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전 세계 저성장 지속되며 정부 신뢰 하락 경제 성장 경험한 국민이 ‘정부 더 많이 신뢰’ 성장 어렵다면 다른 전략 찾아야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저성장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또 하나의 우려가 번지고 있다. 경제 성장이 둔화하면서 대중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 함께 식고 있다는 것이다. 침체가 지속된다면 국가 관리와 정책 실행에 미칠 악영향은 생각보다 커 보인다.

경제 성장 둔화하면 정부 신뢰 저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제 성장 추진력이 한풀 꺾인 것은 분명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번 세기 글로벌 GDP 성장률이 3% 정도를 간신히 웃돌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이는 2000년대와 2010년대 4% 성장률에서 낮아진 수치다. 개발도상국은 더욱 심각해 2000~2010년 기간 6% 성장률에서 4%대로 내려앉았다.
파급효과는 생활 수준 정체와 공공 예산 부족으로 먼저 모습을 보이지만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함께 다가오고 있다. 바로 정치 신뢰도 추락으로 국민이 정부의 역량을 불신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국민의 정부 신뢰도는 1960년대 70%에서 현재 20%로 주저앉았다.
신뢰도 하락의 원인을 정치 및 제도의 차원에서 밝히려는 학자들이 많지만 최근 연구는 무시 못 할 또 하나의 원인을 찾아냈다. 국가 경제의 성장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국민이 공공기관에 더 많은 확신을 보내준다는 것이다. 양자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최근 경제 성장 경험한 국가, 정부 신뢰도 높아
세계 161개 국가에 걸쳐 280만 명 이상의 조사 대상에 기반한 연구는 1990년대 설문조사 자료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연구가 밝혀낸 사실은 최근 10년간 강력한 경제 성장을 경험한 국가의 국민이 정부에 대한 신뢰도 높다는 것이다.
이는 생활이 부유하고 민주정치 제도가 잘 발달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높은 성장률과 신뢰도로 그래프의 1사분면에 위치하는 국가들은 에티오피아, 카타르, 중국, 르완다 등을 포함한다. 반면 일본, 스페인, 그리스 등 경제적으로 더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들은 경기 침체와 함께 놀랍게 낮은 수준의 정치적 신뢰도를 기록하고 있다.

주: 10년간 경제 성장률(X축), 정부 신뢰도(Y축) *국가별 국가 코드 목록(인터넷에서 검색 가능)/출처=CEPR
해당 사실은 그간 정치경제학이 가정해 온, 양질의 국가 정체는 경제적 성과와 상관없이 신뢰를 높인다는 가정을 무너뜨린다. 잘 정립된 민주주의 제도를 가진 부자 나라들도 성장이 정체하며 신뢰도 위기를 겪는 경우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이를 신뢰의 역설(trust paradox)이라고 이름 붙였다.
경제 성장 경험한 세대가 정부 ‘더 많이 신뢰’
신뢰도 차이는 국가 간에만 있지 않고 세대 간에도 존재한다. 미국 국민 선거 연구(American National Election Studies, ANES) 등의 자료에 기반한 연구는 인구 집단별로 어떤 경제 상황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정부 신뢰도가 달라진다고 밝힌다.
예를 들어 1958년 당시 전후 호황을 경험하고 있던 당시 미국 청년 세대는 대공황을 겪은 중장년에 비해 정부를 훨씬 더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2018년으로 오면 반대 상황이 펼쳐진다. 잦은 경기 변동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미적지근한 회복을 경험하는 젊은 세대는 이전 수십 년간 성장을 경험한 노년 세대보다 정부 신뢰도가 낮다.

주: 1958년 조사(좌측), 2018년 조사(우측), 경제 성장률(X축), 정부 신뢰도(Y축)/출처=CEPR
이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베네수엘라, 그리스 등 청년세대가 경제 활력을 제대로 경험할 기회가 없었던 나라들도 미국과 마찬가지 패턴을 보인다. 반면 싱가포르, 중국, 대만 등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국가들은 정부에 대한 확신도 그만큼 높다.

주: 경기 침체 경험 국가(상단), 그리스, 일본, 스페인, 베네수엘라(좌부터) / 경제 성장 경험 국가(하단), 중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좌부터) / 경제 성장률(X축), 정부 신뢰도(Y축)/출처=CEPR
‘저성장’ 일상화된 세계, ‘정부 신뢰 유지할 전략’ 필요
경제 성장률과 정부 신뢰도 간 관계가 시사하는 바는 가볍지 않다. 신뢰도는 효과적인 국가 관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부가 역량이 있고 자신들을 위해 일한다고 믿을 때 국가 정책을 따르고 납세 의무를 준수하며 규제를 받아들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부에 대한 신뢰가 봉쇄 및 백신 접종 등 국가 정책 실행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지 않았는가? 기후 변화 대응과 같은 장기 정책 역시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가 필수적이다.
피트 부티지지(Pete Buttigieg) 전 미국 교통부 장관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기가 자본주의의 황금기이자 정부 신뢰의 최정점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연구 결과를 보면 이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정반대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정부 신뢰도를 깎아 먹고 리더십을 추락시켜 성장 정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저성장이 새로운 일상이라면 국가 정체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보다 투명한 통치 구조와 의사소통의 개선, 복지 및 교육에 대한 선별적 투자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신뢰가 없다면 백 가지 정책도 소용없다는 사실이다.
원문의 저자는 팀 베슬리(Tim Besley) 런던 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global growth slowdown is bad news for trust in government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