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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보다 실리” 실용주의 택한 EU, 러시아산 LNG 수입 사상 최대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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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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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LNG 수입 감소 장기화
저렴한 가격에 현물 계약 늘어
EU 회원국 모두 에너지 순수입국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며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웠지만, 도리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은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실리 앞에서 결국 실용주의를 택한 것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에 가해진 경제적 압박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러시아는 EU 시장 내 입지가 약화할 것에 대비해 아시아 시장으로의 수출 다변화까지 모색하고 나섰다.

가격 경쟁력 앞세워 시장 장악

22일(현지 시각) 공급망 정보분석기관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중순까지 EU 각국이 수입한 러시아산 LNG는 1,650만 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1,518만 톤) 대비 8.7% 증가한 수준이자, 종전 최대치인 2022년 1,521만 톤보다도 훨씬 많은 수치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올해 러시아산 LNG 수입량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EU의 러시아산 LNG 수입 증가는 미국산 LNG 수입 감소와 맞물린 현상이다. 원자재시장 분석 업체 ICIS의 조사 결과 지난 6월 기준 EU와 영국, 스위스,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에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된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LNG 규모는 해당 지역 수입량의 15%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산 수입은 2022년 8월 이후 가장 낮은 14%에 그쳤다. 당시 시장에서는 미국 주요 LNG 수출 시설이 정전 등 영향으로 생산량이 감소한 데 따른 단기적 현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이후로도 유럽의 러시아산 LNG 수입량은 꾸준히 증가 추세다.

유럽 국가들은 올해 주로 현물 시장에서 러시아산 LNG 구매를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에너지 컨설팅기업 라이스타드에 의하면 EU의 러시아산 LNG 수입 물량 가운데 현물 계약 비중은 작년 23%에서 올해 33%로 대폭 확대됐다. 크리스토프 할서 라이스타드 애널리스트는 “러시아 야말 터미널에서 유럽으로 운송되는 LNG는 미국을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오는 가스보다 가격 면에서 매우 경쟁력 있다”고 설명했다.

파이프라인 덕 ‘톡톡’, 러시아 대체 쉽지 않아

이런 추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하게 비판하며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EU의 행보와는 다소 상반된 결과다. 앞서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이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모두 사용하지 않겠다는 2027년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내년 초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업계에서는 현재의 수입 증가세와 가격 경쟁력 등을 고려할 때 현실화가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일각에선 러시아의 국제 정치적 입지가 되레 더 강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EU를 구성하는 27개 회원국 모두가 에너지 순수입국인 만큼 합리적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EU가 석탄, 원유 등에 대한 에너지 표적화 제재를 내놓자, 루블화 결제를 요구하는 등 천연가스 공급을 축소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간 천연가스의 약 41%를 러시아에 의존해 왔던 EU는 가격 폭등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8월 기준 유럽 천연가스 가격 지표가 되는 네덜란드 TTF 선물가격은 320.9유로/MWh로 최고점을 찍었다. 이는 1년 전(22.48유로/MWh)과 비교해 무려 14배 뛴 수치다.

EU는 천연가스 수급 다각화를 위해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기체 상태인 천연가스는 액체인 원유와 달리 운송과 보관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액체 상태의 LNG를 파이프라인 없이 운반선 등을 통한 장거리 공급하는 게 가능해졌으나, 높은 비용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유럽 남동부, 중부 및 발트해 지역의 많은 국가가 LNG에 접근할 수 없거나 단일 가스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 사이 러시아는 EU 시장 내 입지가 약화할 것에 대비한 차선책까지 마련한 상태다.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시장으로의 수출 다변화를 적극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인도는 “에너지 프로젝트 투자는 이념이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며, 가격이 유일한 기준”이라며 러시아의 아시아 시장 확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한 가운데 러시아에 가해지는 경제적 압박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수출 감소 상쇄한 가격 인상 효과

서방의 강도 높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됐다는 점도 위와 같은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서방 기업들의 철수가 본격화한 2022년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는 2,274억 달러(약 281조6,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스 생산량에서는 전년 대비 11.8% 감소를 기록했지만, 국제 가스 가격 고공행진에 따른 수혜를 봤다는 게 러시아 중앙은행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외국은 물론 일부 국내 전문가도 우리 경제성장률이 최대 2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며 “그러나 지난해 전체적인 감소 폭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자평했다.

지난해엔 전체 유럽 수출이 849억 달러(약 112조8,490억원)로 전년 대비 68% 감소했지만 아시아로의 수출이 5.6% 증가한 3,066억 달러(약 407조5,330억원)를 기록하면서 감소분을 상쇄했다. 그중에서도 중국과의 무역 및 정치적 유대가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양국 간 교역은 사상 최고치인 2,400억 달러(약 319조원)를 달성했다. 러시아의 입지가 유럽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점차 커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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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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