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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임대 늘자 원주민 쫓겨나 대부분 사각지대 방치 영업 지속 에어비앤비, 국내 불법 숙소 퇴출 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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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포르투갈 리스본이 주거건물 관광·임대업 제한에 나선다. 주택 임대료 상승과 함께 지역 주민들의 주거 위기가 악화하는 원인을 단기 임대 서비스로 판단한 데 따른 조치다.
리스본 市의회, 주민투표 제안 승인
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리스본 시의회는 주거건물 관광·임대업을 제한하자는 주민투표 제안을 승인했다. 그간 리스본 시민들은 에어비앤비를 비롯한 주거건물 관광·임대업 제한을 호소해 왔다. 주택 데이터업체인 컨피덴셜 이모빌라리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리스본 집값은 200% 상승했으며 임대료도 2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리스본 관광이 활성화되며 집값 상승까지 부추겼다. 뿐만 아니라 수만 개의 아파트가 에어비앤비로 전환되면서 일반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상황도 부지기수다. 주택이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로 바뀌면서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들고 임대료도 크게 오르는 ‘투어리피케이션(tourification)’이 발생한 것이다.
리스본에서 호텔과 임대용 숙소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다른 나라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디지털 노마드(유목민)족 등 외국 청년들이 몰려들었고 집값·임대료도 함께 뛰었다. 로이터는 “이번 조치로 2만여 개의 숙소 운영이 중단될 것이며 시민들에게 주택 마련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포르투갈 헌법재판소가 투표 문항을 승인하면 내년 봄에는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으며 6개월 내에 관광용 아파트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수 있게 된다”고 보도했다.
관광 붐 일자 집값·임대료 급등
투어리피케이션은 포르투갈 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에어비앤비를 바라보는 시선이 양가적이다. 2008년 이후 심각한 금융·재정위기를 겪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역대급 관광 호조로 경제적 도움을 받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에 대해 ‘양날의 칼’, ‘과용하면 좋지 않은 약과 같다’는 비유까지 나올 정도다.
리스본보다 먼저 관광지로 명성을 얻은 대도시들에서는 갈등도 더 먼저 표면화했다. 앞서 유럽 10개 도시는 유럽연합(EU)에 공동서한을 보내 에어비앤비 등 숙박공유 서비스의 확장을 막기 위한 EU 차원의 대책을 요청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유럽의 도시들은 집이 거주용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관광객에게 집을 빌려주는 것이 돈벌이 수단이 되면 그만큼 주택이 전통적인 주택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유럽사법재판소가 에어비앤비를 디지털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부동산 중개업자로 해석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에서는 도심 공동화 현상의 책임이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프랑스 최대 학부모 단체인 FCPE의 장-자크 르나르 부대표가 AFP통신에 “파리 도심이 거대한 에어비앤비 호텔로 변했고 주민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AFP에 따르면 주거비를 감당 못하는 주민들이 외곽으로 밀리면서 파리 도심에 문을 닫는 학교도 늘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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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불법 공유숙박
우리나라 상황도 비슷하다. 수년 전부터 서울 홍대, 강남 등 도심권 소형 임대차 시장에서는 에어비앤비 수요로 인해 매물이 줄고 월세가 오르는 경향이 짙다. 이렇다 보니 오피스텔이나 소형 빌라를 월세로 임차해 에어비앤비 숙소로 운영하는 재테크가 부업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야놀자리포트에 따르면 서울 에어비앤비 숙소 1호실의 연간 평균 매출액은 2,300만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 홍대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학생들, 직장인들이 오피스텔을 월세로 얻어서 에어비앤비로 부수입을 얻는다. 한 달에 월세의 두 배 이상은 번다고 알려져 있다”며 “깨끗한 원룸, 투룸은 조금 비싸도 나오자마자 잘 나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들 에어비앤비 숙소가 오피스텔·빌라 등에서 영업신고 없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야놀자리서치에 따르면 국내 공유숙박으로 등록된 숙소는 3만7,000여 개인데,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숙소는 7만2,000개에 이른다. 절반가량(3만5,000개)이 불법인 셈이다. 서울로 좁히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서울에 등록된 외국인민박업 숙소가 2,295개지만 서울 에어비앤비 숙소는 1만7,300개다. 서울 에어비앤비 숙소의 90%가 불법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도시민박업의 경우 관련 법률에 따른 실거주 요건이 있어 숙소 호스트가 여러 채를 공유숙박으로 운영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지만 서울 양평동 빌라와 영등포구 오피스텔, 제주 주택 등 3채를 공유숙소로 쓴 의혹을 받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문다혜씨처럼 개인이 여러 숙소를 공유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업자들이 실거주하지 않는 주택 등을 숙박시설로 꾸며 영업하면서 규제를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유숙박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자 에어비앤비 측이 불법 숙소 퇴출을 선언한 이유다.
에어비앤비는 지난 9월부터 숙소 운영 호스트들에게 ‘영업신고 정보와 영업신고증’을 제출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신규 등록 숙소는 올해 연말부터 영업신고증 제출이 의무화되고, 기존 등록 숙소는 1년 유예 기간을 둬 2025년 말까지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공유숙박업을 운영하려면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한옥체험업, 농어촌 민박업 중 하나로 등록해야 한다.
서울과 부산 등 숙박 수요가 많은 도시에서는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이나 한옥체험업으로 등록을 해야 하는데 한옥체험업은 ‘한옥’만 되므로, 사실상 도시에서는 외국인민박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외국인민박업의 경우 집주인이 반드시 실거주해야 한다. 공유숙박 취지에 맞게 집주인이 사는 집을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인만 손님으로 받아야 하며, 아파트를 숙소로 제공하려면 입주민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오피스텔은 상업시설이므로 아예 불법이다. 미등록 숙소는 공중위생법 위반으로 최대 2,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