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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처럼 빠져나간 청약 통장, 서민들은 분양 시장 ‘퇴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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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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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 제도 실질적 효용 사라져
수요층 소득-분양가 괴리 심화
공사비 급등에 분양가 고공 행진

청약통장 해지 건수가 지난 한 달에만 2만 건을 훌쩍 넘기며 ‘청약 무용론’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근로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은 분양가는 실수요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떨어뜨렸고, 이는 다시 청약 제도의 존재 자체가 무색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작금의 분양 시장은 더 이상 주거 복지 정책이 아닌 자산 양극화의 한 경로로 작동하고 있단 지적과 함께 청약 제도와 분양 구조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실수요자 사이 들불처럼 번진 ‘청약 불신’

18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전국 청약 통장 가입자 수는 2,639만3,790명으로 전월(2,641만8,838명) 대비 2만5,048명 줄었다. 지역별로는 서울의 청약 통장 가입자 수가 645만4,506명에서 644만6,612명으로 7,894명 감소했으며, 인천·경기도는 876만462명에서 5,159명 감소한 876만5,621명을 기록했다. 5대 광역시는 491만9,078명에서 8,508명 줄어 491만570명을 나타냈다.

이 같은 감소세의 원인으로는 먼저 청약 당첨 가점 하한선(커트라인)이 올라갔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십수 년 전 내 집 마련을 위해 청약통장을 만든 수요자들에 비해 신규 가입자들은 가점이 적어 당첨 확률 또한 매우 낮기 때문이다. 신규 가입자들의 경우 신혼부부, 생애 최초 주택 구입, 다자녀 등 특별공급 물량이 아니면 청약 시도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서울 민간 분양 아파트 당첨 최저 가점은 63점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부양가족 수와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을 합산하는 청약가점은 84점이 만점이다. 63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4인 이상 가족이 청약통장 가입 기간 만점(17점)을 받고 12년 이상 무주택 기간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처럼 당첨 확률이 희박하다 보니 외곽 미분양으로 눈을 돌리는 게 훨씬 현실적이라는 게 실수요자들의 일관된 견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청약 제도의 실질적 무력화’로 정의했다. 기존에는 일정한 납입 기간과 가점제 중심의 제도가 실수요자 중심 분양을 유도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청약 요건 강화로 실질적 경쟁 구도가 무너지는 등 제도의 유효성이 사라졌단 지적이다. 주승민 부동산원 시장분석부 부연구위원은 “수요자들이 체감하는 ‘청약 불신’이 숫자보다 빠르게 시장 전반에 퍼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청약통장 해지 추세도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높은 분양가에 “당첨돼도 문제”

높은 분양가 역시 청약 제도의 실효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서울 주요 지역의 신규 아파트 분양가는 이미 서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서울의 전용면적 59㎡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는 12억3,332만원으로 전년 동월(9억9,565만원)과 비교해 2억원 이상(23.87%) 폭등했다. 인접한 경기지역 평균 분양가(5억8,074만원)와 비교해도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 서울 평균 분양가 역시 1년 전보다 19.34% 뛴 16억1,668만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급등하면서 가계소득 증가율과의 격차도 매우 크게 벌어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서울 민간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 가격은 2015년 12월 기준 1,830만원에서 지난해 12월 4,041만원으로 10년 만에 120%가량 상승했다. 반면 전국 가구 월평균 소득은 2015년 372만원에서 지난해(1~3분기 기준) 511만원으로 37.4% 상승에 그쳤다.

물가 흐름을 나타내는 소비자물가지수(2020년=100) 상승 폭 또한 2015년 말 94.9에서 지난해 말 114.2로 20.3%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 10년 사이 소득 및 물가보다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승 폭이 3~5배가량 더 컸던 셈이다. 이는 곧 시장 참여자들의 주택 구입 여력이 크게 악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양시장 자체가 수요자의 소득 구조를 외면한 채 고분양가 유지 논리에만 매몰돼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배경이다.

공사비 상승 압박 요인 산적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높은 분양가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는 2020년대 들어 본격화한 건설비 급등이 꼽힌다. 주거환경연구원의 연구에서 2020년 480만3,000원을 나타낸 3.3㎡당 전국 평균 정비사업 공사비는 이후 꾸준히 상승해 지난해 687만5,000원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기준 평균 공사비가 755만원에 달했던 서울의 경우, 이제 800만원 후반대는 물론 900만원 중반대의 가격까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전언이다.

건설비 급등의 촉매제가 된 원자재 가격은 비교적 안정화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가 집계한 유연탄 가격은 이달 13일 기준 톤(t)당 109.83달러로 1년 전(약 119달러)과 비교해 8% 가까이 떨어졌다. 하락하며 유연탄은 시멘트 제조원가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원자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5월 t당 226.46달러까지 치솟았던 철광석 가격도 지난 13일 기준 106.36달러로 전년 동기(약136달러) 대비 약 28% 하락했다.

그럼에도 건설업계는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 중이다. 인건비와 물류비, 금융비용 등 각종 간접비용 상승과 환율 여파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주 52시간제로 야간 작업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대기시간에도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탓에 부담이 늘었다”며 “또 인부들이 매우 부족해 해외 인력 수급을 늘렸는데, 그 과정에서도 적잖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여기에 이달부터는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제가 의무 시행됨에 따라 공사비 상승 압력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관련 제도에 따라 이달 말부터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은 ZEB 5등급 수준의 설계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또 건설사들은 10~13% 수준의 에너지 자립률을 충족해야 한다.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 불안정과 인건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상태에서 ZEB 인증까지 의무화하면, 초기 건설 투자 비용 상승에 따른 분양가 추가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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