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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추가 청약률 0% 기록
글로벌 사업 매각 압박 현실화
그룹은 재무 전략 보수로 선회

CJ CGV의 경영 불안이 가속하는 모습이다. 회사채 추가 청약에서 단 한 건의 참여도 끌어내지 못한 데 이어, 핵심 자회사까지 재무적 투자자들에 의해 강제 매각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룹 전반의 재무 안정성에도 부담이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CJ그룹은 자산 매각과 투자 보류 등 보수적인 기조로 대응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유동성 확보 성과 없이 선택지는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다.
시장 외면에 자금조달 수단 축소 불가피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 CGV는 이달 11일 1,000억원 규모의 일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기관투자자로부터의 주문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21일 진행한 추가 청약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표 주관사(KB·NH·한국투자·신한·삼성증권)를 포함한 10개 증권사가 해당 물량을 나눠 총액인수 방식으로 떠안았다.
CGV는 매년 채권 시장을 찾아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으나, 과거부터 꾸준히 미매각 이력이 반복돼 왔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5월에는 4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100억원만 기관투자자들에게 매각되고 나머지 300억원은 주관사인 KB증권이 고스란히 소화해야 했다. 영화 산업의 침체 여파로 CGV의 수익 개선 가능성이 요원한 만큼 제시된 수익률이 위험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주된 평가다.
악화 일로를 걷는 CGV의 실적도 이 같은 평가에 힘을 보탠다. CGV의 올해 1분기 국내사업(별도기준) 매출은 1,283억원으로 전년 동기(1,801억원) 대비 28.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 역시 전년 보다 163억원 적자 폭이 확대된 310억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실적 악화의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관람객 이탈이 꼽힌다. CGV 전체 관람객 수는 전년 상반기 3,706만 명에서 1년 사이 3,063만 명으로 643만 명 줄었고, 이 중 국내에서만 499만명(1,481만→982만 명)이 빠져나갔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CGV가 더 이상 앵커테넌트(Anchor Tenant)가 아니라는 평가마저 나온다. 이는 울산 원도심 부활카드로 기대를 모았던 CGV 울산성남점의 사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당 영화관이 입점한 복합문화시설 ‘크레존’이 경매에 부쳐진 가운데, 무려 13차례나 유찰된 것이다. 대중을 끌어모으는 데 핵심이 되는 유명 점포를 의미하는 앵커테넌트는 통상 경매 시장에서 해당 물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크레존의 반복된 유찰은 CGV의 입점이 해당 건물에 아무런 이점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유일한 수익 기반 자산 ‘위태’
사채 청약 실패로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긴 CGV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핵심 자회사까지 내줄 위기에 봉착했다. 글로벌 사업부문 지주사인 CGI홀딩스에 대해 주요 재무적 투자자(FI)인 MBK파트너스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강제 매각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앞서 MBK와 미래에셋은 지난 2019년 3,336억원을 들여 CGI홀딩스 지분 28.57%를 확보한 바 있다. 이때 두 회사는 CGI홀딩스가 2023년 6월까지 기업가치 2조원 이상으로 홍콩 증시에 상장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영화 시장이 침체되면서 CGI홀딩스 상장은 불발됐다. FI 측은 상장에 실패할 경우 최대 주주인 CGV 지분까지 합쳐 제삼자에게 매각할 수 있는 권리(드래그 얼롱)를 제공받았다. CGV 측이 FI의 수익률을 일정 수준 보장하면서 주식을 되사는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지만,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 또한 쉽지 않다는 평가다.
CGI홀딩스는 CGV의 해외 극장사업 지분을 통합 보유한 중간 지주사로, 인도네시아·베트남·튀르키예 등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해외 법인이 모두 이 안에 묶여 있다. 국내 극장 부문이 적자를 지속하는 가운데 CGI홀딩스는 사실상 CGV의 유일한 실질 수익원이자 핵심 자산으로 기능해 왔다. 이를 제삼자에게 넘길 경우, CGV 수익 모델 또한 붕괴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도 CJ그룹은 명확한 대응보단 상황을 관망하는 기조를 유지 중이다. 이번 FI들의 드래그 얼롱 행사와 관련한 사전 협의 당시에도 CJ 측은 FI가 기대하는 내부수익률(IRR)에 못 미치는 가격을 제시했단 전언이다. 이에 시장에서는 CJ그룹이 미디어·영화 부문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을 검토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CJ가 최근 콘텐츠·물류·식품 계열 전반에서 자산 매각과 투자 보류 기조를 강화하고 나선 만큼 CGV 역시 방어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CGV 부진이 그룹 대응 전략에도 직간접 영향
문제는 CJ그룹이 추진하는 자산 매각 중심의 재무 전략 역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CJ제일제당 그린바이오 사업부와 셀렉타의 매각 철회가 대표적 사례다. 애초 CJ제일제당은 이들 사업부를 매각해 얻은 현금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형 인수합병 전에 뛰어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회사 매수자 측의 사정으로 거래가 무산됐다. 그룹 내부적으로 ‘팔고 싶은 자산’이 ‘팔 수 있는 자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셈이다.
이에 따라 CJ그룹은 기존의 확장 전략에서 선회해 보수적 재무 기조로 전환하는 수순에 들어섰다. 과거에는 콘텐츠·물류·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격적 인수·합병(M&A)과 투자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신규 투자 축소, 자산 유동화, 비핵심 계열사 구조조정 등의 방식으로 전략이 옮겨가고 있다. CGV와 관련해서는 아직 직접적인 구조조정 언급이 없지만, 주요 계열사에 대한 매각·지분 정리 등이 수면 위로 오른 만큼 CGV의 전략적 위상 또한 예전 같지 않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CJ그룹은 CGV에 대한 직접적인 자금 수혈을 지양하면서도 그룹 전체의 신용도 하락을 막기 위한 대응에는 고심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대외 불확실성 차원에서 유연성이 떨어지는 장기채보다는 만기가 짧은 단기채를 통해 자금조달에 나서고, 부채비율 관리 측면에서는 차입금으로 인식되는 회사채보다 자본으로 인식되는 신종자본증권을 적극 활용하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한 채권시장 운용역은 “CJ그룹 자체로 보면 회사채를 발행 여력이 충분하지만, 무리하게 외형을 키우기보다 재무 건전성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모양새”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