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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 속 복지 지출 커지는 구조
고령 인구↑, 지출 증가 곡선 가팔라져
만성질환·고비용 치료에 의료비 ‘껑충’

한국은행이 오는 2050년 우리나라 연금·의료비 지출이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20%가량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이는 전체 인구의 40% 이상이 고령층으로 전환되는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로, 복지지출의 자동 확대가 국가 재정 전반에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고령화 속도보다 노인 의료비 지출 증가세가 더욱 가파르다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은 단순한 인구 문제를 넘어 복지 구조 전반에 걸친 제도적 대응을 요구하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노동 인구 줄며 재정 부담 커져
한국은행이 17일 발간한 ‘인구 및 노동시장 구조를 고려한 취업자 수 추세 전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 한국의 공공부문 연금 및 건강보험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현재 10%가량의 두 배 수준이다. 한은은 “복지지출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을 초과할 것”이라며 “현재와 같은 흐름에서는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중대한 부담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이에 대한 근거로 노동 시장의 축소를 들었다.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국내 추세 취업자 수 증가는 10만 명 후반대에 머물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1∼5월 실제 취업자 수가 전망치를 밑돈 데다, 하반기 이후 미국 관세정책 여파 등으로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란 지적이다. 고용 상황을 평가할 때 기준점이 되는 추세 취업자 수는 경기가 과열되거나 침체하지 않은 상태에서 예상되는 경기 중립적인 연간 취업자 수를 가리킨다.
보고서는 추세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점차 둔화하다가 2032년께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은은 “2033년부터 15세 이상 인구가 감소 전환할 전망이며, 경제활동참가율 역시 2030년을 전후로 하락세에 접어들 전망”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추세 취업자의 마이너스 전환은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의 균형된 성장을 이어가는 중에도 실제 취업자 수가 감소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GDP 성장률도 둔화 압력을 받는다. 취업자 수 감소는 생산요소 중 하나인 노동 투입의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취업자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2030년께 노동은 GDP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이후 2050년부터는 자본 투입과 생산성 향상을 고려하더라도 GDP 성장률이 0%대 중반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위기를 타개할 해법으로는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개선과 경제활동참가율 제고를 꼽았다. 한은은 “인구 변화는 단기 해결이 어렵지만, 경제활동참가율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추가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짚으며 “은퇴 연령층의 인적 자본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계속고용 방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하고, 청년층과 여성의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구조적 장벽들도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구 피라미드 해체 ‘기정사실’
한은의 이번 전망이 더 강한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불확실한 가정이 아니라 거의 확정된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도출됐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구 감소는 이미 정부와 다수의 국제기구가 공통적으로 인정한 흐름이며, 특히 고령층 비중은 단기간 내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 확실시된다. 출생률 반등의 조짐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 같은 인구구조는 예외 없는 경로를 따를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전년(24만9,200명) 대비 7.7% 줄었다. 합계출산율 또한 0.72명으로 사상 유례없는 저점을 찍었다. 반면 노인 인구는 빠르게 증가 중이다. 행정안전부 집계에서 지난해 말 기준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5,122만1,286명)의 20.0%를 차지했다. 국제연합(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일 경우 초고령 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결국 복지지출 증가는 추상적 예측이 아니라 계산 가능한 미래에 가깝다. 연금제도와 건강보험 체계가 현행 구조를 유지하면 그 재정적 부담은 불가피하게 확대된다. 한은 보고서는 이를 정량적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 전제 자체는 기정사실에 가깝다. 인구 구조가 이렇게 명확하게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정책이나 제도 정비가 미뤄질 경우, 그 대가는 훨씬 빠르게 현실화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민간 의료·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함께 증가
노인 인구 증가보다 노인 관련 지출, 특히 의료비 지출이 더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우려에 무게를 더한다. 지난해 질병청이 건강보험통계연보를 재구성한 자료에서는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지난 2019년 746만3,000명에서 2023년 921만6,000명으로 23.5% 증가하는 동안 노인 진료비는 35조7,925억원에서 36.6% 급증한 48조9,01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의료비 증가 속도가 고령화 속도를 추월하게 되면, 복지지출 구조는 연금만이 아니라 건강보험 부문에서도 심각한 압박을 받게 된다. 만성질환 및 고비용 치료의 비중이 높은 고령층 특성상 평균 진료비는 매년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의 불균형 또한 심화하는 구조다. 더욱이 의료 인프라 비용, 간병 인력 수요, 민간 보험 의존도까지 모두 연결된 지출이기 때문에 단순한 의료비 통제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
한은이 이번 보고서에서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드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의료비 증가 속도는 향후 복지 구조 설계에서 가장 어려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복지지출 확대가 예정된 현실이라면, 의료비 항목은 그 속도와 규모 측면에서 더 빠르고 더 위협적인 요소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