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최근 전기차 업체들의 미국 나스닥 상장 사례가 늘고 있다. 이번엔 르노 전기차 사업부가 내년까지 뉴욕 증시에 입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대부분의 전기차 기업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상장 제도를 통해 비교적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들도 나스닥 상장을 위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의 자사 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한편 르노는 우리나라의 거점을 두고 2026년부터 차세대 전기차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한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함으로써 제조 비용을 절감하고 중국과 가격 측면에서 본격적으로 맞붙어 보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르노 전기차 사업부, 나스닥 상장 의지 밝혀
5일(현지 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루카 드 메오 르노그룹 회장이 이르면 내년 초 상장 예정인 르노자동차의 전기차 사업부 '암페어'의 목표 기업가치는 최대 100억 유로(약 14조3,000억원)이라고 밝혔다. 암페어는 르노가 신설하는 전기차 법인으로, 앞서 르노는 지난해 2월 사업부를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로 분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내년 암페어 상장에서 르노는 50%를, 1999년 르노가 지분을 대규모 인수했던 일본 닛산자동차는 10~15%를 출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 이외에도 최근 전기차 기업들의 뉴욕 증시 상장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그간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전기차 업체들이 비교적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매력을 느껴서다. 스웨덴 볼보와 중국의 지리자동차 합작사인 폴스타는 지난해 나스닥 상장 당시 21억 달러(28조4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뉴욕 증시에 입성했다.
또한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빈 그룹이 세운 전기차 제조사 빈패스트는 지난달 230억 달러(약 30조7,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나스닥에 상장했다. 상장 당일에는 주가가 치솟으면서 시가총액이 최고 1,900억 달러(약 253조8,400억원)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다만 상장 직후 높은 주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기업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폴스타의 현재 시가총액은 70억(약 9조원) 달러 미만으로 떨어졌고, 빈패스트의 현재 시가총액도 680억 달러(약 91조원)로 축소된 모양새다. 특히 전기차 기업들의 경우 IPO(기업공개) 직상장이 아닌 스팩을 통한 나스닥 우회 상장 제도를 선택하는 사례가 대부분인데, 해당 제도 특성상 기업 가치에 거품이 끼기 쉬운 만큼 상장 직후 주가가 떨어지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게 금융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 나스닥 상장 위한 중국 기업들의 치열한 유럽 전기차 시장 점유율 싸움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상장하면, 그만큼 자금 조달이 크게 원활해지는 등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 글로벌 전기차 업체들은 나스닥 상장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중국은 나스닥 시장에 발을 들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으로 몇 년 전부터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에 나서왔다.
시장 분석 기관 슈미트 오토모티브 리서치의 유럽 국가 전기차 시장 분석에 따르면, 유럽 중에서도 영국이 중국 전기차의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다. 실제 지난 7개월 동안 영국에서 판매된 전기차의 3분의 1은 중국산으로, 전체 영국 신차 판매량에 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기업들의 유럽 순수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2019년 0.5%에 그쳤지만, 2021년에는 3.9%로 올랐고, 올해 7월 기준으로는 8.2%까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유럽 시장 공략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 업체로는 니오·비야디·샤오펑 등이 꼽힌다. 여기에 중국 국유 자동차 기업인 상하이자동차(SAIC)도 지난 2005년 인수한 영국 자동차 생산업체 MG로버를 앞세워 유럽 전기차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한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최대 무기는 싼 가격"이라며 "지난해 중국 전기차의 평균 가격은 3만2천 유로(약 4,560만원)으로, 유럽 내 전기차 평균 가격인 5만6천 유로(약 8,000만원)의 57%에 불과한 만큼 가격 우위를 앞세워 유럽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르노의 한국 거점 전기차 생산, 숨어있는 의도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럽 전기차 업체 또한 기존 시장 점유율을 뺏기지 않기 위해 가격 경쟁에 불이 붙은 모양새다. 루카 데 메오 르노 CEO는 "한 세대 앞서 출발한 중국 업체들과 가격 격차를 줄여야 한다"며 "기술 혁신을 통해 내년에 선보일 ‘R5 EV’의 가격을 기존 전기차 모델보다 25~30%까지 낮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 CEO도 "전기차 배터리 생산 비용을 절반까지 떨어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세데스벤츠 등도 올 하반기까지 생산 비용을 절반 정도 낮춘 새 전기차 모델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도 특히 르노는 지난 5월 한국에 거점을 두고 오는 2026년부터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탑재한 전용 전기차인 '오로라3'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오로라3는 르노코리아차가 2024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에 착수 중인 하이브리드 SUV인 오로라1, 2026년 초 선보일 세단형 전기차인 오로라2를 잇는 전용 전기차다. 오로라3는 2026년 말에서 2027년 초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한 부품사 고위 관계자는 "르노가 이처럼 한국에서 전기차를 만드는 것은 최근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유럽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중국에 맞서기 위한 시도 중 하나로 봐야 한다"며 "한국에서 배터리 생산 가격 절감을 꾀해 가격 측면에서 중국과 대등하게 맞붙어 볼 의도가 밑에 깔려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