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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 국제 금융기관과 협력하며 영향력 키워 스테이블코인 RLUSD 앞세워 제도권 금융 편입도 도전 美 은행권 "암호화폐 기업에 은행 라이선스 부여하면 안 돼"

블록체인 기반 결제 솔루션 기업 리플(Ripple)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 금융 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제도권 금융에 소속되는 것을 목표로 은행 라이선스 취득에도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XRP, 리플유에스달러(RLUSD) 등 리플이 발행한 암호화폐의 입지 역시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리플, IMF 고위자문그룹 합류
23일(이하 현지시간) 암호화폐 전문 매체 이더뉴스는 리플이 IMF의 핀테크 고위 자문 그룹에 합류하며 글로벌 금융 시스템 내 영향력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MF가 리플을 핀테크 분야의 전문성과 기술력을 갖춘 기관으로 공식 인정하고, 차세대 금융 기술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문단의 구성원으로 위촉한 것이다. 리플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리플은 향후 그룹 내에서 △소규모 도서 국가들을 위한 정책 수립 △시스템 설계 △국경 간 송금 개선 방안 등에 대한 자문을 제공할 예정이다.
리플과 국제 금융 기관의 협업 사례는 IMF에 국한되지 않는다. 보도에 따르면 리플은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차세대 실시간총액결제(RTGS) 시스템 구축 연구 프로젝트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Accelerator Program)’에 참여 중이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진한 ‘패스터 페이먼츠(Faster Payments) 운영위원회’에도 포함돼 산업 전반의 결제 인프라 개선을 논의하는 데 기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은행과는 국경 간 송금 기술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리플의 시장 입지가 확장되며 XRP 역시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XRP 가격은 3.65달러(약 5,074원)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시점 XRP의 시가총액은 약 2,050억 달러(약 285조 원) 전후로, 이미 우버, 지멘스, AT&T, 블랙스톤 등의 굵직한 글로벌 기업들을 제친 상태다. 전문가들은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XRP가 HSBC, 도요타 등 초대형 기업을 시가총액 순위에서 제치고 전통 금융 자산들과의 경쟁 구도에 본격적으로 편입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은행업에도 도전장 내밀어
리플은 단순 금융 기관과의 협업을 넘어 직접적인 금융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2일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랩스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글을 통해 "리플이 미국 통화감독청(OCC)에 국내 은행 인가(national bank charter)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승인되면 우리는 주와 연방 감독을 모두 받게 된다"며 "이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신뢰성을 나타내는 새롭고 특별한 기준"이라고 부연했다.
리플랩스가 제출한 연방 은행업 라이선스 신청서에 따르면, 리플랩스는 현재 연방예금보험 없이 국립은행 신탁을 설립하고 미국 중앙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리플 내셔널 트러스트 뱅크(Ripple National Trust Back)’를 출범해 자사 스테이블코인인 RLUSD의 준비금 및 수탁 서비스를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리플 내셔널 트러스트 뱅크 법인장으로는 리플랩스의 자회사인 ‘스탠더드 커스터디 앤드 트러스트(Standard Custody and Trust)의 잭 맥도날드(Jack McDonald) CEO가 임명될 예정이다.
만약 리플이 OCC 인가를 받아 제도권 금융기관으로 격상될 경우, 미국 내 스테이블코인 패권 경쟁의 판도는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신뢰 기반 자산인 스테이블코인의 특성상 제도권 금융기관이 시장 경쟁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암호화폐 평가 기관 블루칩에 따르면, 리플이 제도권 금융 편입에 도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RLUSD는 '안전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미지를 굳히며 스테이블코인 부문 1위에 새롭게 등극했다.

美 은행권의 반발
다만 미국 주요 은행 협회들은 리플을 비롯한 암호화폐 기업에 국가 은행 라이선스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행협회(ABA)와 미국 독립 지역 은행가 협회(ICBA) 등은 최근 OCC에 서한을 보내 리플, 서클 등 암호화폐 기업에 대한 은행 라이선스 승인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해당 기업들의 신청서 공개 부분에 투명성이 부족하며, 대중이 사업 모델을 완전히 이해하고 잠재적 위험을 평가하기에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암호화폐 기업들이 국립신탁은행에 요구되는 수탁 의무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주로 디지털 자산 및 관련 활동에 대한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암호화폐 회사들이 OCC의 수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미국법상 신탁은행은 주로 신탁 및 유산 관리와 같은 수탁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OCC는 단순한 보관 서비스를 수탁 업무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미국 금융권 관계자들은 디지털 자산 보관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은행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것은 기존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며, 이는 향후 은행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에서는 OCC 심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리플, 서클 등 은행 자격을 취득하고자 하는 암호화폐 기업들의 사업 계획에 대한 더욱 명확한 데이터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