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유럽연합 대러시아 제재, 효과성 문제 제기 작년에만 ‘러시아 LNG 11조원 수입’ ‘전쟁 틈타 재산 불리는’ 특권층 제재도 미흡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 차로 접어들면서 유럽연합(EU) 대(對) 러시아 제재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쟁과 관련 있는 개인과 조직, 산업을 목표로 한 제재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전례 없는 위협에 맞서며 진화해 왔지만, 단편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의도와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관계자들은 대(對) 러 제제의 접근 방식의 허점을 지적한다.
EU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 ‘건재’
EU는 작년 한 해만 2월, 6월, 12월에 걸쳐 세 번의 대(對) 러시아 제재를 실행했고 229명의 개인, 165개의 조직과 함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제재를 피해 운영하는 선박들)에 속한 79척의 유조선이 대상에 포함됐다. 핵심 조치에는 러시아 금융 기관들의 국제 송금 및 결제 시스템(SWIFT)으로부터의 분리, EU 비정부기구들의 러시아 지원금 수령 금지, 수출 계약에 ‘러시아 수출 금지’(not for Russia) 조항 포함 등이 있다. 리아 노보스티(RIA Novosti, 러시아 국영 통신사)를 포함한 러시아 매체 방송 금지도 유럽연합사법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European Union, CJEU)의 심의를 통과해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러시아 경제는 국영 체제의 강화 속에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러시아가 EU 선거에 개입한 정황 증거까지 나오며 보다 강력한 제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작년 유럽의 러시아 LNG 수입 “11조원”
EU의 제재는 심각한 허점들을 노출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이 대량으로 지속되고 있다. 지상 송유관을 통한 수입은 금지됐지만 해상을 통한 액화천연가스(이상 LNG) 수입은 작년 한 해만 1,650만 톤, 73억 유로(약 11조원)의 기록적인 규모로 유럽 전체 해상 가스 공급량의 20%에 이르고 있다. 러시아 LNG 수입을 전면 금지할 때가 왔다.
또한 러시아 무기 제조에 유럽산 부품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러시아 군수 업체들이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스위스산 기계를 탄두, 미사일, 항공기 부품 생산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EU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한편 러시아는 반제품을 포함한 금속을 유럽에 지속적으로 수출하고 있고 이를 통해 러시아 군산복합체가 이익을 얻고 있다. 우크라이나 금속을 대체재로 활용할 수 있지만 전쟁으로 인한 물류 문제와 EU 기업들의 로비로 인해 러시아의 수출은 멈추지 않고 있다.
러시아 특권층, 군수 산업 및 자산 매입에도 ‘제재 구멍’
러시아 군수 산업과 관련한 특권층 경제인들 다수가 제재 영향권 밖에 있다. 안드레이 멜니첸코(Andriy Melnychenko)의 유로켐(Eurochem)은 폭약 생산에 필요한 화학 물질을 공급하고 있으며, 우랄켐(Uralchem)과 SUMZ도 군수품 제조를 위한 원료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특권층이 대주주에 국한된 EU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소유 지분을 50% 이하로 줄이는 편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러시아 특권층은 EU 회사들의 러시아 퇴출에 따른 반사이익도 크게 누리고 있다. 블라디미르 포타닌(Vladimir Potanin)이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네랄(Société Générale)로부터 로스뱅크(Rosbank)를 인수하고, 빅토르 카리토닌(Viktor Kharitonin)이 독일 기업 헨켈(Henkel)의 러시아 사업 부문을 매입했으나 두 명 다 EU 제재 명단에 들어있지 않다.
이러한 허점을 메우고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EU는 가장 먼저 중앙집권화된 제재 기구 설립에 나서야 한다. 미국의 해외자산관리국(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 OFAC)과 유사한 조직이 설립된다면 회원국들의 감시와 집행을 일원화할 수 있다. 또한 제재 명단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특별히 앞서 언급한 LNG, 군사 장비 부품, 금속, 특권층 활동, 자산 매입 관련한 제재 회피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한편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을 포함한 우회 수단들을 국제법 체계를 총동원해 응징해야 한다. 지금까지 단편적인 규제로는 충분한 효과가 발휘되지 않는 것을 목격했으니 포괄적인 금수 조치로 편법을 사전 차단하고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 EU의 경제 규모는 러시아의 10배에 이르고 3년의 기간 동안 러시아의 공격을 견뎌 왔다. 이제 제재가 상징적인 조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럽 리더들의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 실질적인 타격이 있지 않으면 푸틴(Putin)의 제국주의 정책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블라디슬라프 블라시우크(Vladyslav Vlasiuk) 키이우 경제대학(Kyiv School of Economics)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How the European Union can improve its sanctions policy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