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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정한 기후 위기 대응 자가 설비에 따른 공공 재정 위협 균형 잡힌 대응 체계 구축 필요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은 '물 전면 단수'라는 초유의 사태를 목전에 뒀다. '데이 제로(Day Zero)', 즉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날이 현실로 다가오자, 도시 전체가 물 절약에 나섰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사용량을 절감했고, 정수 시스템도 재정비됐다. 그러나 이 위기는 단순한 자원 고갈이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가르는 생존 경쟁으로 번졌다. 중산층은 정원 호스를 걷고 수영장을 덮었지만, 빈곤 지역 주민들은 새벽부터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줄을 서야 했다.

불균형한 희생의 수치
2015년부터 이어진 가뭄으로 서케이프 지역의 강수량은 평년의 60%에도 못 미쳤고, 케이프타운에 식수를 공급하던 6개 주요 저수지는 용량의 95%에서 13.5%까지 급감했다. 시 당국은 누진 요금제와 절수 캠페인을 시행했고, 결과적으로 물 사용량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하지만 감당한 희생의 무게는 계층마다 달랐다. 가뭄 전 상위 10%는 하루 2,100리터를 썼고, 하위 30%는 세 집을 합쳐도 450리터를 넘지 못했다. 이후 저소득층은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기준치에도 못 미치는 85리터 이하로 줄였지만, 고소득층은 지하수 관정을 통해 하루 1,100리터를 확보했다. 어떤 이는 생존을 줄였고, 어떤 이는 사치를 줄였다.

주: 소득 분위별 평균 물 사용량(단위: 킬로리터)/소득 분위(색상별), 가뭄 위기 기간(음영 구간)
무너진 요금 구조
상위계층은 3,000~1만 달러(4백만원~1천 3백만원)를 들여 지하수 펌프 시설을 설치했고, 공공요금의 70% 이상을 절감했다. 문제는 이들의 이탈이 전체 상수도 재정을 흔들었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다량 사용자였던 이들이 저소득 40만 가구의 최소 사용량을 보조하는 구조였지만, 이 교차보조 시스템이 무너지며 1년 만에 수익이 17억 랜드(약 1,000억원)나 감소했다. 시 당국은 수도관 직경에 따라 고정 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4인치 관을 쓰는 고급 주택은 2인치 관의 일반 가구보다 30배 높은 고정 요금을 냈다.

주: 연도(X축), 신청 건수(Y축)/소득 분위(색상별) 가뭄 위기 기간(음영 구간)
그러나 이 조치로도 재정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2020년 유출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수도국은 예비금이 전체 운영비의 5% 아래로 떨어질 때 237개 학교의 수도 시설 유지보수를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적 불평등
기후 위기는 자연재해가 아닌, 구조적 불평등의 반영이다. 역사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에 가장 적게 기여해온 이들이 오히려 가장 먼저, 가장 깊게 타격을 받고 있다. 반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들은, 강한 기반 시설과 자원을 바탕으로 재난을 흡수하고 회복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 같은 격차는 한 도시 안에서도 반복된다. 케이프타운에서는 자가 설비를 갖춘 고소득층이 위기를 벗어난 반면, 공공서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다수는 요금 인상과 서비스 축소라는 이중 부담을 감당해야 했다.
글로벌 재정의 착시
유엔환경계획(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UNEP)에 따르면, 2022년 기후위기 적응을 위한 국제 공적 자금은 280억 달러(39조원)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그러나 연간 필요 자금은 3,590억 달러(495조원)에 달한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들은 2021년 글래스고 조약(Glasgow Climate Pact)을 통해 2025년까지 적응 자금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이 이행되더라도 충족 속도는 지금보다 고작 5% 빨라지는 데 그친다. 다시 말해, 전 세계는 기후 취약계층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자금의 8%만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형평성을 담은 적응 설계
기후 위기 적응이 공정하려면, 설계부터 달라져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종량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진다. 소득이나 부동산 가치를 기준으로 고정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적 대응 수단도 관리 체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기후 위기 적응 자금도 단순한 원조가 아니라, 제도적 형평성을 갖춘 국가에 대한 투자로 바뀌어야 한다. 복지 시스템과 공공재 배분 역량이 검증된 지역에 우선 배정함으로써, 재정이 실질적 보호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보의 투명성이다. 정보는 감시의 도구가 되고, 감시는 정의로운 적응의 출발점이 된다.
불평등한 적응, 바꿔야 할 것은 시스템
기후 위기는 모두를 위협하지만, 그 충격은 평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사적 대안이 늘수록 공공 시스템은 취약해지고,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진다. 정의로운 적응은 물 절약 캠페인으로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요금 체계와 재정 구조, 정보 공개와 제도 설계에 이르기까지 전면적인 시스템 개혁으로 이뤄져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알렉산더 아바지안(Alexander Abajian) 캘리포니아대학교 (University of California) 박사 외 4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Climate adaptation and inequality: Lessons from Cape Town’s drought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