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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상무부 "미국, 반도체 시장서 불공정 보조금 지급·덤핑 의혹받아" 美, 수년 전부터 중국 대상으로 유사 제재 지속 급성장하는 中 성숙 공정 반도체 시장, 이번 조사도 '지원사격'?
중국 정부가 미국산 성숙 공정 반도체(범용 레거시 반도체) 제품에 대한 반덤핑·반보조금 조사에 나선다. 미국이 중국 현지에서 성숙 공정 반도체 제품을 저가로 판매하고, 자국 반도체 제조 업체에 불공정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이유에서다. 시장에서는 중국이 이번 조사를 통해 수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대중국 성숙 공정 반도체 제재에 '맞불'을 놨다는 평이 나온다.
中, 美 대상 반덤핑·반보조금 조사 착수
16일(현지시간)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상무부 홈페이지에 게시한 입장문을 통해 "(중국)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한동안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업계에 대량의 보조금을 지급해 미국 기업이 불공평(불공정) 경쟁 우위를 얻었으며, 중국에 성숙 공정 반도체를 저가로 판매해 중국 국내 산업의 합법적 권익을 훼손했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국내 업계의 우려는 정상적인 것으로 무역 구제 조사 신청을 할 권리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무부 대변인은 "조사 기관은 중국 법규에 따라, 또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준수하면서 국내 산업의 신청·요구를 심사할 것이고 법에 따라 조사를 개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사 대상은 명확히 특정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아날로그디바이스를 비롯한 성숙 공정 반도체 선두 주자인 미국 기업이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무부가 이번 조사에서 반독점법이나 반덤핑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된 기업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국의 대중국 성숙 공정 반도체 제재
블룸버그는 중국의 이번 조치와 관련해 “미국의 기술 제재에 대한 중국의 가장 강력한 보복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이는 '중국 정부가 글로벌 무역 협정을 위반해 자국 기업을 공개적으로 지원한다'는 미국의 오랜 불만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그동안 서방 국가들은 중국 기업들이 성숙 공정 반도체를 과잉 생산해 글로벌 시장에 저가 제품을 쏟아낼 수 있다고 우려해 왔으며, 미국은 수년 전부터 관련 제재에 앞장서 왔다.
미국은 최근까지도 제재 수위를 높이며 중국산 성숙 공정 반도체에 대한 견제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에 국가 재정 지원, 임금 억제, 지적 재산 도용과 같은 반(反)경쟁 및 비(非)시장 수단을 사용하는 증거가 있다”며 통상법 301조에 따라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소위 '슈퍼 301조’라고도 불리는 해당 조항은 미국이 상대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해 보복 관세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미국 통상 정책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조사 대상은 국방·자동차·의료기기·항공우주·통신·전력 등에 쓰이는 성숙 공정 반도체와 기판·웨이퍼다. 조사에 수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이번 조사에 대한 결정권은 출범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갖게 된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는 조사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가 드러날 시 중국산 반도체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내세운 ‘중국산 제품 관세 60%’ 공약이 힘을 얻게 되는 셈이다.
中 성숙 공정 반도체 시장 '급성장'
미국이 이처럼 강력한 제재를 단행하는 것은 최근 들어 중국의 성숙 공정 반도체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분기 기준 중국 반도체 업계의 성숙 공정 반도체 생산량은 전년 대비 40% 증가했으며, 3월 단일 월 기준 생산량은 362억 개에 달한다.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트렌스포스는 중국의 성숙 공정 반도체 생산 능력이 2023년 말 기준 전 세계의 31%에서 2027년 39%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중국 성숙 공정 반도체 시장 성장의 배경에는 '저가 대량 공급' 전략이 있다. 지난해 11월 대만 IT 매체 디지타임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중국 메모리 업체의 소비자용 DDR4 가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글로벌 3대 D램 업체 제품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 같은 중국 반도체 업체의 가격 경쟁력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약 1,500억 달러(약218조4,120억원)의 보조금을 반도체 산업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미국 대상 반덤핑·반보조금 조사 역시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사격'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중국의 이번 조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공감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중국이 차후 이번 조사를 '보복 관세'의 근거로 활용할 가능성은 있다"며 "반덤핑 조사를 계기로 관세 장벽을 높이고, 이로 인해 생긴 빈자리를 자국 기업이 차지하면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쾌재"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