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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컴퍼니의 100주년이 다음 달로 다가왔다. 디즈니의 지난 100년은 평탄하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창업주 월트 디즈니와 로이 디즈니의 사망 후, 경영진들의 무사안일주의로 인해 서서히 침몰해가던 디즈니는 1984년, 회사를 살리기 위해 당시 파라마운트 픽처스의 사장을 맡고 있던 마이클 아이즈너를 과감하게 영입했다.
마이클 아이즈너는 디즈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재임 기간 동안 디즈니의 조직 구조는 점점 더 관료화됐다. 당시 "애니메이션 명가인 디즈니를 탐욕스럽고 영혼 없는 기업으로 망쳐놨다"는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전횡을 일삼았고 이는 콘텐츠 중심 기업을 정의하는 특성, 창의성과 역동성이 쇠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혜성처럼 등장한 밥 아이거
창의성과 역동성의 쇠퇴는 자연스레 경영 악화를 낳았고 2004년 당시 비교적 규모가 크지 않은 케이블 방송사였던 컴캐스트가 디즈니를 인수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결국 아이스너는 2005년으로 예정된 고용계약이 끝나기 이전에 CEO직을 그만두게 됐고, 그나마 유지했던 이사직 또한 내놓게 됐다. 이후 디즈니는 밥 아이거의 리더십 아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아이거는 15년간의 임기 동안 인수합병(M&A)을 통해 디즈니를 '콘텐츠 왕'에서 'IP 왕'으로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디즈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픽사 인수를 시작으로 2009년 마블, 2012년 루카스필름, 2019년 21세기폭스를 잇달아 인수하며 디즈니를 독보적인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제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아이거의 임기 동안 디즈니의 순이익은 매년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주가는 2005년 당시 약 25달러에서 2021년 2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체이팩과 코로나
하지만 2021년 아이거가 퇴임하고 그의 후임자인 밥 체이팩이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디즈니는 또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코로나19를 포함한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테마파크 전문가로도 유명한 체이팩이었지만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였던 디즈니랜드 사업이 코로나19로 인해 폭삭 주저앉으면서 주가도 함께 내려앉았다.
이에 체이팩은 전임자인 아이거가 시작한 스트리밍 플랫폼 디즈니+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가입자 증가를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상당한 리소스를 할당했다. 지금까지 오프라인에 쏟았던 역량을 앞으로는 온라인 쪽에 전면적으로 쏟아붓겠다고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스트리밍 사업에 대한 기대감 덕분인지, 디즈니는 2020년 12월 들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시가총액 3,000억 달러(약 398조원)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무적으로는 효과적이지 못했고 비용만 더 쓴 셈이 됐다.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디즈니는 디즈니+ 구독 가격을 인상했지만 구독자 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체이팩은 디즈니의 콘텐츠 제작 프레임워크에도 상당한 변화를 줬다. 그는 콘텐츠 제작, 배포, 투자, 플랫폼 전략을 총괄하는 디즈니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배포(DMED) 부서를 도입했는데, 이는 예산과 배급 권한을 개별 제작 부서에 위임하던 디즈니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것으로 DMED의 중앙 집중식 통제 아래 디즈니의 콘텐츠 제작은 보다 수직적인 구조가 됐다.
하지만 DMED가 디즈니 콘텐츠 제작의 모든 측면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디즈니 콘텐츠의 품질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특히 방대한 세계관과 견고한 팬층을 보유한 마블의 영화 <블랙 위도우>, <토르>, <블랙 팬서>, <앤트맨> 등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가 하면, 픽사의 회심작 <버즈 라이트이어>마저 흥행에 실패하면서 여러 감독과 프로듀서가 디즈니를 떠나게 됐다.
다시 등장한 아이거, 후계자 육성이 관건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디즈니의 주가는 지난 7일 기준 80.57달러로 추락했다. 이는 2020년 3월 코로나19 발발 이후 최저점을 경신한 것으로, 체이팩은 경영 악화의 책임을 지고 조기 경질됐다. 이후 체이팩의 후임으로 밥 아이거가 지난해 10월, 2년 만에 디즈니로 복귀했다. 당시 디즈니 이사회는 아이거가 2년 동안 회사에 머물며 전략적인 방향을 설정하고 장기적으로 회사를 이끌 후임자 물색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거도 2년 이상 재임할 의도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거는 복귀 직후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2019년 출시 후 100억 달러(약 12조8,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기록한 디즈니+ 스트리밍 사업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디즈니 사업부를 기존 미디어·엔터테인먼트와 테마파크 2개에서 엔터테인먼트, ESPN, 테마파크 3개 부문으로 개편하기도 했다. 또한 55억 달러(약 7조2,98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구조조정안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직원 7,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스트리밍 콘텐츠도 축소하고 있다.
아이거는 픽사, 루카스필름, 마블 등의 인수를 통해 디즈니를 최고의 IP 회사로 끌어올렸으며, 이러한 IP를 활용해 프랜차이즈 콘텐츠, 상품, 영화, 나아가 디즈니랜드 어트랙션까지 제작해 수많은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디즈니의 영향력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디즈니 주가는 올해 들어서 주로 100달러선 아래에 머물렀는데 이는 2년 전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디즈니의 전통 케이블 사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최근 <엘리멘탈>, <인디아나 존스>, <인어공주>를 포함해 영화도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지난 4일 미국 연방 공휴일인 독립기념일을 맞아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를 찾은 방문객 수도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디즈니가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아이거의 후계자 찾기다. 다나 월든 월트디즈니 일반 엔터테인먼트 총괄을 비롯해 앨런 베르그만 월트디즈니 콘텐츠 스튜디오 총괄, 제임스 피타로 ESPN 사장, 크리스틴 맥카시 월트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네 명이 후보로 꼽힌다. 이들은 아이거에게 후계자로서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단계를 밟을 예정이다. 아이거의 경영권 승계를 노리는 내부 후보들이 선의의 경쟁을 벌이며 능력을 입증하고 디즈니의 향후 100년을 책임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