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SCO 통해 다자외교 복귀, 중국·북한·인도와 '反서방 연대' 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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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트럼프와의 알래스카 회담으로 외교적 사면 “서방 주도한 쿠데타, 우크라이나 위기 초래” 주장 열병식서 북·중·러 정상 함께 톈안먼 망루 오를 듯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년 넘게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통해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알래스카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외교적 사면을 받은 그는 인도·중국·북한 등과의 연대를 과시하며 반(反)서방 외교 전선을 강화하고 있다.
푸틴 "SCO가 낡은 유럽 중심주의 대체해야"
1일(현지 시각)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중국 톈진에서 열린 SCO 정상회의 연설에서 "현재 우크라이나가 처한 위기는 러시아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키이우에서 서방이 주도한 쿠데타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며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끌어들이려는 지속적 시도가 전쟁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속 가능한 평화 합의가 이뤄지려면 위기의 근본 원인이 제거돼야 하고, 안보 분야에서 공정한 균형이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평화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SCO는 유라시아 전역의 협력과 신뢰를 강화하며 다극적 세계 질서 구축에 기여해 왔다"며 "유럽·북미 중심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SCO가 주도하는 진정한 공정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른 국가의 안보를 희생시켜 자국 안보를 보장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며 "SCO가 유럽 중심주의를 대체하고, 많은 국가의 이익을 고려해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모디 총리와는 아우루스 동승하며 신뢰 과시
이번 SCO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비롯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 샤르마 올리 네팔 총리 등과 잇따라 양자 회담을 가졌다. 특히 최근 미국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 인도와의 정상회담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됐다. 인도는 러시아가 수출하는 원유의 3분의 1을 수입하는데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성 관세 25%를 추가 부과했다. 이에 인도는 기존 25%의 상호관세에 더해 총 50%의 고율 관세를 부담하게 됐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회담을 시작하기 전 모디 총리를 러시아어로 "친애하는 총리, 친애하는 친구"라고 불렀고, "러시아와 인도가 수십 년간 유지해 온 특별한 관계는 미래 발전의 기반"이라며 인도와의 파트너십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모디 총리도 엑스(X)를 통해 "양국의 특별·특권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역내·국제 안정의 핵심 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와 무역·비료·우주·안보·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양자 협력 심화를 논의했다"며 우크라이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한 지역·국제 정세에 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제 방탄 리무진 '아우루스'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우루스는 푸틴 대통령이 해외 순방 시 자주 이용하는 의전 차량으로, 친한 정상들을 직접 태우거나 선물로 제공해 왔다. 이는 긴밀한 신뢰와 연대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게도 아우루스를 선물했고 지난해 6월 방북 때는 함께 드라이브를 즐겼다. 모디 총리는 아우르스를 타고 푸틴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엑스에 올리고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통찰력 있다"고 했다.

中은 원유 수입 확대·北은 군사적 지원 제공
국제사회에서는 이번 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푸틴 대통령이 사실상 대규모 다자외교 무대에 '완전한 복귀'를 선언한 것으로 평가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회의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푸틴 대통령과 같은 독재 성향의 지도자에게는 서방 제재에도 고립되지 않았음을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석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외교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아왔다. 2023년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120여 개 ICC 회원국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부활은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회담을 통해 부여한 '면죄부' 덕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 15일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푸틴 대통령을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로 초청해 단독 회담을 가졌고, 이어 같은 달 18일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양자 회담이 2주 내 열릴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 발언 이후 스위스,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평화회담 유치 경쟁에 나서면서 ICC의 체포영장이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는 지적이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 복귀전은 오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경제적 우군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군사적 지원국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올라 반(反)서방 연대의 상징적 모습을 연출할 예정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 비중을 전쟁 직전인 2021년 15.5%에서 2024년 19.6%로 늘리며 경제적 지원을 강화했다. 북한은 약 1만~1만2,000명의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하고 152㎜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대규모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