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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등 중견 11곳 법정관리 신청 PF 위축·지방 미분양·공사비 상승 영향 실업률 증가·후방산업 전이 등 악순환

종합건설사가 하루에 1.8곳씩 문을 닫고 있다. 역대 최악이라던 지난해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급등한 공사비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지방에 악성 미분양이 쌓여 가고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건설사 줄도산은 실업률 상승, 후방산업 전이 등 악순환을 가중할 수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종합건설사 폐업, 19년 만에 최다 추세
17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종합건설업 폐업 신고 건수는 276건으로 하루 1.84개꼴이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6건 늘어난 수준이다. 앞서 종합건설업 폐업 신고 건수는 지난해 641건으로, 조사가 시작된 2005년 629건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1~5월 폐업신고건수만 보면 지난해 폐업 신고 건수를 웃돌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만 해도 지방 중소건설사 위주로 폐업 신청이 많았던 데 비해 올해는 ‘건설업계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건설사들이 무너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59위 신동아건설을 시작으로 대저건설(103위), 삼부토건(71위), 안강건설(138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삼정기업·삼정이앤씨(114·122위), 벽산엔지니어링(180위), 이화공영(134위), 대흥건설(96위)에 이어 지난달 말 광주 기반 영무토건(111위)까지 총 11곳의 중견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폐업과 법정관리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유동성 위기다. 2022년부터 본격화된 PF 대출 회수 압박과 금융기관의 심사 강화는 건설사의 자금줄을 조이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공공 발주 축소와 민간 분양 시장 위축이 겹치면서 '공사 절벽'이 현실화됐다.
치솟는 공사비·미분양, 최악의 건설 불황
일반적으로 종합건설사는 전체적인 계획·관리를 하면서 시공한다. 시설물의 전체공사를 원도급 받는 만큼 일감이 줄면 업계 전반에 미치는 타격도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 중소 종합건설사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다. 한 지방 건설사 대표는 "올 들어 수주한 공사 현장이 단 한 곳도 없다"며 "민간 분양은 미뤄지고 공공 발주는 대부분 대형사 몫"이라고 했다. 실제 상대적으로 재무여건이 좋은 1군 건설사들은 신규 수주나 자체사업으로 버티고 있지만 2~3군 중소업체들은 수도권 수주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공사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고 미수금과 채무금이 쌓이면서 유동성은 나빠지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자산 매각 등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얼어붙은 지방 건설경기는 회복 신호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전국 악성 미분양 물량은 2만6,422가구(4월 말 기준)로 11년 8개월 만에 최대 규모인데 이 중 80% 이상이 지방에 있다.
문제는 종합건설사 폐업이 건설업계 취업자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5월 고용동향 자료를 보면 동기간 건설업 취업자는 10만6,000명 줄었다. 농림어업 13만5,000명 감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 지난 3월 건설업 취업자 수는 18만5,000명 줄어 2013년 11차 산업분류 개편 이후 감소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 취업자 수는 지난달까지 13개월 연속 줄어 역대 최장기간 감소했다.

중동 위기 고조에 대형 건설사도 전전긍긍
대형 건설사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이스라엘-이란발 중동 위기까지 고조되면서 해외 건설 수주 텃밭인 중동 일대 신규 건설사업 발주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현재 이란 사업장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는 없으며 현지에 파견된 건설사 직원 1명도 철수를 준비 중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무력충돌에 따른 피해 사례는 없는 상황이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건설 원자재 가격과 운송료 인상 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근 이란 석유시설과 세계 최대 규모 가스전 등 에너지 인프라를 집중 포격하고 있다. 이란이 원유 물동량 중 20%를 담당하는 호르무즈해협을 부분 봉쇄하거나 사태가 장기화하면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건설정책연구원 관계자는 “기존 사례처럼 국제 유가 급등으로 시멘트 핵심 원재료인 유연탄 등 가격이 같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가격 상승세가 억눌렸던 레미콘 가격 등에 대한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급한 직후인 지난 13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근원물 종가는 배럴당 72.98달러로 전장 대비 7.3% 급등했다. 이는 일간 상승 폭 기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한 2022년 이후 최고치다.
확전 우려에 중동 국가들이 건설 인프라 발주를 줄이거나 순연하게 되면 국내 업계의 해외 건설 수주에도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해외건설협회 통계를 보면 올해 들어 5월까지 국내 건설사의 중동 계약액은 56억 달러(약 7조6,8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44%나 급감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점진적인 국제 유가 상승 시에는 인프라 수주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분쟁 발생 시에는 정세 불안으로 산유국들이 인프라 투자 등에서 지출을 우선 축소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플랜트 등 해외 사업 수익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잠재적인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