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알리익스프레스·테무,쿠팡 턱밑 추격 中 과학 기술 수준, 한국 이미 추월 배터리·휴대폰 약진,반도체도 위협

한국 산업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로 대표되는 덩치 큰 교란종이 유통업계를 휘저으며 국내 이커머스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고, 조선·전기차 등 제조업에서도 중국의 기술 약진과 시장 장악이 현실화된 분위기다. 이에 오랜 기간 중국 산업을 한 수 아래로 치부해 왔던 우리나라는 비상이 걸렸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런 현상이 장기화할수록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팽하다.
알리·테무, 한국서 4조 넘게 벌어
11일 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이 알리·테무의 결제 추정 금액을 조사한 결과, 알리의 2024년 결제 추정 금액은 3조6,897억원, 테무의 결제 추정 금액은 6,002억원을 기록했다. 이들의 합산 추정 금액은 4조2,899억원에 이른다. 직전 해인 2023년과 비교하면 무려 85% 오른 수치다.
또 지난해 12월 기준 알리와 테무에서 결제한 한국인 1인당 평균 결제 금액은 각각 8만8,601원과 7만2,770원으로 파악됐다. 특히 결제자의 성별을 살펴보면 알리 결제자는 남성이 73.1%로 여성(26.9%)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반대로 테무에서는 여성 50.9%, 남성 49.1%로 비슷한 결제 분포를 보였다.
C커머스 공세에 칼바람 부는 韓 이커머스
알리·테무는 한국 시장에서 빠르게 저변을 넓혀왔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와 테무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각각 912만 명, 823만 명으로 쿠팡(3,303만 명)에 이어 2·3위 자리를 굳혔다. 특히 2021년 2월 168만 명에 불과했던 알리 이용자 수가 빠르게 증가해 1,000만 명 고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같은 C커머스의 공세는 한국 이머커스 기업들을 생존 위기로 내몰고 있다. C커머스의 한국 진출 초기만 해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이 적지 않았지만 소비 분야를 가리지 않는 C커머스의 물량 공세가 계속되자 대기업 또한 매출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실제로 11번가(781만 명)·G마켓(543만 명)·GS샵(346만 명) 등 국내 업체는 이들과의 격차를 쉽사리 좁히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최근 G마켓과 알리의 합작법인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G마켓도 사실상 알리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토종 이커머스 업체의 경쟁력은 계속 뒤처지고 있다. 쿠팡과 네이버쇼핑을 제외하고는 C커머스가 국내 토종 기업을 모두 집어 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적 부진의 늪에 빠진 국내 이커머스업계는 구조조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11번가는 지난해 3월 희망퇴직을 실시한 데 이어 9월에는 본사 사옥을 기존 서울스퀘어에서 광명 유플래닛 타워로 이전하며 비용 감축에 나섰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플랫폼 롯데온은 지난해에만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고, 신세계그룹의 SSG닷컴과 G마켓 역시 작년 하반기 들어 희망퇴직을 시행했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성장이 아닌 생존이다.

8대 핵심산업 중 7개 중국이 추월
현재 국내 산업계 전반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추월'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분석한 ‘한·중 8대 주력 산업의 세계 시장 수출 점유율 추이’에서도 석유화학을 제외한 7개 부문 모두 중국에 뒤처지며 한국 산업계가 중국이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실제 한국 과학 기술은 이미 중국에 추월 당한 지 오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술 수준 평가 결과(2022년 기준)’에 따르면 국가별 기술 수준은 1위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유럽연합(EU) 94.7%, 일본 86.4% 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81.5%로 이들 국가에 한참 밀릴 뿐 아니라 중국(82.6%)조차 뛰어넘지 못했다. 이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반도체, 디스플레이, 수소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 세부 평가에서도 중국은 86.5%를 기록해 한국(81.7%)을 뛰어넘었다. 한국은 이차전지 분야에서만 세계 최고 수준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그나마 자존심을 세운 이차전지 산업에서도 한국 위상은 위태로운 상황이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판매한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에서 중국 CATL이 1위에 올랐다. 이 기간 CATL의 점유율은 37.9%로 LG에너지솔루션(10.8%), SK온(4.4%), 삼성SDI(3.3%)를 가뿐히 제쳤다. 중국 기업이 강세를 보이는 중국 내수 시장까지 포함하면 국내 배터리 업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다.
세계를 호령해 온 한국 조선업도 불안하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유지하던 조선 산업 가치사슬 종합 경쟁력 1위는 2023년 중국에 내줬다. 한국의 2023년 종합 점수는 88.9로 중국(90.6)에 이은 2위에 그쳤다. 2020년 이후 한국이 줄곧 1위를 지켰지만 결국 추월당한 것이다. 고부가가치 분야인 친환경 선박 경쟁에서도 중국이 한국의 경쟁력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평가된다. 작년 9월 세계 5위 선사 하파크로이트가 발주한 5조원 규모의 컨테이너선 24척 수주전에서, 중국 민영 조선소인 양쯔장조선과 뉴타임즈조선이 한국 기업들을 제치고 계약을 따낸 것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 전장인 전기차 시장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업체 BYD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0.5%로 미국 테슬라(12.9%)를 제치고 독보적인 1위로 올라섰다. 스마트폰 시장도 안심할 만한 상황이 못된다. 중국 휴대폰 업체 화웨이는 지난해 1분기 세계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화웨이 점유율은 35%로 삼성전자(23%)보다 10% 이상 높다.
이에 국내 산업계에서는 한국을 먹여살린 반도체 산업 주도권마저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3,440억 위안(약 68조4,000억원) 규모의 세 번째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다. 1차 1,400억 위안(약 27조8,000억원), 2차 2,000억 위안(약 39조7,600억원)에 이어 반도체 산업 육성에만 무려 135조원 실탄을 쏟아붓는 것이다. 이는 이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는 금액(70조원)의 두 배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