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4일부터 원조물자 수송 중단 트럼프 명령 즉각 실행, 종전 압박 확대 미국 일방주의에 유럽, '안보 연합' 추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전면 중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종전 협상을 두고 언쟁을 벌인 뒤 초강경 대응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외교 행보에 안보 위기감이 커진 유럽은 8,000억 유로(약 1,230조원)에 이르는 방위비 확보 계획을 내놓으며 대응하고 있다.
미국, 우크라 군사 원조 중단
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관련 소식통을 인용해 우크라이나 시각으로 이날 오전 3시 30분을 기해 모든 원조 물자의 수송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번 결정으로 영향을 받는 규모와 지원 중단이 얼마나 지속될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로이터는 백악관 및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을 비롯해 주미대사관 등 관계자들이 관련 논평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은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a good-faith commitment to peace)’을 입증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할 때까지 미국이 제공 중인 모든 군사원조를 멈추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약속'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근 벌어진 상황을 감안할 때 트럼프의 종전 구상을 군말 없이 따르라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지난달 28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과 광물 협정에 서명할 예정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안전보장 문제로 대립하다 정상회담이 종료됐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공개 석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퇴진까지 압박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중단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은 ‘종전이 멀었다’는 젤렌스키의 말에 분노했다”며 “(젤렌스키는) 미국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그래서 ‘시위’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배경을 짚었다.

우크라이나 군사 장비 20% 지원
전문가들은 미국의 군사 지원 중단 조치로 우크라이나가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무기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독일 소재 싱크탱크인 킬 인스티튜트(Kiel Institute)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3년간 1,197억 달러(약 174조원)를 원조했다.
또 미 국방부 집계에 의하면 2021년 10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한 '대서양 결의 작전'(Operation Atlantic Resolve)에 '책정'된 금액은 1,828억 달러(약 265조8,000억원)였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뿐만 아니라 유럽 주둔 미군의 훈련 비용, 미국 무기 재고 보충 등에 드는 돈도 포함됐다.
이 같은 미국의 원조는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사용하는 각종 군사 장비의 20% 규모다. 특히 러시아 영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에이태큼스 미사일 등을 지원받지 못하면 전투 수행 능력까지 크게 저하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유럽이 미국 지원의 일정 부분을 채울 수 있다는 평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첨단 무기 제공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해석이 우세하다.
유럽, 우크라 안보 위한 ‘의지의 연합’ 발전 합의
이런 가운데 유럽은 미국의 ‘안보 우산’이 약화할 것을 우려해 안보 연합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백악관 회담이 파국으로 치달은 뒤 영국에서 만난 유럽의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지원과 평화를 위한 유럽의 더 많은 역할을 약속했다. 지난 2일 런던 랭커스터 하우스에서유럽 정상 19명의 비공식 회의를 주재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유럽은 무거운 짐을 져야 한다”며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의 협정을 수호하고 이후 평화를 보장할 ‘의지의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발전시키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5,000기 이상의 방공 미사일 구매를 위해 16억 파운드(약 3조원) 가량의 수출금융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우크라이나에 대한 계속된 군사 지원을 약속했다.
스타머 총리가 발표한 의지의 연합은 우크라이나에 유럽 군대를 파병하는 방안도 모색한다. 스타머 총리는 “영국은 다른 국가들과 함께 지상군과 공군기로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유럽의) 노력엔 미국의 강력한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벌인 설전으로 광물협정 체결이 깨진 뒤, 유럽의 정상들이 단결된 의지를 보이면서도 미국을 향한 협력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유럽은 방위비 증액도 촉진한다는 방침이다. 4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7개 회원국 정상에게 8,000억 유로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제안했다. 회원국의 EU 재정 준칙 적용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4년간 6,500억 유로를 확보하고, EU 차관을 통해 1,500억 유로를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유럽의 정치·경제 질서 전체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면서 "유럽 질서가 흔들리면 전체 국제 시스템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