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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전 대표 사임 지분 54% 확보한 4인 연합 승기 최우선 과제 ‘어닝 쇼크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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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동안 치열하게 이어져 온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 고(故) 임성기 창업자의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 측이 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장악한 데 이어 차남 임종훈 대표이사 또한 한미사이언스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미약품그룹은 서둘러 경영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창업주 차남 임종훈 ‘대표→사외이사’
15일 공시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는 13일 송 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지난해 4월부터 한미사이언스를 이끌어 온 임종훈 대표는 사임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이사 총 7명 중 임 전 대표를 포함해 6명이 참석했으며, 만장일치로 송 신임 대표의 선임을 가결했다. 임 전 대표의 사외이사직은 유지된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임성기 회장의 작고 후 유족의 상속세 부담이 컸던 지난해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OCI그룹과의 통합을 추진하고 나섰다. 양사의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냄으로써 막대한 자금 투자가 필요한 신약개발 등 강력한 연구개발(R&D) 추진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전 사내이사와 차남 임 전 대표가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개인 최대주주였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은 이 과정에서 모녀로부터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매입하며 지분을 키웠다. 여기에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까지 합류해 4인 연합을 결성, 분쟁이 본격화했다. 당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각각 송 회장, 임 부회장, 신 회장, 라데팡스 측 인사 5명과 형제 측 인사 5명, 총 1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임 전 이사가 보유 지분 일부인 5%를 신 회장 등 4인 연합에 매도하면서 분쟁 종식의 기미를 보였다. 임 전 이사의 지분 매도로 4인 연합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약 54.42%를 확보하면서 지분율 21.86%를 보유한 형제 측을 압도했다. 사실상 승기를 잡은 셈이다. 여기에 형제 측 인사인 사봉관 사외이사, 권규찬 기타비상무이사가 이달 사임한 데 이어 임 전 이사까지 사임하면서 갈등은 마무리 수순을 밟았고 결국 13일 이사회에서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임하며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갈등은 막을 내렸다.
송 신임 대표는 그룹 조직을 재정비해 경영을 정상화하는 일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종식과 한미약품그룹 경영 정상화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첫 발걸음”이라며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후속 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전 대표 역시 “앞으로도 창업주 가족의 일원으로 회사를 위해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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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전으로 밀렸던 연구개발, 성과 필요한 때
송 신임 대표의 최우선 경영 과제로는 실적 개선이 꼽힌다. 지난해 연구개발 성과가 부재한 탓에 연간 실적이 목표치를 크게 밑돌았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한미약품이 2024년 연결기준 매출 1조4,950억원, 영업이익 2,150억원을 낸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2023년보다 매출은 0.3% 증가한 수준이지만, 영업이익은 2.5% 감소한 수치다.
상품 매출이 포함된 별도한미 대비 수익성이 높은 북경한미의 매출이 줄었고, 영업이익에 반영되는 연구개발 성과도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는 게 증권가의 중론이다. 장민환 iM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이 마지막으로 수령한 유의미한 규모의 연구개발 수익은 2023년 4분기 수령했던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 'MK-6024'의 임상2b상 진입에 따른 마일스톤(197억원)”이라고 진단하며 “새로운 연구개발 성과를 통한 수익성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장 연구원은 “상반기 마무리되는 비만치료제 ‘HM-15275’의 임상 1상이 6월 미국 당뇨병학회(ADA)에서 결과 발표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짚으며 “파트너사인 머크에서 진행하고 있는 MK-6024 임상2b상(연내 종료) 및 선천성 고인슐린혈증 치료제 ‘HM15136’ 임상 2상(상반기 종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러면서도 한미약품 주가 전망치를 기존 40만원에서 35만원으로 낮춰잡았다.
그룹 전반 리더십 ‘흔들’
한미그룹은 지난해 4분기 실적 또한 시장 기대치(컨센서스)를 265억원가량 하회하는 성적표로 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공시에 의하면 지난해 4분기 한미약품의 영업이익은 305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6.6% 감소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한미약품이 작년 4분기 영업이익 57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3,516억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16.7% 줄었고 당기순손실은 17억원을 기록했다. 아울러 한미약품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2,162억원으로 전년보다 2.0% 감소했고, 순이익 역시 1,435억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219억원 감소를 나타냈다. 연간 영업이익률은 14.5%를 기록했으며, 연구·개발(R&D)에 매출의 14.0%에 해당하는 2,098억원을 투입했다.
이 같은 결과는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가 지난해 8월 한미사이언스로부터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처음 나온 성적표다. 당시 박 대표는 독자 경영 선포와 함께 한미약품 내 인사팀과 법무팀을 별도 신설했고, 송 신임 대표와 임 부회장 측 상속세 해결 자문을 맡았다가 업무에서 배제된 다수의 인력을 회사에 복귀시켰다.
하지만 독자 경영 선포 직후 첫 실적 또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분기 경영 실적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당시 한미약품의 매출은 3,621억원, 영업이익 51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7%, 11.4% 감소한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시장 컨센서스인 매출 3,860억원과 영업이익 575억원을 모두 밑도는 결과다. 당기순이익 또한 전년 동기 대비 42.3% 떨어진 350억원에 그쳤다. 그룹 전반적으로 리더십 재정비가 시급하다는 시장의 지적이 쏟아진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