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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품에 유동화 적용, 실익 극대화
미래 보험금 현재 가치로 환산해 액수 산정
‘연금 기능 종신보험’에 소비자 피해 빈번
앞으로 종신보험 가입자가 그동안 납입한 보험료 중 일부를 연금 등 노후 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이 사망보험금의 60~80%를 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서면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연금 구조가 취약한 계층이 안정적인 노후 수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납입 완료 종신보험 대상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보험업계는 금융당국과 ‘생명보험금 유동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금융당국은 사업비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방안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출시된 일부 상품에만 이와 유사한 특약이 있는 만큼 모든 상품에 적용해 가입자의 실익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연금 전환 비율 등 구체적인 방향이 논의 중이며, 최종안은 내달 발표 예정이다.
금융당국과 업계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방안은 납입이 끝난 종신보험의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가입자가 사망보험금 중 일부를 연금으로 전환해 받고, 남은 돈은 사망 시 수익자에게 돌아가는 방법이다. 가령 사망 시 3억원을 받는 종신보험에 가입자가 보험금을 완납한 경우, 2억원은 연금으로 받고 나머지 1억원은 사망 후 배우자 또는 자녀가 받도록 하는 식이다.
연금 지급 액수 산정은 원금이 아닌 미래에 받을 미래에 받을 사망보험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적정 금액을 정할 방침이다. 납입이 끝난 현시점의 3억원과 기대 수명이 다하는 2~30년 뒤 3억원의 가치가 다른 만큼 화폐의 시간가치를 고려해 연금 액수를 정하려는 의도다. 또 사망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하고, 사망 시 원리금을 제한 액수를 수익자에게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보험사의 재정 부담 확대와 이에 소비자 피해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납입이 끝난 보험 계약이 연금 전환 대상인 만큼 이미 사업비 분배 등이 끝나 보험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란 설명이다. 한 보험 업계 관계자도 “회사 입장에서 생명보험금 유동화에 따른 재무적 영향은 거의 없다”며 “동일한 재원을 언제 주느냐, 일시 또는 분할로 주느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장 혼란 더한 고연령 거치연금
이와 같은 생명보험금 유동화는 2015년 출시된 ‘고연령 거치연금’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급속한 고령화 추세에 맞춰 국민의 노후 준비를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고연령 거치연금의 출시를 독려했다. 40대 이상 남성 기준 일반적으로 30만원을 웃도는 종신보험과 달리 10만원 안팎의 저렴한 보험료가 특징이다.
연금보험은 가입 후 바로 연금을 받는 즉시연금과 일정 기간 경과 후 받는 거치연금으로 구분된다. 고연령 거치연금은 이전까지의 거치연금과 상품 구조가 비슷하지만, 연금을 개시하는 시점이 80세 이후로 기존 거치연금(55~80세)과 다르다. 연금 개시 전 사망보험금과 해약환급금을 낮게 설정해 보험료를 덜 내고, 보장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예컨대 55세 남성이 고연령 거치연금 상품에 가입하며 일시납으로 보험료 2,000만원을 납부하면, 80세부터 사망할 때까지 매달 43만원가량의 연금을 받는다. 기존 즉시연금 상품으로 80세 남성이 매달 43만원을 받으려면 일시납으로 1억원을 넘게 거치해야 한다. 다만 이와 같은 특성 때문에 거치기간(55~79세) 또는 84세 이전 사망 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고연령 거치연금의 한계다.
연금보험 사업비 10% vs. 종신보험 사업비 30%
고연령 거치연금의 출시 이후 현장에서는 해당 상품을 비롯한 연금보험과 일반 종신보험이 뒤섞여 판매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종신보험으로 연금도 받을 수 있다”는 콘셉트가 시장의 혼란을 가중한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특히 연금으로 전환가능한 종신보험은 보험사가 사업비로 떼가는 비율이 일반 연금보험보다 최대 3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에 무게를 실었다.
보험 업계에서도 연금과 종신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일부 상품이 소비자들의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데 뜻이 일치했다. 상대적으로 젊었을 때는 사망 보장을 준비하고, 은퇴 후에는 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상품 이름부터 ‘연금’으로 오인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보험사는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의 일부를 영업비 명목의 ‘사업비’로 떼는데, 연금보험의 경우 사업비가 5~10% 수준인 데 반해 종신보험은 최대 30%의 사업비를 책정할 수 있다.
업계에서 이번 생명보험 유동화를 추진하면서 사업비 최소화에 방점을 찍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신보험을 연금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사업비를 적용할 경우, 해지 후 새로 가입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가입자의 실제 수령 금액은 터무니없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사업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돈이 필요한 가입자들은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해지해서 환급금을 한꺼번에 받는 걸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