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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獨 전력 구조 개편 없이 수입에 의존" 비판 獨에 전력 공급하는 북유럽 국가, 전기료 올라 난색 높은 전기료에 獨 떠나는 기업 늘어나, 공동화 우려
유럽 주요국들이 원전 복귀를 선언한 가운데 탈(脫)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독일과 주변국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독일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며 양국 간 전력 거래 프로젝트를 보류하겠다고 밝혔고, 노르웨이는 독일·덴마크·영국으로 이어지는 전력망 구축 프로젝트에 대해 재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독일이 전력 시장 개편 등 자구책 없이 북유럽 국가의 저렴한 전기를 끌어다 쓰면서 전기요금이 급등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다.
스웨덴 "독일 탈원전 탓에 전기료 올라"
18일(현지 시각) 에바 부시 스웨덴 에너지부 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독일과 스웨덴 남부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한사 파워브리지(Hansa PowerBridge) 프로젝트를 보류하겠다"며 "독일이 전력 시장 개편을 통해 해외에서 값싼 전기를 과도하게 수입하는 것을 멈춰야만 프로젝트를 승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일이 자국 전력 시장을 입찰 구역으로 나눠 전기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높이고 가격을 낮춘다면 스웨덴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사 파워브리지는 독일과 스웨덴 간 700메가와트(㎿) 용량의 전기를 거래하기 위해 양국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다.
스웨덴은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주요 전기 수출국으로, 2022년 프랑스를 제치고 유럽 내 전력 수출 1위에 오른 바 있다.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은 풍부한 수력과 원자력 덕분에 온실가스 배출 없는 값싼 전력을 생산해 왔지만, 1980년대부터 장기적으로 추진해 온 탈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2022년 원전 재추진을 선언했다. 수력발전과 원자력발전이 전체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5%, 30% 수준으로 최근 스웨덴 정부는 향후 20년간 10기의 새로운 원자로를 건설해 원전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이날 부시 장관의 발언은 독일에 대한 전력 공급에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자국의 전력 가격 안정화 조치의 일환인 셈이다. 실제로 독일이 스웨덴 북부의 수력발전 전력 등 저렴한 전력을 대규모로 끌어가면서 스웨덴 내 전기요금의 지역 간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스웨덴은 대부분의 수력 발전소가 북부 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자국 내 송전망이 열악해 전기료가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인다. 일례로 지난주 볼보자동차 본사 등이 있는 남부 최대 도시 예테보리에서는 전기 소비자들이 북부 도시 룰레오의 190배에 달하는 전력 요금을 내야 했다.
이에 부시 장관은 독일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FT에 따르면 부시 장관은 "독일의 전력 가격이 높은 원인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이 원전 폐쇄를 결정하고 유럽연합(EU) 차원의 원자력발전 지원을 반대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그는 지난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내일 오후 5∼6시 스웨덴 남부 전기요금이 킬로와트시당 8크로나(약 1,040원)를 넘을 것"이라며 "이러한 전기요금 롤러코스터는 독일이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한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르웨이도 독일과의 전력 공급망 구축 보류
노르웨이 정부도 "노르웨이와 덴마크, 독일, 영국을 연결하는 인터커넥터(해저 전력망 등 국가 간 전력망)를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주변국이 노르웨이의 전기를 막대하게 끌어다 쓰면서 자국 내 전기료가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한 노르웨이는 전력의 98%를 재생 에너지원에서 생산하며 그중 93.6%를 수력발전에 의존한다. 하지만 최근 에너지 위기와 가뭄으로 인해 전기요금이 급등했고 특히 유럽 국가와 연결돼 전력을 수출하는 남부 지역에서는 연초 대비 5배 이상 급등했다.
부시 장관은 노르웨이의 입장과 관련해 "열린 사고를 가진 진보적 국가인 노르웨이가 유럽 간 상호 연결된 에너지 시스템에 속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은 유럽에 슬픈 순간"이라며 "이는 독일 등 전력 수입국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강력한 신호"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이 원전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멈추고 에너지 시스템 안정화를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을 겨냥해서는 "어떤 정치적 의지도 물리 법칙의 기본 원칙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독일, 장기간 탈원전에 에너지가격 폭등
다만 독일 내부의 사정도 만만치 않다. 2021년 출범한 독일 신호등 연립정부는 2030년 화석연료 전면 퇴출을 목표로 에너지업체와 광산 지역에 거액의 보조금을 줘가며 발전소 폐쇄를 추진해 왔다. 하베크 장관은 반(反)원전 성향의 녹색당 소속으로 지난 4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면서 예비 전력원으로 가동해 왔던 석탄 화력발전소를 영구히 전력망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전기와 가스 가격이 확실히 떨어졌다"며 "재생 에너지 확대는 이제 전기 대부분이 깨끗하고 기후 친화적인 에너지원에서 나온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하베크 장관의 평가와 달리 산업 현장에서는 장기간 이어진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높게 형성되면서 독일 경제 전반에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산자 물가지수 기준으로 올해 6월 독일의 에너지 가격은 2019년을 100으로 할 때 178에 달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독일을 떠나려는 기업도 늘고 있다. 독일 상공회의소 연합회(DHK)에 따르면 독일 기업의 40%가 생산 축소 또는 생산 거점의 해외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이 비율은 2022년 16%, 2023년 31%에서 뚜렷한 증가세를 보여 '유럽의 엔진'으로 불려 온 독일 산업의 공동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에너지 비용이 높게 고착화된 상황에서 탈원전, 탈탄소, 탈러시아까지 한 번에 세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독일 정부에 대한 국내외 비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지지율 5~15%의 중소 정당이 모인 연합정부의 특성상 각 정당의 지지자들에게만 어필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최근 하베크 장관은 독일 한델스블라트 신문이 주최한 베를린 산업 콘퍼런스에 참석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화력발전소를 2030년 폐쇄하는 계획을 재고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전을 대체할 만큼 안정적인 기저 전원을 확보하지 못해 석탄 발전을 당분간 계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프랑스·영국·벨기에 등 유럽 주요국 원전 복귀
반면 독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 유럽 국가는 원전으로의 복귀를 서두르고 있다. 올해 초 EU 의장국인 벨기에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 정상회의를 열어 '원전 유턴' 논의를 시작했다. 화석연료 감축, 에너지 안보 강화, 경제발전을 위해 원전이 필수라는 논의가 유럽에서 활발해지는 와중에 원전의 가치를 재조명한 첫 정상급 국제회의가 열린 것이다. 당시 EU는 원전이 '가장 경제적인 청정에너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과도할 정도로 안전 문제에 집착했던 유럽 기류를 돌아보면 놀라운 변화다. 대표적인 원전 강국인 프랑스는 지난 2022년 오는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 건설과 기존 원자로의 폐쇄 일정 중단을 담은 '원전 르네상스'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2017년 집권을 시작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기조로 원전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2021년 신규 원자로 건설을 재개하기도 했다.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하면서 동시에 전기를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원전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지정학적 위기가 프랑스의 에너지 안보 강화 정책의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영국은 원전을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두고 오는 2050년까지 원전 전력의 비중을 현재 16%에서 2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오는 2030년까지 원전을 최대 8기 건설할 예정이다. 벨기에는 원전 운영을 10년 더 연장하고 네덜란드는 2035년까지 신규 원자로 2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핀란드는 풍력, 수력 등 풍부한 청정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동시에 원전 확대를 추진한다. 지난해에는 40년 만에 원전 1기를 새롭게 가동했다. 체코는 대형 원전 추가 건설을 추진 중이며 폴란드도 2040년까지 100기 이상의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가동해 전력과 난방 수요를 충족시킬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