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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새 정부에 감독 권한 확대 요구 "건전성 대응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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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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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금융정책·감독 전담조직 분리 추진
한은 감독 권한 부여, 별도 기구 신설 두고 논의
한은 "최종 대부자로 거시건전성 정책 감독해야"

정부가 금융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하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검토하는 가운데, 한국은행이 금융기관 검사권과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권 등을 정부에 요구하며 감독권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은은 미국, 영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건전성 관리 수단을 보유하지 않아 금융시스템 불안정이나 거시건전성 정책에 적시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체계는 금융위·금감원이 수직 통합된 구조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가 추진 중인 정부 조직개편과 관련해 ‘정책·감독 조직 분리안’이 사실상 확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개편안의 골자는 기존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이관해 일원화하고 규제·검사 등 감독 기능은 별도의 감독 조직으로 분리·신설하는 것이다. 다만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 새로운 감독 권한을 줄 것인지, 주요 금융기관들이 참여해 거시건전성 관리를 총괄하는 상설기구인 ‘금융안정협의체(가칭)’를 신설할 것인지 등이 추가 쟁점으로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한국의 금융감독 체계는 정책과 감독을 단일 조직이 통합 수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행정부처인 금융위는 금융산업 정책뿐 아니라 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 기능까지 포괄하고, 금융위로부터 업무 지휘를 받는 무자본 특수법인 금융감독원이 현장에서 감독 업무를 위임받아 집행한다. 형식상 복수의 기관이지만 법령·제도 등 정책 수립과 집행이 분리되지 않은 수직 통합된 구조로,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거시건전성 정책 권한은 금융위가 갖고, 단독검사권 등 미시건전성 정책은 금감원이 보유하고 있다.

지난 16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ADB·BOK·JIMF 콘퍼런스에 참석해 거시건전성 정책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인스타그램

한은, IMF 외환위기 당시 감독권 금감원에 내줘

금융 정책과 감독 기능 분리에 대한 정부의 논의가 본격화하자, 한은은 거시건전성 대응을 위해 감독 권한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논의의 출발점은 이달 초 한은이 ‘중앙은행의 금융 감독 역할 확대 방안’을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하면서부터다. 이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금융저널(JIMF)과 공동 주관한 행사에서 "20년 넘게 가계부채가 한 번도 줄지 않은 것은 거시건전성 정책 집행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은이 해당 정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법적 지배구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은행 감독권을 금감원에 내준 이후, 현재는 금감원에 금융기관 공동 조사·검사만 요청할 수 있다. 한은법상 자료 제출 요구권의 적용 대상이 은행과 은행지주회사로 한정돼 있어,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 대해서는 감독은커녕 기본적인 자료 제출조차 요구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은이 지난해 7월 예금취급기관 중앙회와 자산운용사를 환매조건부매매(RP) 매매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개시장 운영 대상 기관으로 추가하는 등 비은행권에 대한 유인책을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이들에 대한 감독 수단은 전무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면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에서는 중앙은행이 거시건전성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거시건전성 정책을 운용하는 금융안정감시협의회(FSOC) 위원으로 참여하며, 연준 이사회는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규제 기준을 직접 마련하고 감독기관에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주요 은행에 대한 직접 감독 권한도 가는다. EU 역시 유럽중앙은행(ECB)이 거시건전성 정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영국은 2013년 금융감독원(FSA)을 해체한 뒤, 미시건전성 감독 및 거시건전성 정책 기능을 영란은행으로 일원화했다. 

은행권 "감독 기관 늘어나면 규제도 확대" 우려

금융권은 한은의 제안과 관련해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감독과 검사 권한은 행정권이므로 민간기구가 아닌 정부 부처가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기관들 역시 단독 감독 권한을 가진 기관이 늘어나면 규제가 중복되고 강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면 한은은 거시건전성 정책의 운용 측면에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단독 검사권을 행사하지는 않더라도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한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하는 만큼,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기관 간 업무 조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한은을 거시건전성 정책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건전성 관리 권한을 누가 가지는지에 따라 가계부채의 증가 패턴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통상 감독 당국이 건전성 정책을 독점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2024년 말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높은 한국(90.1%) 캐나다(100%) 호주(112%) 스위스(125%)는 감독 당국이 건전성 정책을 주도하는 국가들이다. 반면 미국(69%) 프랑스(61%) 영국(76%) 벨기에(57%)는 중앙은행이 해당 권한을 갖고 있다.

경기 부양 측면에서도 기준금리와 거시건전성 정책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8월 수도권 주택 가격이 연율 20% 급등하고 가계대출이 10조원 넘게 폭증하면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건전성 수단이 없는 한은은 금융위만 쳐다보다 결국 기준금리를 3.5% 동결했다. 반면 건전성 수단을 갖춘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유사한 상황에서 ‘선(先) 건전성 정책·후(後) 금리 인하’ 전략으로 부동산 과열을 다스리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이자 상환 부담을 덜어줬다. 중앙은행이 건전성 수단을 함께 운용해 위기 상황에 유연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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