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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 加 총리 '불신임 위기'에 백기, 이민자·관세 문제로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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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오바마’로 불리며 44세 집권
난민 수용 문제로 지지율 크게 떨어져
“51번째 주지사” 트럼프 조롱 직격타
6일(현지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에서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당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사진=쥐스탱 트뤼도 총리 인스타그램

캐나다를 9년여간 이끌어온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그의 실권 위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전쟁’ 포문과 뒤이은 리더십 우려에서 촉발됐다. 가뜩이나 고물가와 이민자 문제로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압박 대응에 실패한 것이 사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차기 총리 적임자로 제1야당인 캐나다 보수당을 이끄는 피에르 폴리에브(Pierre Poilievre)가 거론되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캐나다마저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채택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트뤼도 총리 "후임자 정해지면 총리 사임"

6일(현지시간) 트뤼도 총리는 “2015년부터 저는 이 나라와 여러분을 위해 싸워왔다”며 “중산층을 강화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팬데믹을 함께 이겨내기 위해, 화해를 진전시키고 이 대륙에서 자유 무역을 지키며 우크라이나와 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지하고 기후 변화를 막으며 경제를 미래에 대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저는 이 나라를, 이 나라의 국민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며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가 몇 달째 마비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지난 연말 연휴 동안 제 미래에 대해 가족들과 깊이 논의하며 고민할 시간을 가졌다”며 “제 경력 전반에 걸쳐 제가 개인적으로 이룩한 모든 성공은 가족의 지지와 격려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젯밤, 저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오늘 발표할 결정을 알렸다”며 “당이 전국적인 경쟁 과정을 통해 차기 지도자를 선출하면, 당 대표직과 총리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하원은 당초 오는 27일 회기를 재개해 야당을 중심으로 내각 불신임안을 추진할 예정이었지만, 트뤼도가 사임 의사를 밝힘에 따라 오는 3월 24일 재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기간 집권 자유당은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할 전망이다.

진보 정치 아이콘, 캐나다 스타 트뤼도

200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트뤼도는 2013년 자유당 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자유당은 3위로 밀려났으나, 이후 2015년 연방 선거에서 승리하며 트뤼도도 총리에 올랐다. 그의 핵심 아젠다인 '햇볕 정책'(sunny ways)이 보수당 집권에 피로해진 유권자들을 결집시켰다.

총리 자리에 오른 트뤼도는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취임 직후 성평등 내각을 구성하면서 그 이유를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답하는가 하면, 취임 한 달 만에 아내와 패션잡지 '보그' 화보 촬영을 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였다. 특히 6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다문화 사회'라는 캐나다의 정체성을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행보는 과거 캐나다 총리를 지냈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Pierre Trudeau) 전 총리의 '다문화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며 적잖은 시너지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17년 집권한 것도 호재였다. 극우 성향 트럼프와의 극명한 대조가 인기를 끌어올린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슬람 국가에서 미국으로의 여행을 일시적으로 금지했을 때, 트뤼도는 "박해, 테러, 전쟁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캐나다 국민은 여러분의 신앙과 관계없이 여러분을 환영할 것"이라며 그들을 포용했다. 또한 트뤼도는 미국-캐나다-멕시코 협정(USMCA)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9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사진=쥐스탱 트뤼도 총리 X

고물가·이민 문제로 지지율 추락

트뤼도의 앞길이 삐걱대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당시 트뤼도가 대형 건설사 SNC-라발린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려는 압박을 넣었다는 '수사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장관들이 잇따라 사퇴했다. 아울러 인종차별적인 분장을 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에도 휩싸였다. 2001년 밴쿠버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트뤼도는 '아라비안나이트'를 주제로 한 행사에서 주인공 알라딘으로 분장하기 위해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얼굴, 목, 손 등을 검게 칠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트뤼도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며 잘못을 시인했지만 지지율 하락을 피하진 못했다.

이후 자유당은 2019년 선거에서도 다수당을 유지하긴 했으나, 하원에서 20석을 잃었다. 2021년 선거에서도 승리는 했지만 단독 과반 의석을 얻는 데 실패하며 제3야당인 신민주당(NDP)과 연합을 맺었다. 하지만 신민주당마저도 인플레이션 대처 실패 등을 이유로 자유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최근에는 트뤼도의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국민적인 인기도 예전과 같지 않다. 캐나다의 다문화 이미지를 굳히는 데 일조한 난민 정책은 주택난·인플레이션 등과 맞물리며 국민적 불만을 불렀다. 트뤼도는 “매년 50만 명의 신규 이민자를 수용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외쳤지만 보수층을 중심으로 “이민자가 재정만 축낸다”는 반발이 거셌다. 실제 트뤼도 집권 첫해인 2015년 캐나다의 이민자는 한 해 전보다 26만 명가량 늘었으나 2023년에는 약 5배인 129만 명으로 급증했는데, 이로 인해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고 주요 도시의 집값이 치솟았다. 뿐만 아니라 구직자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1월 5.7%였던 실업률은 같은 해 11월 6.8%로 올랐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성공 이후 트뤼도의 입지는 더욱 취약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25일 “캐나다와 멕시코 상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했고, 같은 해 12월 10일에는 트뤼도를 ‘미국의 51번째 주지사(Governor)’라며 조롱했다. 이에 한때 최측근이던 크리스티아 프릴랜드(Chrystia Freeland)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트뤼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라는 이유로 지난달 16일 전격 사퇴했다. 자유당 내에서 트뤼도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때부터다. 나아가 정책 연합을 맺어왔던 저그밋 싱(Jagmeet Singh) 신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0일 정부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하면서 트뤼도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됐다.

캐나다도 우향우하나, '캐나다 퍼스트' 유력

전문가들은 이번 트뤼도의 사임이 최근 세계 곳곳에서 우파 정치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평한다. 실제 취임 당시 70%에 육박했던 트뤼도의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17.4%로 고꾸라진 반면 같은 기간 피에르 폴리에브 보수당 대표의 지지율은 27.5%에서 40.0%로 치솟았다. 자유당의 지지율 역시 21%로, 보수당(47%)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에 트뤼도가 사임하더라도 자유당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폴리에브 대표는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인물이다. 폴리에브 대표가 캐나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건 그의 정치적 기조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는 트럼프 당선인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스트롱맨'을 표방하는 폴리에브 대표는 탄소세 감축, 원자재 생산 확대 등을 대표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는 또 트럼프 당선인이 국경 문제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처럼 트뤼도가 국경 통제에 실패했다고 비판해 왔다. 폴리에브 대표는 트뤼도가 사임을 발표한 당일에도 X(옛 트위터)를 통해 “트뤼도와 자유당은 캐나다를 붕괴시켰다"며 “캐나다인들은 자신들의 삶과 나라를 되찾고, 국경을 되찾고, 이민자 통제 능력을 되찾고, 지출, 재정적자 및 인플레이션 통제를 되찾고, 안전한 길거리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캐나다 우선주의(Canada First)를 내세우자"고 강조했다.

폴리에브 대표는 또 최근 캐나다 인플루언서 조단 피터슨과의 인터뷰에서 총리로 당선될 경우 석유 정제시설, 액화처연가스(LNG) 발전소, 원자력발전소, 수력발전소 등의 신규 건설을 더 빠르게 허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 석유가 미국에 헐값으로 판매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는 미국의 잘못이 아닌 멍청한 우리의 잘못"이라며 "총리로 당선될 경우 이런 멍청한 짓을 중단하겠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보수 우파, 특히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추세는 각국 선거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선 트럼프 당선인이 재집권했고 유럽연합(EU)의 경우 무려 4분의 3이 중도 우파 정당이 이끌고 있거나 적어도 우파 정당이 1개 이상 포함된 연립정부가 집권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2월 조기 총선을 앞둔 독일에서도 불법 이민 차단을 앞세운 중도우파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과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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