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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국채로 가치 담보 예정 자금결제법 개정 후 첫 사례 3년 내 1조 엔 발행 목표

일본 정부가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처음으로 허용한다. 일본은 2023년 개정 자금결제법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통화 표시 자산'으로 규정해 다른 암호화폐와 분리, 은행·신탁회사·자금이동업자가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JPYC 발행은 그 법적 토대 위에서 이뤄지는 첫 사례로, 미국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자 일본 정부도 적극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JPYC, 첫 발행 기업으로 나서
1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은 도쿄 소재 핀테크 기업 JYPC에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처음으로 허용할 계획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금 등 실물자산에 가치를 연동(페깅)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한 디지털 자산이다. 달러, 유로 등의 실제 자산을 예치하거나 자체 알고리즘을 활용해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기존 가상자산과 달리 급격한 가격 변동이 적어, 송금·결제 등 실생활과 금융 거래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일본 금융청은 이르면 이달 중 JYPC를 스테이블코인 발행 가능 사업자로 등록할 방침이며 JYPC는 등록 완료 후 몇 주 뒤부터 'JYPC'라는 이름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JYPC가 발행할 스테이블코인의 단위는 ‘1JYPC’이며, 1JYPC는 1엔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구조다. 이를 위해 JYPC는 엔화 예금이나 일본 국채 등 안정적인 자산을 확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일정하게 뒷받침할 계획이다.
자산 확보 방식은 향후 금융청의 감독 아래 투명하게 운용될 예정이다. JYPC는 향후 3년간 1조 엔(약 9조5,000억원) 규모의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JYPC는 이를 통해 금융 접근성이 낮은 사용자층을 겨냥하고, 기존 금융 인프라의 효율성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방침이다. 닛케이는 “JPYC는 해외 유학생에 대한 송금 같은 국제송금뿐 아니라, 법인 결제, 블록체인상의 자산 운용 서비스인 탈중앙화 금융거래(디파이·DeFi)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며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나, 부유층 자산을 관리하는 패밀리 오피스 등 여러 투자자들로부터 이미 관심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금리차 수익을 노리는 캐리 트레이드에 JPYC가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엔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조성 기대
이번 사례는 일본 내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제도화된 이후 실제 허용되는 첫 번째 케이스로, 그동안 해외 스테이블코인에 뒤처졌던 일본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제송금 비용 절감, 기업 간 결제 간소화, 블록체인 기반 자산운용 확산 등에서 '엔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기존 암호화폐와 달리 달러화나 엔화 같은 법정 통화와 1대 1로 가치가 연동된다. 세계적으로는 이미 달러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이 주류다. 특히 테더(USDT)와 USDC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으며, 전체 시장 규모는 2,500억 달러(약 347조원)를 넘어섰다. 씨티그룹은 2030년까지 시장 규모가 최대 3조7,000억 달러(약 5,100조원)로 커지며 현재의 10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JYPC 외에도 여러 핀테크 기업이 엔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금이동업자 자격을 확보한 업체들이 관련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며, 향후 유사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규제 준수 기반 블록체인 금융 인프라 구축 가속화
실제 보수적인 일본 은행권조차 대형 은행을 중심으로 연내 엔화 스테이블코인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일본 3대 메가뱅크인 미즈호와 미쓰이스미토모(SMBC),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팍스(Project Pax)’는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국경 간 송금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금융사들이 기존 송금 인프라를 기반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송금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일본 내 규제를 준수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플랫폼인 ‘프로그맷 코인(Progmat Coin)’도 준비 중이다. 가상자산 매체 더 크립토노미스트는 “미쓰비시가 일본의 첫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다가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SMBC 역시 아발란체 블록체인과 함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SMBC는 올해 하반기에 현지 IT 기업 TIS와 협력해 프로젝트를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내년에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계획이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유에스디코인(USDC)을 발행하는 서클은 3월 일본 금융사 SBI와 손잡고 가산자산거래소 SBI VC 트레이드에 USDC를 출시하기도 했다. 서클과 SBI의 이번 계획은 일본 금융권의 최초 대규모 대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어, 향후 다른 금융 기관들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XRP 분석가 잭더리플러(JackTheRippler)가 인용한 SBI 문서에 따르면 엔화 스테이블코인은 XRP 레저(XRPL)의 실시간 결제, 낮은 수수료, 그리고 내장된 탈중앙화 거래 기능을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SBI는 XRPL에 엔화 기반 토큰을 발행함으로써 국내외 거래에서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본 엔화의 디지털 표현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