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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경유하는 러시아 우렌고이 가스관, 공급 정지 러-우 양국에 나란히 피해 돌아갈 것으로 전망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 줄였다" EU 피해 제한적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송 통로가 차단됐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2019년 12월 체결한 가스관 사용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서다. 이번 수송 통로 차단에 따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에 피해가 돌아갈 것으로 전망되며,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이어 오던 유럽연합(EU) 역내 일부 국가 역시 에너지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렌고이 가스관 수송 중단
2일(현지시간) CNN방송,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날을 기점으로 자국 영토를 경유해 유럽으로 공급됐던 러시아산 가스 수송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반(半)국영 에너지 기업 가즈프롬과 2019년에 체결했던 5년 가스관 사용 계약이 지난달 31일 종료된 데 따른 조치다. 앞서 가즈프롬 역시 그리니치 표준시 기준 1일 오전 5시부터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수송 중단을 알린 가스관은 러시아 수자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우렌고이를 거쳐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및 기타 동유럽 국가로 가스를 운송하는 '우렌고이 가스관'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에도 가즈프롬과의 계약에 따라 3년 가까이 연간 150억㎥ 규모의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에 공급해 왔다.
외신은 이번 우렌고이 가스관 수송 중단으로 인해 양국에 나란히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러시아는 연간 약 65억 달러(약 9조5,400억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가 그동안 (우크라이나) 가스관에 대한 공격을 피해 왔지만, (우렌고이 가스관의 수송이 중단된 이상) 더 이상 이익이 없기 때문에 이젠 폭격을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U 일부 국가도 '영향권'
우렌고이 가스관을 통한 가스 수출 중단은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러시아는 우렌고이 가스관 외에도 △벨라루스에서 폴란드로 향하는 야말 가스관 △독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Ⅰ△흑해를 통과하는 투르크스트림 등의 가스 수송로를 보유 중이나, 현재 이들 가스관 대부분은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야말 가스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4월 끊어졌고, 노르트스트림Ⅰ역시 2022년 8월 공급이 중단된 뒤 같은 해 9월 폭파됐다. 우렌고이 가스관을 향한 수출이 중단되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보내는 가스관은 튀르키예를 거쳐 헝가리, 세르비아 등으로 향하는 투르크스트림 하나만 남게 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송로 축소로 인해 향후 EU 역내 가스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우드 매킨지의 마시모 디 오도아르도 연구원은 “유럽은 내년 겨울 전까지 필요 물량을 다시 채우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유럽 가스 가격은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인터콘티넨털익스체인지(ICE)에 따르면 가스 운송 중단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유럽의 가스 가격은 1,000㎥당 536달러까지 치솟아 2023년 11월 27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전쟁 발발 이후에도 러시아로부터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구매해 온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의 국가는 에너지 수급난에 빠질 수 있다. 실제 헝가리는 이전부터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의 가스관 협정 갱신을 요구해 왔다. 친(親)러시아 성향으로 우크라이나의 가스 수송 중단 결정에 반대해 온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지난달 우크라이나가 가스 경유를 중단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력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다.
영향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다만 일각에서는 일부 국가를 제외한 EU 역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U는 노르웨이산 에너지 수입 물량을 확대하고, 카타르와 미국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받는 등 러시아산 에너지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대응을 끝마친 상태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가 지난해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에 공급한 가스는 2018~2019년 최고치의 8%에 불과하다.
우렌고이 가스관 운영 중단에 영향을 받는 국가들의 가스 비축량 역시 충분한 상황이다. 원자재 시장 분석 업체 ICIS의 아우라 사바두스 연구원은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를 통해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의 가스 비축량은 현재 각각 67%, 76%, 69%여서 (우렌고이 가스관을 통한 수송이 중단돼도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라며 "수요도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날씨 예보도 계절 평균 범위 안"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EU가 관련 리스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유일한 유럽 수출 통로가 된 투르크스트림이 무너질 경우 상황이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독일 매체 슈피겔이 우크라이나 당국이 2022년 투르크스트림 가스관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 전문가는 "우크라이나의 투르크스트림 폭파 계획은 실제로 수행되지는 않았다"면서도 "차후 우크라이나가 투르크스트림을 통한 수송을 막는다면 러시아와 EU가 나란히 유의미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에너지 안보 위협을 받은 EU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한다면, 전쟁의 판도 자체가 변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