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日 부동산 시장, 1분기에만 112억 달러 끌어모았다 시장 회복세·엔저·안정적 투자 조건 등이 투자자 유인 부동산 침체기 벗어나지 못한 中은 '찬밥 신세'

아시아 시장에 투자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 상황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일본에서 부동산 호황 조짐이 관측되자 투자 수요가 대거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은 특히 중국 본토 부동산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던 홍콩 투자자들의 '변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 '日 부동산'에 주목
22일(이하 현지시각)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콜리어스(Colliers)의 데이터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 1분기 글로벌 투자자들은 일본 부동산에 총 112억 달러(약 15조5,000억원)의 자본을 투입했다. 이는 지난 5년 평균보다 6% 높은 수치다. 이로써 일본은 전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부동산 투자 수혜국이 됐다.
콜리어스는 일본 부동산 시장에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한 국가로 미국, 싱가포르, 홍콩을 지목했다. 중국 본토 투자자들 역시 같은 기간 일본 부동산에 10억 달러(약 1조3,800억원)를 쏟아부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5년 평균치인 4억2,800만 달러(약 5,808억6,000만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홍콩 투자자들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콜리어스 재팬의 투자 서비스 책임자인 마사히로 타니카와는 "홍콩 투자자들은 전통적으로 중국 본토 부동산에 집중해 왔지만,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인해 자본 흐름이 일본과 호주와 같은 보다 안정적인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일본과 호주) 양국 모두 깊고 유동적인 다가구 투자 시장을 제공하며,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中 부동산 시장의 침체
마사히로 책임자가 언급한 대로, 중국 부동산 시장은 수년째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2020년 말부터 시행된 부동산 개발 업체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속된 경제 둔화로 인해 시장 전반이 얼어붙은 것이다. 중국 대도시의 사무실 공실률은 올해 2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며, 사무실 임대료는 전년 대비 10%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초 중국 내 신규 주택 착공 건수는 전년 대비 약 30% 줄었고, 신규 주택 가격은 21개월 연속 하락세다.
주택 공급과 수요를 보여주는 지표도 나란히 위축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4월 경제통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 부동산 개발 투자는 2조7,730억 위안(약 533조5,80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10.3% 줄었다. 같은 기간 신규 분양 아파트 판매액은 2조7,035억 위안(약 520조2,070억원)으로 전년 대비 3.2% 감소하며 1분기보다 낙폭을 2.1%P 확대했다.
중국 부동산 경기가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글로벌 투자자들은 줄줄이 현지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 운용 회사로 꼽히는 미국 블랙록은 지난해 말 중국 내 오피스 빌딩 한 채를 40% 이상 손실을 보고 처분했으며, 올해 3월 중국 현지에 보유하고 있던 마지막 부동산인 상하이 오피스 건물 ‘트리니티 플레이스’를 매각하며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철수했다. 지난 1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상하이·쑤저우·청두·충칭 등에 있는 쇼핑몰 4개 지분 49%를 중국 다자보험그룹에 팔았고, 홍콩의 부동산 개발업체 파크뷰그룹도 베이징 중심가의 복합 쇼핑몰인 팡차오디를 매물로 내놨다.
기지개 켜는 日 부동산
반면 버블 경제 이후 장기간 침체 상태였던 일본 부동산 시장은 최근 들어 눈에 띄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월 1일 기준 일본 부동산 공시지가는 1년 전보다 전국 평균 2.7% 오르며 4년 연속 상승세를 유지했다. 일본의 공시지가는 전국 2만6,000곳의 표준지를 감정 평가한 결과를 토대로 국토교통성이 결정한 토지 가격이다. 부동산 가격 회복세에 힘입어 거래 수요도 빠르게 되살아나는 추세다. 닛케이아시아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일본 부동산 거래액은 약 5조 엔(약 47조원)으로 지난 10년 중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일본 부동산 시장의 대표적인 성장 동력으로는 일본 기업들의 대규모 자산 매각 움직임이 꼽힌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주주행동주의와 자산 효율화 요구에 따라 주요 부동산을 잇달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세이부 철도의 지주사 세이부 홀딩스는 도쿄 가든 테라스 기오이초를 약 4,000억 엔(약 3조7,660억원) 에 블랙스톤 그룹에 매각할 예정이며, 맥주 제조 기업 삿포로의 지주사 삿포로 홀딩스는 약 4,000억 엔 상당의 자산을 운용할 파트너를 선정 중이다. 이처럼 우량 자산들이 시장에 대거 쏟아져 나오면 투자 수요는 자연히 증가하게 된다.
일본 부동산 시장의 낮은 공실률과 안정적인 임대료 구조도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다. 특히 일본의 임대차 보호 제도와 장기 임차인 선호 문화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보장, 장기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 한국·중국 등 인접국 시장 대비 변동성이 낮다는 점도 일본 부동산의 매력 중 하나다.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려는 투자자들은 일본 부동산 투자를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고, 안정성과 성장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