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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륨 '수출 규제' 카드 꺼내든 中, 차세대 반도체 개발하는 美에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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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진이 개발한 2인치 수직형 질화갈륨(GaN) 전력반도체/사진=ETRI

세계 최대 갈륨 생산국인 중국이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실리콘을 대체할 차세대 전력 반도체 웨이퍼 원료로 꼽히는 질화갈륨(GaN) 수급처가 사실상 차단된 셈이다. 중국이 시장 점유율을 무기로 세계 반도체 시장에 보복성 제동을 건 가운데, 각국은 대책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中, 갈륨 수출 규제로 美에 맞대응

갈륨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지난 8월부터 자원 무기화를 본격화한 가운데,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힘을 쏟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아연·보크사이트 가공 부산물인 갈륨은 차세대 전력 반도체의 핵심 원료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갈륨 생산량 중 98%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과 냉전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 역시 중국산 갈륨 수요가 높은 편이다. 미국 지질 조사국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1년 미국의 갈륨 수입분 중 중국산 점유율은 53%에 달했다. 중국은 이 같은 독점적 시장 지위를 활용해 미국을 향한 '보복'을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반도체 시장이 GaN 전력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면서 갈륨 수요가 커지자, 본격적인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7월 3일 "다음 달(8월) 1일부터 반도체 핵심 원재료인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 수출통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갈륨을 수출하고자 하는 중국의 기업들이 당국 승인을 받도록 규제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중국의 조치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놓은 '맞불'이라는 평이 나온다.

비교적 수출 규제 타격이 적은 국내에서도 심상찮은 분위기가 감지됐다. 7월 한국의 중국산 갈륨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122% 늘었으며, 가격도 전월 대비 50% 뛰었다. 국내 반도체·웨이퍼 기업들이 본격적인 규제가 시작되기 전 ‘사재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 규제의 직접적 타격을 입은 서방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 역시 대책 마련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문제의 중심축 '질화갈륨'이란?

질화갈륨 반도체는 떠오르는 차세대 반도체 핵심 소자다. 시간이 갈수록 디지털 기기의 크기가 작아지는 가운데, 지난 60년간 쓰여온 실리콘(Si) 반도체가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소형화된 배터리로 장시간 디바이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실리콘보다 전력 소모가 적은 반도체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주목을 받는 질화갈륨 반도체는 실리콘 대비 절반의 공간으로 동일한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외에도 질화갈륨은 전력 변환 효율이 높고, 운동성이 높아 스위칭 속도가 빠르다. 우수한 고온 안정성, 전류가 원활하게 흐르도록 하는 낮은 온저항 역시 장점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INI는 “GaN 전력반도체 소자를 인버터로 활용하면 전체적인 에너지 손실이 실리콘 반도체에 비해 75% 줄어든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미 실리콘 소자 용도로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따로 질화갈륨 반도체를 위한 인프라 구축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칩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강점을 필두로 질화갈륨 전력 소자는 △전기차 △데이터 서버 △무선⋅고속 충전 등 전력 효율성이 중요한 분야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질화갈륨 반도체는 아직 '실리콘 대체재'로 불릴 만한 점유율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높은 생산 비용에 발목을 잡히면서다. 현재 질화갈륨 생산 수율은 무척 낮으며, 실리콘을 밀어낼 만한 비용상의 이점 역시 부족한 상황이다. 단 최근 질화갈륨 웨이퍼 가격이 하락하고, 실리콘 기판 위에 질화갈륨 박막을 성형해 성장하는 기술 등이 개발된 만큼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사진=pexels

신규 소자 개발 움직임 여전히 활발

일각에서는 신규 소자를 찾아내기 위한 연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일례로 한국과학연구원(KIST) 연구진은 세계 최초로 질화갈륨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자 기술을 개발했다. 요오드화구리(CuI) 반도체를 주 소재로 한 구리할로겐 화합물 반도체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그동안 요오드를 비롯한 원소주기율표 1-7족 물질들은 원자간 결합 강도가 높아 반도체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원자간 결합 강도가 낮아야 전자가 원활히 이동해 전류가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KIST의 이번 기술 개발로 반도체 소재 기술 연구에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요오드화구리는 결정 구조가 실리콘과 동일하며, 원자간 거리도 유사하다. 실리콘 기판에 적은 결함으로 박막 성장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박막 성장 온도도 실리콘 소자 공정에 사용되는 온도(300도 이하)와 유사해 열화 없이 실리콘 반도체 공정에 적용이 가능하다. 차후 기술 발전 상황에 따라 질화갈륨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실리는 이유다.

이처럼 세계는 공급망 확보, 대체 기술 개발 등 중국의 자원 무기화 대응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사실상 질화갈륨 수출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지는 않는다. 질화갈륨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을 뿐, 실제로 질화갈륨을 반도체 생산 라인에 투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자원을 중심으로 격화할 경우 이로 인한 경제·외교 피해가 우리나라로 돌아올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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