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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양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레고랜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발행채권마저 유찰될 정도다.
김진태 발 레고랜드 참사에 野 맹공
강원도가 보증을 선 강원중도개발공사의 2050억원 빚을 못 갚겠다며 김진태 강원지사가 기업회생을 신청해서 벌어진 일이다. 지자체의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채권시장의 돈줄이 마른 것이다. 지방정부가 지급보증했던 우량 채권이 부도나자 시장에 공포가 번졌고 신용 붕괴를 막으려 정부와 한국은행이 최소 50조 원을 쏟아붓고 있다. 김 지사는 “강원도는 보증채무 2050억원 전액을 올해 안에 갚겠다”는 등 잇단 입장을 내놓고 사태를 진화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를 잘 모르는 검사 출신 정치인의 한계”라 김 지사를 공격하며 사실상의 사퇴를 종용했다. 김진태 지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도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졸업해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로 임용됐고 검사 시절 ‘바다이야기’ 수사 등 굵직한 사건을 맡았다. 반면 경제와 관련해서는 크게 전문성이나 두각을 드러낸 적이 없다. 김 지사가 경제를 잘 알았다면 이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는 야당과 여론의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김 지사 개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 경제 이슈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를 갖고 있으면서 현재의 흐름을 예리하게 짚어 낼 줄 아는 현역 정치인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일례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한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를 들 수 있다. SNS 활동을 굉장히 활발하게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거시경제 현안에 대한 SNS 포스팅을 올린 것이 무려 28일 전이다.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는 전직 통계청장 출신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도 경제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한 게 한 달도 넘었다. 여당 정치인들 상황은 대체로 비슷하고, 유일하게 최근 당권주자로 손꼽히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과 의원직을 사퇴한 윤희숙 전 의원 정도만 거시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섞인 분석 포스팅을 최근에 여러 차례 올렸을 뿐이다.
경제 모르는 한국 정치인? 다 한국 국민 수준 탓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은 무려 20년 전에도 나오던 것이다. 2007년 8월 한국경제신문의 칼럼은 “정치인들이 시장경제에 대해 이해도가 낮아 겉으론 시장경제를 신봉한다고 표시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에 오면 반시장적 정책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장적 마인드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경제맹 현상은 오랜 시간 내려오는 고질적인 한국 정치인들의 문제점이다. 이에는 인재들이 주로 법조계나 언론인, 직업 정치인을 택해 정치권에 입문하기 때문이다. 경제를 잘 모르는 현실과도 관련이 깊지만 본질적으로는 주권자인 국민들은 경제에 대한 시야가 조악하기에 경제를 잘 아는 정치인을 굳이 선택하지 않으려 하는 태도에 기인한다.
실제로 2021년 정부가 실시한 초·중·고교생 대상 ‘경제 이해력 조사’ 결과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100점 만점에 53점에 그쳤다. 경제에 대한 부실한 교육과정, 교사들의 낮은 숙련도, 우리 사회의 왜곡된 경제관, 돈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국제적 컨설팅 기업 액센추어가 2000년대 초반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인들의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높다는 게 최초로 조사된 후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한국인들의 반기업 정서는 OECD 기준 아주 높은 편이다. 은행 대출이나 보험 가입 등 실생활에 필요한 경제활동 위주의 경제교육을 하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교육 현실이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이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경제맹’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그리고 경제맹 국민은 경제맹 정치인을 선출하게 된다.
실제로 21대 총선이 끝나고 3040세대 초선 국회의원들이 가장 희망하지 않은 상임위로는 금융을 다루는 정무위와 거시경제 현안을 다루는 기재위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안타깝게도 그 이유는 3040세대 신진 정치인들마저 경제나 시장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었다. 선출직 국회의원임에도 국정감사 내용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신세대 정치인들의 현실마저 이러한데 경제를 잘 아는 정치인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대한민국 현실에선 지나친 기대인 셈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사인은, 오프라인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청년 유권자들의 시각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라면 경제 흐름에 밝고 금융 관련 현안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년 유권자들이 최근에는 정말 많이 목격되고 있다. 실제로 반기업 정서도 많이 누그러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유권자들이 가진 거시경제에 대한 시야가 발전하고 정치인을 선출할 때 그와 같은 관점을 적극 반영한다면 조만간 정치인들의 ‘수준’에도 지각변동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