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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업·엔씨·위메이드 신작 中 출시
현지 게임사 급부상에 경쟁 심화
‘소비처에서 경쟁자로’ 시장 변모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일제히 신작을 앞세워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지난해 넥슨의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이 중국 시장에서 공전의 인기를 끈 데다, 최근 한한령(한류 콘텐츠 금지령) 완화 분위기까지 감지되면서 많은 게임사가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중국 진출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韓 메이저 게임사들, 신작 中 출시에 박차
17일 게임 업계에 따르면 상반기 중국 출시를 앞둔 시프트업의 서브컬처 게임 ‘승리의 여신: 니케’는 전날 기준 현지 사전 예약자 수 430만 명을 돌파했다. 시프트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해당 게임은 지난해 1,531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바 있으며, 한국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 여러 국가에서 화제를 모았다. 시프트업은 현지 배급사 텐센트와 협력해 오는 4월 중국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도 다음 달 3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블레이드&소울2’를 중국 시장에 선보인다. 지난해 텐센트와 협업해 여러 차례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한 엔씨소프트는 조작 편리성을 개선하고, 유료 결제 측면에서 이용자 부담을 낮추는 등 현지 시장을 겨냥한 최적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들 게임사가 중국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배경으로는 중국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의하면 올해 중국 게임 시장 규모는 1,378억 달러(약 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게임 출시를 위해서는 반드시 당국의 허가(판호)를 획득해야 하고 현지 배급사를 거쳐야 한다는 장벽이 있지만, 시장 규모가 방대한 만큼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중국의 한한령 완화 기류 역시 국내 게임사들의 중국 진출에 힘을 싣는 요소다. 2016년 이전까지 한국 게임은 중국에서 해마다 10개 이상의 판호를 발급받았으나, 한한령 발동 이후로는 판호를 받는 곳이 거의 전무했다. 그러다 지난해 국내 게임 10개에 판호를 발급하면서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이창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미·중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풀이된다”라며 “중국이 침체한 내수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한국 콘텐츠의 중국 내 유통을 본격 허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판호를 획득한 엔씨소프트의 ‘리니지2M’, 위메이드의 ‘미르M’ 등도 연내 중국 출시를 앞두고 있다.
다만 국내 게임사들의 중국 진출이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호요버스 등 중국 게임사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부상하면서 시장 경쟁 또한 치열해진 탓이다. 일례로 펄어비스가 중국에 론칭한 ‘검은사막 모바일’은 현지화 전략에 실패하며 올해 1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중국 서브컬처 시장은 이미 포화한 레드 오션”이라면서 “이용자들의 눈높이도 올라가고 있어 높은 게임 완성도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불패 신화’ 막 내려
대기업이 주도하던 시장 경쟁이 개성 강한 중소 브랜드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도 중국 시장의 눈에 띄는 변화다. 이는 K-뷰티 열풍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화장품 시장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때 ‘설화수’와 ‘라네즈’로 중국 시장을 장악했던 아모레퍼시픽의 입지가 약해지고, 중소 제조자설계생산(ODM) 기업이 빠르게 시장에 침투한 것이다.
대표 ODM 기업인 코스맥스는 최근 중국 상하이에 신사옥 건립을 시작하며 한발 빠르게 생산 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코스메카코리아는 신임 최고경영자(CEO)에 ‘중국 영업통’으로 불리는 김형열 코스메카차이나 전임 CEO를 임명했다. 김 신임 CEO는 중국 현지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중국 소비자 트렌드에 맞춘 신제품 기획 및 브랜드 협업을 확대하며 공격적인 영업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J올리브영 등 헬스앤뷰티(H&B) 매장 영향력 확대도 ODM 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올리브영에서 판매되는 화장품 대부분이 중소 ODM 기업 제품인 만큼 올리브영이 성장할수록 ODM 기업도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박은정 하나증권 연구원은 “중국 화장품 시장의 트렌드 변화 속에서 중저가 및 기능성 화장품 수요가 매우 견조하다”며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긍정적 효과는 대기업보다 신생 인디브랜드에 집중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콘텐츠 경쟁력 비약적 발전
중국의 한한령 해제가 자국 콘텐츠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만큼 단기간 내 환경이 급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 대표는 “한한령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중국 내 콘텐츠 환경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중국 역시 자국 콘텐츠 산업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왔기 때문에, 한국 콘텐츠가 예전처럼 빠르게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과거 방식대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국의 콘텐츠 경쟁력이 단기간 내 급등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당국의 전폭적 지원이 꼽힌다. 중국 정부는 매년 영화전용자금(电影专项资金), 영상상조기금(影视互济基金), 수입영화배급 수입공제, 중요소재영화 프로젝트 보조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있으며, 그 금액도 이미 억 위안 단위를 넘어섰다.
한 매니지먼트사 임원은 “최근 중국 드라마, 영화를 챙겨보기 시작했다”며 “과거엔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던 요소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질적으로 성장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처럼 대박 작품이 나온다면, 중국에 한국 콘텐츠가 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달라진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오랜 시간 소비처로만 기능하던 중국이 한국의 최대 경쟁자로 돌변했다는 진단이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