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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 걸고 넘어지며 위기감 조성하는 트럼프, 전기차 업계 우려 가중 완성차 업체, 美 투자 단행한 토종 배터리 기업 등에 '직격탄' IRA 사라지면 어디로 가나, 길 잃은 기업들 대안 모색 나서야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 대선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무시할 수 없는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기할 경우, 미국 내 완성차 기업을 비롯한 시장 전반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IRA 수혜를 노리고 미국 시장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 역시 이 같은 위험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 "IRA 폐기할 것"
IRA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추진한 법안으로, 전기차를 비롯한 4차 산업 분야 세액공제 조건 변화 규정을 담고 있다. IRA에 따르면 구매하려는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가 부품·소재 요건 등을 충족하는 경우,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978만원)의 보조금 혜택이 지급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의 세금이 IRA를 통해 중국 배터리 회사들로 유입되고 있다고 지적, IRA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바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 대선 캠프 고위 관계자들이 "세금 감면과 청정에너지에 대한 보조금을 뼈대로 한 IRA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IRA에 따른 보조금과 세금 감면 지출의 대다수를 삭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밖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32년까지 신차의 67%를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바이든 정부의 규제를 폐기하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청정에너지보다 화석 연료 생산 극대화에 중점을 두는 그의 철학에 걸맞게 '판도 뒤집기'를 시도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IRA를 비롯한 바이든 정부의 청정에너지 정책 대다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집중 사격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간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청정에너지 정책을 휘발유 가격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하는가 하면, 청정에너지가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최근 선거운동 동영상에서는 “미국의 에너지는 풍력 발전에 의존하기 때문에 허약하고 기준 미달이며 돈이 많이 든다”며 청정에너지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IRA 폐기 가능성에 전기차 시장 '비상'
문제는 IRA가 전기차 시장의 전반적인 성장에 크게 공헌했다는 점이다.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폴 제이콥슨 제너럴모터스(GM) 최고재무책임자(CFO)가 “IRA는 판매를 촉진시켜 전기차 시장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왔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갑자기 IRA가 사라지면 시장 수익성 자체가 크게 악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에 두 개의 공장을 보유한 일본 자동차 제조 기업 닛산의 우치다 마코토 최고경영자(CEO) 역시 “IRA는 중장기적으로 미국 내 전기차 판매를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됐다”면서 “전기차 보급은 IRA 같은 법안이 있을 때 훨씬 더 유망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완성차 업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IRA 수혜를 위해 미국 시장 투자를 확대해 온 소재·부품 기업들 역시 트럼프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업체들 역시 영향권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은 IRA 도입 이후 미국 현지 업체들과 합작 법인을 세우는 등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국내 전기차·배터리 업계의 미국 시장 투자액은 자그마치 74조원에 달한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 현대차·기아 등 미국 현지 완성차 공장에 공급할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현대차와 5조7,000억원을 공동 투입, 합작 공장을 짓고 있다. SK온 역시 현대차와의 배터리 합작 공장 건설에 총 6조5,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GM과의 합작 공장 설립에 약 12조원을 투자한다. 현대차그룹은 55억 달러(약 7조2,000억원)를 들여 미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 'HMGMA'를 짓고 있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IRA가 폐기될 경우, 이 같은 국내 기업의 대규모 투자들은 줄줄이 '허사'가 될 수 있다.
'미국 중심' 정책 IRA,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IRA에 일부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IRA는 2021년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추진하던 BBB(Build Back Better, 더 나은 재건) 법안의 축소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당시 BBB 법안의 골자는 미국산 부품을 우대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였다. 결국 IRA 역시 친환경 정책을 빙자한 '자국 기업 우대' 정책이라는 것이다.
실제 태양광 패널, 전기차, 배터리 등 4차 산업 분야에서 IRA 수혜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50% 이상의 부품을 북미에서 제조·조립해야 하고, 중국산 핵심 광물과 부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에 대다수 국내 기업은 어쩔 수 없이 IRA 혜택에 편승하기를 택했다. 주요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전기차 성장 속도가 빠르게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IRA를 기회로 삼아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 현지 수요를 흡수해야만 하는 처지였던 셈이다.
현재 전기차 시장은 본격적인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고공 행진할 것만 같던 테슬라 주가는 지지부진한 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며, 각국 완성차 업체들은 줄줄이 신규 투자 계획을 연기·축소하고 나섰다. 업계는 IRA와 같은 파격적인 인센티브 정책이 사라질 경우 시장 전반이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나서 미국 내 협력사들과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