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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도 우리나라와 미국의 장기 국채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늘고 있다. 국내 상장된 한국 및 미국 국채 30년물 ETF에 총 307억원이, 해외 상장된 미국 장기 국채 ETF 상품에는 약 1,140억원이 몰렸다. 다만 최근 급등한 국채 금리로 인해 대다수 국채 ETF의 수익률이 손실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견고한 미국 경제 및 중동 분쟁 장기화 등으로 오랜 기간 고금리 기조가 유지될 거란 부정적인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국내 상장 ‘장기 국채 ETF’ 투자 활발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한국과 미국 국채 30년물에 투자하는 ETF 상품에 총 307억원 규모의 개인투자자 자금이 순유입됐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ETF 시장 전체 개인투자자 순매수 금액(1,170억원)의 26%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재 국내 증시에 인버스 상품을 제외하고 한국과 미국 국채 30년물에 투자하는 ETF는 총 11개 상품이 상장돼 있다. 이 가운데 개인투자자 자금이 가장 많이 몰린 상품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였다. 개인투자자들은 10월 1일부터 12일까지 해당 상품에 약 129억원을 투자했다. 이 밖에도 KB자산운용의 ‘KBSTAR KIS국고채30년Enhanced’에 67억원, 삼성자산운용의 ‘KODEX 미국채울트라30년선물(H)’에 29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국고채30년스트립액티브’에 24억원을 투자했다.
통상 채권가격은 채권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미국과 한국 30년물 국채 가격을 추종하는 이들 상품 역시 국채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이 올라 이익을 얻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한국 모두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지속될 거란 전망이 나오면서 연초보다 수익률이 많이 하락한 상황이다.
개인투자자 순매수 1위 ETF인 ‘미국30년국채액티브(H)’의 경우 올해 3월 상장된 이후 지난 4일 연중 최저가(8,365원)를 기록한 뒤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같은 기간 ‘KBSTAR KIS국고채30년Enhanced’와 ‘KODEX 미국채울트라30년선물(H)’ 역시 연중 최저가를 기록하며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손실에도 ‘미 국채 ETF’ 인기 식을 줄 몰라
해외 상장된 장기 국채 ETF에 대한 서학개미의 관심도 뜨겁다. 1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9월 13일부터 이달 12일까지 한 달간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 국채 불 3배 ETF’(티커 TMF)에 대한 순매수 규모가 8,430만 달러(약1,140억원)를 넘어섰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 3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TMF는 만기 20년 이상인 미 국채로 구성된 ‘ICE US 20년 이상 미 국채 지수’의 일일 수익률을 3배 이상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다. 연초 8달러 초반에서 시작한 TMF 가격은 최근 4.4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15일(현지 시간) 종가 기준 올해 수익률은 –42.3%, 하반기 들어서만 -44.6% 하락했다. 올해 어느 시점에 투자했더라도 손실을 보지 않은 투자자가 없는 상황이다.
서학개미뿐 아니라 미국 증시 전반에서도 미국 장기채 ETF에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만기가 20년 이상인 장기 국채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스 만기 20년 이상 국채 ETF(티커 TLT)’에는 올해 들어 176억 달러(약 23조8,100억원)가 순유입됐다. 이는 미국 증시에 상장된 3,300여 개 ETF 가운데 세 번째로 큰 순유입액에 해당한다.
TLT 역시 최근 국채 금리 급등에 따라 수익률이 좋지 못하다. 15일(현지 시간) 종가 기준 올해 수익률은 –13.6%, 하반기 들어서만 -16.2% 하락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TLT는 2020년 고점 대비 50% 넘게 하락했고, 올해 손실 금액만 100억 달러(13조5,300억원)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화 예견된 중동 분쟁, 고금리 여건 계속되나
우리나라와 미국의 장기 국채를 매입한 투자자들은 채권 금리 하락에 따른 매매차익을 획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금과 같은 고금리 시기에 집중 매입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2022년 말 3.87%에서 이달 15일 4.72%까지, 30년 금리는 같은 기간 3.96%에서 4.88%까지 올랐다. 이는 2007년 8월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미 국채 금리 상승세가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다. 최근 월가의 새로운 ‘채권왕’으로 불리는 더블라인캐피털의 CEO 제프리 건들락은 “연준의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미국 경제에 주요 난관이 됐다”면서 “앞으로 (미 국채 10년물) 국채 금리가 5%까지 갈 것”이라고 전망을 밝힌 바 있다.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힘을 얻는 데는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주효했다. 중동 분쟁에 따라 국제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재차 상승 압박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상승 우려와 동시에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를 의미하는 피벗(통화정책 전환) 시기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같은 투자 지출 증가를 비롯해 고용시장 등 경기 여건이 견고한 점도 장기적으로 고금리 여건을 강화하는 또 다른 요소다. 실제로 최근 미국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미국의) 소비자 지출은 여전히 강하고 투자 지출은 견고하다. 주택시장도 안정화돼 상승세를 보이는 것 같다”면서 “미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황이며 높은 수준의 금리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미국 국채 금리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평가하며 미 국채 관련 ETF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장기채 금리 변동폭이 하루 새 8~9bp씩 움직인다”면서 “그만큼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매우 높은 시기로 투자 규모와 시기에 대한 적절한 분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