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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장벽에 갇힌 한국, 기업은 “덜 자유롭고, 더 비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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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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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규제 강화에 기업 부담 가중
규제에 발목 잡힌 기업 생존·확장성
‘기업 유치 사활’ 동남아 국가로 이탈

최근 10년간 노동 관련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기업의 부담 또한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시간 제한, 해고 요건 강화, 정규직 전환 압박 등이 기업의 전략 수립과 경영 판단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유연한 인력 운용이 생존에 직결되는 만큼 성장의 사다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에 일부 기업은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해외 국가들로 이전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생산성 고려 않은 노동 규제에 기업 ‘몸살’

18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느끼는 규제 부담 지수(BBI)는 2015년 88.3에서 올해 102.9로 높아졌다. BBI는 대한상의와 정책평가연구원이 규제나 조세 등에 대한 기업의 부담 수준을 측정한 지표로, 이 수치가 클수록 기업의 부담 또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상의는 전날 ‘지난 10년의 정책평가! 향후 10년의 혁신 환경’을 주제로 온라인 좌담회를 열고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노동 규제(112.0), 진입 규제(101.1), 환경 규제(99.3), 입지·건축 규제(99.2) 등 규제 영역의 모든 세부 항목에서 기업 부담이 10년 전과 비교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장은 “노동규제 부담지수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며 “52시간 근로시간 규제를 중심으로 고용유연성이 지극히 낮은 우리 노동시장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짚었다.

또 일선 행정에 대한 부담도 10년 전 76.8에서 올해는 111.3으로 크게 뛰었다. 지자체의 일선 규제가 늘고, 행정지연 등 관행이 기업의 체감부담을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규제와 규제행정에 대한 부담이 급증했다는 것이 우려된다”며 “국회에서 이뤄지는 규제입법에 대해 영향평가를 통해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전체 기업부담지수는 105.5로 2015년(109.5) 대비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기준선(100)을 크게 웃돌았다. 다만 조세 부담은 120.9에서 100.7로, 준조세 부담은 122.5에서 112.5로 축소됐다. 박 부회장은 “10년보다 조세 및 준조세 부담이 약간 줄긴 했지만, 규제와 규제행정에 대한 부담이 급증했다는 것이 우려되는 부분”이라며 “국내 규제 환경을 면밀히 검토하고, 과감하게 바꿔 기업의 성장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영 전략도 남다른 규제 공화국

현장에서는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규제’라는 단어가 일상처럼 따라붙는다고 입을 모은다. 세무, 노무, 환경, 기술, 유통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촘촘한 규제망이 존재하는 탓에 기업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각종 제약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이러한 규제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서 경영 판단 그 자체를 제약하는 구조로 작동한다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규제를 피해 가는 것이 하나의 경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해 대한상의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기업에 부담을 주는 경제 관련 규제는 무려 151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단순히 건수가 늘어난 것을 넘어 규제의 복잡성과 적용 범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 규제가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규제가 추가되는 경우가 많아 기업은 점점 더 많은 보고 의무와 검토 절차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실무자뿐만 아니라 경영진도 ‘규제 대응’에 시간과 자원을 배분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일관된 목소리다.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까지 저해하고 있단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신산업이나 스타트업의 경우, 규제의 간극이 기술 진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성장 발판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 부담이 커지는 정치권의 입법 행태는 기업의 혁신 동력을 약화하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지속적인 경쟁력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기업의 혁신을 독려해야 할 정부와 제도가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불확실성’이라는 이름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게 권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과도한 규제 아래서 기업은 도전보다는 안정, 확장보다는 생존에 집중하게 되고, 이는 곧 산업 전체의 역동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며 “규제가 많아지는 만큼 기업의 선택지는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해외 시장이 채우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세계는 ‘투자 유도’, 한국은 ‘불허 선언’

이는 규제를 기업 활동을 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유도하는 전략으로 활용하는 주요국들의 행보와도 상반된다. 일례로 유럽연합(EU)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했지만, 최근에는 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해당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다. 규제는 기업의 활동을 가로막는 도구가 아닌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장치여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여기에는 기업이 움직여야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생기고, 세금이 늘어난다는 현실적 의도 또한 바탕에 깔려 있다.

중소국들 또한 자국 경제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 기업 유치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규제 장벽을 낮추고 행정 절차를 간소화해 투자 유인을 강화하는 구조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는 맞춤형 규제 면제를 통해 산업·기업별 유연한 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이는 기업을 통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 발전을 이끄는 파트너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안 된다’는 말이 규제의 기본값처럼 작동하는 경향이 짙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 혁신성을 평가하기에 앞서 기존 규제에 저촉되는지를 먼저 따지고, 불확실할 경우 금지하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식이다. 특히 규제 도입 시 사전적 설명보다 사후적 단속이 강조되다 보니 기업은 끊임없이 리스크를 예측하고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곧 ‘혁신을 감행하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많은 기업이 한국을 등지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해외 직접투자 유출은 234억 달러(약 33조3,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00억 달러 늘었다. 반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은 같은 기간 69억 달러(약 9조8,000억원)에서 39억 달러(약 5조5,000억원)로 감소했다. 문제는 이러한 이탈이 단발성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외국인 투자 감소, 산업 규제 리스크에 직면했다”면서 “기업이 떠나는 나라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 모여드는 ‘플랫폼 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우호적인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필수”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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