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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 빈집’ 세금으로 밀어내고 민간이 개발 주도, 지방 구하기 묘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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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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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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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증가 ‘규제 기반 해법’ 논의
단기 프로젝트 그친 정부 주도 지역발전
민간 주도 지방 정착 실험 움직임 포착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보가 5월 29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실에서 '범정부 빈집관리 종합계획'에 대한 발표를 진행 중이다/사진=행정안전부

지난해 전국 빈집이 13만 호를 훌쩍 웃돌면서 정부와 국회가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빈집세, 빈집등록제 등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다만 지방 소멸이라는 구조적 배경 속에서 기존의 공공 주도 개발이 반복적으로 실패한 만큼 이제는 민간 자본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이 이동해야 한단 지적 또한 제기된다. 실제로 강원 홍천, 전남 고흥 등에선 세컨하우스 전용 단지가 조성되는 등 민간 활용 모델이 본격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금 부과로 민간의 저가 매입 및 재건 유도

23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빈집은 13만4,009호(도시 5만5,914호· 농어촌 7만8,095호)로 집계됐다. 이 중 활용 가능한 집은 8만7,689호였으며, 철거가 필요하다고 결론 난 집은 4만6,320호로 파악됐다. 시·도별로는 전남이 2만6호로 가장 많았으며, 전북(1만8,300호), 경남(1만5,796호), 경북(1만5,502호), 부산(1만1,471호) 등이 뒤를 이었다. 저출생·고령화 추세에 따라 향후 빈집 발생이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이에 정부는 ‘농어촌 빈집 정비 특별법’과 ‘빈 건축물 정비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특별법을 통해 그간 시·군·구에만 맡겨졌던 빈집 문제를 △국가 △시·도 △시·군·구 그리고 △소유자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하고 빈집 정비 관리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행안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4개 부처 합동으로 빈집정비태스크포스(TF)도 운영 중이다.

국회에서는 빈집 소유자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철거에 대한 비용 부담을 지우는 방안과 빈집세 도입 필요성이 대두되는 분위기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빈집정비사업의 국비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빈집정비사업을 적극 활용해 지방 소멸에 대응해야 한다”며 “빈집정비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빈집세는 일정 기간 이상 비어 있는 주택에 추가 세금을 부과해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처분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미 일본, 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제도를 운영 중이며, 이 가운데 프랑스의 ‘빈집 연간세금’은 지자체 내 주택 부족 해소, 도시재생 프로그램 등의 재원으로 활용되는 등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명우 국회도서관장은 “최근 우리나라도 빈집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며 “관련 정책 마련과 입법 추진 시 프랑스의 빈집세 입법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산업 자립 기반 마련엔 ‘뒷짐’

전국에 빈집이 속출하는 근본적 원인으로는 단연 지방 소멸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지난 50년간 단 한 번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예산 낭비와 행정 비효율만 키워왔다는 비판을 받는다. 수도권 집중을 막기 위한 공공기관 이전, 지방 산업단지 조성, 인프라 건설 등이 반복됐지만, 지방 인구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도리어 지난 10년간 226개 기초지자체 중 절반 이상이 인구 감소 지역으로 분류됐고, 그중 상당수는 출산율뿐 아니라 유소년 인구 자체가 사라지는 ‘기초 붕괴’ 상태에 직면했다.

이는 더 이상 지역 소멸을 단순 인구 문제나 도시화의 부작용으로만 볼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부는 매년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역 개발 계획을 내놨지만, 이는 대개 정치 논리에 휘둘린 일회성 사업에 불과했다. 지역 고유의 산업 생태계나 인재 유입 전략이 부재한 토목 사업이 성과로 이어질 리 만무하다. 이 과정에서 지역 경제의 주체가 될 민간 기업은 성장 기회를 얻지 못했고, 각종 규제로 발이 묶인 기업들이 지방 진출을 포기하는 사례 또한 속출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지역의 정부 의존 체질을 고착시켰다는 점이다. 각 지자체는 중앙 정부 예산에 기대 단기적인 일자리 사업이나 임시 프로젝트를 반복하면서 장기적 도시 전략이나 산업 기반 확보는 뒷전으로 미뤄뒀다. 그 결과 “사업이 끝나면 도시도 끝난다”는 자조가 지역 현장을 뒤덮었고, 이는 다시 지속 불가능한 순환 구조로 굳어졌다. 결국 지방은 ‘살아야 할 이유’보다 ‘남아 있을 수 있는 조건’을 기다리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강원 홍천에 조성된 세컨하우스 단지 '홍천 리빙웰' 조감도/사진=리빙웰

실험과 조정은 시장이, 정부는 플랫폼 역할 중요

이에 최근에는 민간이 새로운 실험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직접 개발하고 입주를 유도하는 방식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기업과 개인이 스스로 지방을 선택지로 삼은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확산된 ‘세컨하우스’ 수요와 ‘한 달 살기’ 문화가 대표적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30~40대 직장인, 육아와 여가를 동시에 고려하는 가족 단위의 수요는 지방의 정주 인프라와 부동산 시장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에 저가의 빈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 소형 주택을 공급해 주말 거주자나 계절 거주자 중심의 유연한 정착 모델을 제시하는 시행사도 증가 추세다. 전남 고흥, 강원 홍천, 경북 안동 등에서는 이미 세컨하우스 전용 단지가 들어서거나 기업형 한 달 살기 플랫폼 실험이 전개 중이다. 과거처럼 출퇴근 가능한 거리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면서 ‘느슨한 이주’ 모델이 가능해진 결과다. 이 같은 이주 모델은 지역 인구를 완전히 대체하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일시적 소비와 순환적 거주를 통한 지역 활성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직접 주택을 짓고 사람을 보내는 과거의 역할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 실험들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플랫폼’이 되는 쪽으로 전환돼야 한단 지적이다. 손승광 동신대학교 교수는 “다양한 방식의 분산 주거가 반복되고, 정착자 유형이 축적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지방’이라는 상이 구체화될 수 있다”며 “제도 설계, 재정 지원, 규제 정비 등은 여전히 국가의 역할이지만, 실제로 지방에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시장이 결정하고 조정해 나가는 과정에 맡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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