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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주한미군 2만8,500명 중 4,500명 철수 검토" 中 대만 침공 억제 최우선, 北 대응은 동맹 분담 日은 '동아시아판 나토'등 집단 안보 체제 제안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일부를 괌 등 인도·태평양 내 다른 기지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변화된 국방 기조를 반영한 조치로, 현재 미 국방부는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북한 대응은 한국에 맡기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한반도와 대만 해협을 하나의 전략 전구로 통합하자는 구상을 내놓으면서 동아시아 안보 협력 체계의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WSJ "주한미군 감축, 아직 공식 보고하지 않아"
2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는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 약 2만8,500명 중 4,500여명을 괌 등 인도·태평양 지역 내 다른 기지로 이동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WSJ는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이 구상은 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한 비공식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검토되고 있으며 고위 관리들 사이에 논의되는 여러 아이디어 중 하나"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등과 연계해 주한미군 감축을 검토했으나 참도진의 반대로 실현되지느 않았다.
다만 WSJ는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아직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식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여부 등과 관련해 명확한 그림이 나올 때까지 병력 수준에 대한 결정은 보류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괌은 잠재적 분쟁 지역이면서도 중국군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위치에 있어 국방부의 핵심 병력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주한미군이 일부 철수하더라도 해당 병력이 인도·태평양 지역 내에 계속 주둔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美 내에서도 대북 억제력 약화 우려 제기
다만, 미 정부 내에서도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난달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 침공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현재의 입지적 우위(positional advantage)를 유지할 수 있다"고 답했고,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역량에 대해서는 "그들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뮤얼 퍼파로 미군 인도태평양사령관도 주한미군의 억지력 유지 필요성에 동의하며 “주한미군의 중대한 감축은 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감소시킨다”고 경고했다. 그는 "주한미군의 규모와 태세를 유지하는 것은 한미동맹의 신뢰와 지역 안정에 필수적"이라며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한뿐 아니라 역내 다른 잠재적 위협에 대한 중요한 억지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주한미군이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 측면뿐 아니라 미중 전략경쟁 측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미 국방부의 국방전략(NDS) 수립을 이끄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미국이 핵우산을 통한 확장 억제를 계속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북한의 재래식 위협에 대한 방어 부담은 한국이 더 지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 차관 지명 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나는 한국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면서도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한 재래식 방어 부담을 더 지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집단 안보 협력체제 구상' 부상
트럼프 정부는 중국 견제, 특히 중국의 대만 공격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을 인도·태평양 군비 태세 조정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지난 3월 국방부 내부에 배포한 9쪽 분량의 ‘임시 국가 방위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Defense Strategic Guidance)’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와 본토 방어가 최우선 과제로 명시했다. 해당 지침에는 “북한 등 기타 위협은 해당 지역의 동맹국과 파트너국에 최대한 맡긴다”는 방향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까지 미국은 한반도는 주한미군, 동중국해와 대만 해협은 주일미군이 각각 관할하는 별개의 전구(戰區)로 간주해 왔다. 동아시아 각국 역시 역사적 갈등과 상이한 위협 인식, 안보 이해관계 차이 등으로 인해 집단 안보 협력 체제 구성에 소극적이었고, 대부분 미국과의 양자 동맹을 통해 안보를 유지해 왔다. 예컨대, 중국이 일본을 공격했을 때 한국이 일본을 지원하거나, 반대로 한국이 공격받았을 때 일본이 한국을 방어하는 것은 정치적·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은 대만 해협과 한반도를 하나의 전략 전구로 통합해 대응하자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나 일 방위상의 '전구 통합 구상' 등과 맞닿아 있다. 이는 유럽의 나토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집단적으로 대응한 사례를 동아시아에도 적용하려는 전략으로 중국, 러시아, 북한에 대한 집단적 억지력(deterrence)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외교·안보·군사 분야의 한일 동맹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