 파견된 1만 명 이상의 북한 병사 중 대부분이 격전지인 쿠르스크주로 이동해 러시아군과 함께 전투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더해 북한은 특수부대 등 4개 여단 총 1만2,000명 규모 병력의 추가 파병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