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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유통업체들 대표 “트럼프 관세가 가격 끌어올려” 베스트바이, 대다수 가전 中·멕시코에 공급망 의존 타깃 CEO "금주부터 멕시코산 과일·채소 가격 인상할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에 25%, 중국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3국의 보복 관세에 대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기업 경영진들이 전면에 나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소비자 가격에 민감한 소매·유통 기업들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미 리테일 기업들 "일정 수준의 관세비용 가격에 전가"
6일(이하 현지시각)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미국의 전자제품 전문 대형 유통업체 베스트바이(BestBuy)의 코리 배리 최고경영자(CEO)는 4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우리는 이렇게 광범위한 관세를 본 적 없다. 물론 이는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 수준의 관세는 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이라며 “수입 제품 가격 인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4일부터 캐나다·멕시코 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상품에는 지난 달 10%에 이어 10%의 추가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내달 2일부터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 품목에 25% 이상의 관세를 매기겠다고도 예고했다.
배리 CEO에 따르면 베스트바이가 중국과 멕시코에서 직접 수입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지만, 인접국인 캐나다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대미 수출 장벽이 높아지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원자재, 부품 가격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최종 소비자 가격 역시 인상을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미국 최대 자동차 애프터마켓 업체 오토존(AutoZone)의 제멜 잭슨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같은 날 컨퍼런스콜에서 관세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가격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관세 부과 이후에도 수익성을 유지할 계획”이라며 “역사적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전체 산업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내 소비자 체감할 것"
유통업체들의 가격 인상은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전망이다. 제이슨 밀러 미시간주립대 공급망 관리학 교수는 방송에 “가장 빨리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신선 식품”이라며 “농산물은 장기간 진열대에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 며칠 내 가격 인상이 나타날 것”이라 말했다. 밀러 교수는 멕시코산 맥주와 데킬라 등 주류 제품부터 캐나다산 메이플시럽에 이르기까지 물가 상승의 범위는 넓을 것이라 전망했다.
미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멕시코에서 385억 달러(약 55조7,000억원)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최대 수입국이다. 이 중 신선 채소와 과일은 30억 달러(약 4조3,000억원)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소비된 아보카도의 약 90%가 멕시코산이었다. 멕시코산 수입이 많은 또 다른 제품으로는 토마토, 오이, 피망, 할라피뇨, 라임, 망고 등이 있다.
신선 농산물의 가격 상승은 가공식품뿐 아니라 외식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에서는 빠르면 이번 주부터 식재료 가격이 상승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 종합 유통업체 타깃(Target)의 브라이언 코넬 대표는 “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 효과가 며칠 뒤인 이번 주부터 식료품 가게 매대에 나타날 것”이라 말했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입업자가 비용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때문에 미국 내 최종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을 인상시킬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 1월 물가 상승률 이미 3%
더욱이 미국의 식료품 물가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3%, 지난달 대비 0.5% 상승했다. CPI 상승률이 3%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이다. 전월 대비 상승률도 2023년 8월(0.6%) 이후 17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품목별로는 조류 인플루엔자로 인해 달걀 가격이 전달 대비 15.2% 급등했다. 달걀값 상승폭은 2015년 6월 이후 최대치다. 달걀 가격이 전체 식품가 상승을 이끌면서 식품 가격도 전달 대비 0.4% 올랐고, 에너지 가격 역시 전월 대비 1.1% 상승했다. 캐나다는 미국에 달걀을 공급하는 최대 수출국인데, 관세가 높아지면 캐나다산 달걀도 구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변동성이 큰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1월 근원 CPI도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해 지난달 상승폭(3.2%)보다 컸다. 전달 대비 상승률은 0.4%로 역시 지난달 상승률(0.2%)을 웃돌았다. 미국 CPI 상승률은 2022년 6월 9.1%를 기록한 뒤 2024년 9월 2.4%까지 떨어지며 안정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최근 몇 달간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높은 물가는 가계에 부담을 주면서 소비자 심리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관세를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어젠다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