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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간 참여 ‘국방 기술 생태계’ 육성 노력 점화 반군국주의 정서 넘어 스타트업 장점 활용 목적 ‘국방 산업 저수익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일본이 민군 겸용 기술(dual-use technologies) 개발을 위한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통해 국방 분야 개혁에 나섰다. 민간 분야의 기술 혁신을 국방 연구에 통합하려는 시도다. 일본 방위성과 경제산업성이 주도하는 해당 프로젝트는 일본 내에 장기간 존속해 온 ‘반군국주의 규범’(anti-militarist norms)이라는 인식상의 장애를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안정을 위해 스타트업 고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는 취지하에 기획됐다. 하지만 안보 및 경제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방 산업의 낮은 수익성이 생태계 조성의 최대 현안으로 지적된다.
일본, 국방 기술 개발에 민간 스타트업 참여 유도
작년 9월 발표된 ‘민군 겸용 기술 생태계’(dual-use technology ecosystem) 개념은 일본 내 스타트업들을 국방 연구개발에 합류시켜 첨단 국방 장비 관련 기술 수요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이미 2023년 7월 일본 정부는 드론, 사이버 방어, 위성 통신, 전자파 기술 관련 혁신 등을 포함한 첨단 기술 분야 200여 개의 스타트업을 비공식적으로 지정해 해당 정책의 도입을 예고한 바 있다. 또한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국방 장비 도입 및 재정 지원 계획을 발표해 업계의 시장 진입 관련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국방 분야 개혁 노력의 선봉장은 작년 10월 방위성 획득기술물류청(Acquisition, Technology & Logistics Agency) 산하에 설립된 국방혁신과학기술연구소(Defense Innovation Science and Technology Institute)로, 민간 기술을 국방 체계 안에 효율적으로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민간-공공 분야 혁신을 국방 전략에 통합하려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특히 미국 국방첨단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와 국방혁신부대(Defense Innovation Unit, DIU) 등 성공적 선례에서 자극을 받아 입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민군 겸용 기술 혁신 움직임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 2013년 국가 안보 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및 2014년 국방 생산 및 기술 기반 전략(Strategy on Defense Production and Technological Base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 정책은 당시 공급망 글로벌화에 대한 우려, 안보 환경의 악화, 일본 국방 산업 기반의 쇠퇴, 우방국들과의 기술 협력 등을 감안해 공공-민간 협력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수립된 바 있다. 하지만 낮은 수익성과 일본 사회에 확고히 자리잡은 반군국주의 규범의 영향으로 정책 실행상의 어려움이 이어져 왔다.
반군국주의 문화와 낮은 수익성으로 ‘국방 분야 진출 꺼려’
실제로 민간 기업들이 국방 연구 분야 진출을 꺼리는 경향은 전후 일본에 뿌리내린 반군국주의 문화의 영향이 큰데, 이 때문에 다수의 기업과 대학들이 국방 관련 프로젝트 참여를 민간 부문에서의 평판을 훼손하는 일로 여겨 왔다. 2015년에는 일본 과학 위원회(Science Council of Japan) 주도로 학계가 방위성의 연구 자금 지원 계획이 학문적 자유를 제약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로 다수의 대학이 연구 참여를 거부하는가 하면 스타트업 사이에도 유사한 저항감이 지속되고 있다.
경제적 인센티브도 핵심적 장애 요인으로 남아 있는데, 일본 국방 산업은 낮은 수익성 때문에 민간 기업들이 시장 철수를 지속해 온 바 있다. 정부의 국방비 지출 증가로 단기적 혜택을 받는 기업들도 있었지만, 스타트업을 포함한 중소기업들은 성장 기반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국방 산업 자체의 수익성을 개선하려는 강력한 개혁 없이는 민군 겸용 기술 생태계가 최대 잠재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이유다.
안보 및 경제 환경 변화, 생태계 조성 기회 제공
이러한 도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변화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이후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 악화 및 이로 인한 재정 부담은 일본 국민들이 보다 실용적인 국방 정책을 수용하고 선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전통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기업가들이 주도하는 스타트업들도 생태계 진화의 주역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경제 안보(economic security)는 생태계 조성의 또 다른 동력이다. 2022년 제정된 ‘경제 안보 촉진법’(Economic Security Promotion Act)이 다양한 정치 영역에서 ‘경제 안보화’(economic securitisation)를 촉진했기 때문이다. 해당 법이 지원하는 ‘학제 간 협업을 통한 핵심 첨단 기술 연구개발’(Key and Advanced Technology R&D through Cross-Community Collaboration Program) 프로그램은 민간 및 군사 분야에 적용 가능한 다목적 기술(multi-use technologies)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 예산을 확대했다. 국방 관련 연구개발을 경제 안보라는 보다 광범위한 틀에 위치시켜, 규범으로 인한 저항을 줄이고 민간 분야의 참여를 촉진한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민군 겸용 기술 개발은 민간 부문에 기회와 딜레마를 동시에 제공한다. 기업들은 국방 부문 참여를 위해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규범을 고려한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국방 기술 생태계 조성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려면 낮은 수익성 문제와 학계-산업계 간 신뢰 조성, 국방 목표와 경제 성장의 조화 등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사이토우 코스케(Kousuke Saitou) 소피아 대학교(Sophia University) 교수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Japan’s push for a dual-use defence startup ecosystem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