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부당대출 101건·2,300억원 적발
상급관리자 부당대출 실행 압박도
경영실태평가 3등급 강등 가능성 대두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그 친인척이 연루된 700억원대 부당대출이 실행된 4년여 동안 우리은행 내부 직원들이 관련 사실을 알고도 적극 고발에 나서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부당대출 정황을 포착하는 즉시 회사에 제보해야 한다는 현행 감독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 미작동이 사고 규모 확대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이번 사안으로 우리금융의 숙원 사업인 생명보험사 인수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유명무실’ 준법감시조직
13일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손 전 회장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우리은행에서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노조위원장과 홍보브랜드그룹장·여신그룹부행장이 부당대출 정황을 포착, 이를 손 전 회장에게 보고했다. 특히 여신그룹부행장은 “회장님 처남이 대출 ‘브로커’로 활동하는데, 그와 연관된 부당대출이 암암리에 취급되고 있다”는 구체적 내용의 투서를 손 전 회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손 전 회장 친인척이 브로커로 활동한다는 사실은 2018년부터 내부 임직원 사이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상태였다. 당시 우리은행 지점 직원들은 부당대출 신청이 들어오자, 차주에게 추가 자료 요청하며 대출을 지연시켰다. 동시에 본점 심사 담당 부서에 연락해 대출 승인을 거절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본점 심사 직원은 문제의 대출을 다시 지점으로 돌려보냈고, 신청을 접수한 직원은 부당대출의 가능성을 상세히 정리해 상급자에게 대출 실행 불가를 재차 요청했다. 다만 검찰은 “대출 담당 직원들로선 평가 및 승진 인사권을 가진 상급자의 지시를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대출 실행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이를 종합하면 당시 우리은행 경영진을 비롯해 상당수 임직원이 부당대출 정황을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이다.
은행권 자율규제인 ‘금융사고 예방지침’에서는 “은행 임직원은 금융사고 예상 시 내부고발 채널을 통해 제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시중 은행 대부분이 이 같은 지침을 내규에 반영 중이며, 우리은행 역시 본부와 영업점마다 준법감시조직을 설치해 내부고발을 접수 중이다. 하지만 2021년부터 최근까지 우리은행 준법조직에 접수된 부당대출 제보는 0건이었다. 노조위원장과 홍보브랜드그룹장, 여신그룹부행장이 손 전 회장에게 직접 보고한 건은 내부고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내놓은 시스템 역시 신뢰성 면에서 의문이 따른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고 이후 내부통제 시스템 정상화를 위해 내부 고발용 채널 ‘헬프라인’을 개설했다. 외부 채널을 통해 신고를 접수하는 방식으로, IP 추적이 불가능해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금융사고 발생 위험을 고발해서 얻는 이익보다 불이익이 큰 만큼 그 실효성은 매우 낮다는 게 우리은행 내부 직원들의 일관된 견해다.
윤리의식 및 역량에 의구심
은행권에서는 내부고발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은 이번 사안을 두고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사고 규모를 키웠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이달 초 금융감독원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 최근 5년간 총 101건의 부당대출이 확인됐다. 금액으로는 2,334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가운데 손 전 회장 관련 친인척 불법 대출은 730억원으로 30%를 넘게 차지했다.
특히 손 전 회장 친인척 불법대출 관련 건의 경우 부실화 정도에서도 심각한 수준을 나타냈다. 730억원 중 46.3%에 해당하는 338억원에서 부실이 발생한 것이다. 금감원은 연체율 추가 악화 가능성도 염두에 뒀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는 정상 분류된 328억원에서도 적지 않은 연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 전현직 고위 임직원 27명이 단기 성과 달성을 목적으로 부당대출 1,604억원을 취급한 사실 또한 추가로 드러났다. 이 중 61.5%(987억원)가 임종룡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 체제에서 취급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대규모 금융사고가 끊이질 않아 금융사로서 기본적인 윤리의식과 역량마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으며 “이번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감독 방향을 정비하고 제재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영실태평가 도출 서두르는 당국
이번 검사 결과는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 인수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나왔다. 국내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 중 유일하게 보험 계열사를 보유하지 못한 우리금융은 그간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생명보험사 인수에 열을 올려 왔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이사회에서 동양생명과 ABL생명 지분 각각 75.34%, 100%를 총 1조5,494억원에 인수하기로 의결했다.
우리금융은 중국 다자보험과 동양·ABL생명 패키지 인수 계약을 체결하면서 12개월 안에 인수를 완료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원칙상으로는 9개월 안에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부득이한 경우 최대 3개월을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계약금으로는 인수 가격의 약 10%에 해당하는 1,550억원을 지불했다. 만약 12개월 내 인수를 완료하지 못하면, 해당 계약금은 다자보험 측에 귀속된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15일 금융위원회에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문제는 우리은행의 대규모 부실과 내부통제 실패 사실이 드러나면서 우리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경영실태평가 결과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지주회사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지주의 자회사 편입을 위해서는 금감원 경영실태평가에서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우리금융은 지난 2022년 진행된 종합검사에서 2등급을 받았지만, 이번 검사에서 대규모 부실은 물론 내부 통제 실패까지 속속 드러나면서 평가 등급 하향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수전의 성패에 따라 임 회장의 거취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임 회장은 2023년 3월 취임과 동시에 우리금융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선언한 데 이어 동양·ABL생명 인수전의 선봉에 서 왔다. 그러나 금감원이 우리은행의 잇따른 금융사고가 현 경영진의 책임 또한 막중하다고 지적한 만큼 이번 인수전이 물거품이 될 경우 임 회장으로서는 책임을 벗어날 방도가 없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 결과를 토대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경영실태평가를 도출할 방침이다. 이 원장은 “되도록 이달 내 금융위에 정기검사 결과를 송부하고, 3월 정도에는 금융위가 (인수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영평가 등급 도출 일정은 매우 이례적인 단축으로, 통상 금융기관 검사 이후 최종 등급 도출까지 1년 6개월가량이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